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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포르치니 버섯 스파게티

파르미지아노 치즈가 듬뿍, 포르치니 스파게티

by 서진

지난밤 매섭게 내리던 비.

여름내 열어 놓았던 베란다 문을 끌어당겨 닫았다. 커다란 창문 가까이에 있던 빨래가 축축해 속상할 만도 한데, ‘뭐 그럴 수도 있지.’라며 내리는 비를 잠시 바라보았다. 몽롱한 상태에서도 숨구멍은 있어야 했는지 문을 살포시 열어 두었다.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꽈-꽝!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베란다 문틈으로 들렸던 우렁찬 빗소리.

~ 천둥소리.


검우스럽게 어슴푸레한 빛이 창문으로 비쳤다. 조금 더 자야 할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감긴 눈꺼풀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 안에 눈동자가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우렛소리에 질려서인지 내 가슴이 콩닥콩닥하며 가라앉지 않았다.

눈을 뜨고 멍하니, 양을 세야 할까, 숫자를 셀까 아니면 수면에 도움 되는 책을 봐야 하나, 갑자기 생겨난 시간을 별 소득 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스르륵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반사행동이었을까, 냉동실을 열어 파르비지아노 치즈를 꺼냈다. 나의 사랑스러운 오봉 식탁에 연두색 반찬통 2개와 치즈 그레이터, 감자칼 그리고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올려 방으로 들어왔다.

한 발로 이불을 벽 쪽에 구겨지든 말든 밀어 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그만 자리에 오봉 식탁을 내려놓았다.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은 안 들고라는 듯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몸을 웅크리고 앉아 치즈를 갈았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일까. 금세 갈아버렸다. 갈아 놓은 치즈가 들어있는 연두색 반찬통을 냉장고에 넣었다. 뒤돌아 서며 씩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났다.



미적지근한 물 한잔을 마시고 바라본 창. 푸르스름, 곧 해가 떠오르겠지.


방으로 들어서서 무심히 밀어두었던 이불을 정리했다. 구김 없이 잘 펴놓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때까지도 귓가에 커다란 소리가 남아있는 듯 멍멍거렸다.

커다란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치즈 냄새를 이리저리 흔들고 다니고 있었다. 내 코끝으로, 내 입술로, 내 머릿속으로, 내 가슴속으로….


구수름한 치즈냄새가 어서 일어나라고 날 깨웠다. 크지 않은 작은 조각을 갈았는데도 잠을 깨울 정도로 진하게 느껴졌다. 혹시 방안에 흘린 치즈 때문에 진한 향이 나지 않을까. 냄새의 근원을 찾기 위해 코를 킁킁거리며 방바닥을 기어 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물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가다 코앞으로 움직였다. 손에서 치즈 향이 진하게 풍겼다. 치즈를 만지고 깨끗이 박박 문질러 씻었는데 향은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손바닥을 펴서 코앞에 가져다 대고 쿰쿰하고 고스름한 냄새를 맡았다. 너무 좋은 냄새~


며칠 동안 꿈이란 단어 때문에, 종일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생각을 하고 지냈다. 나이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 꿈이 남아있었나?

정확한 질문은 ‘작가의 꿈’이었다.

작가, 꿈을 가져도 되나요?

일단 내가 작가냐는 질문이 먼저 앞서야만 했다. 객관적으로 나를 보자면, 운 좋게 브런치 스토리라는 사이트에서 글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못난 나의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독자분들도 있다. 그렇다고 작가라고 자랑스럽게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중요점이 있다.


글이라는 어려운 작업을 2023년 6월 시작, 그러니까 2년 3개월 정도 써오고 있다. 실력이 없으면 선생님을 찾았어야 했다. 그러나 맞춤법이며, 문법이며, 문맥이며, 행간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글을 썼다.

사실 작가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나다.

작가라는 이름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내가 과연 작가의 꿈을 꿀 수 있을까?


어느새 놓인 시원한 냉커피가 반쯤 비워지고 책상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멈춘 비 뒤로 솔솔 들어오는 바람의 기운에 가을도 담겨있는 듯했다. 오랜만에 시원하게 샤워를 한 새들이 떠들어대고, 내 뱃속 배꼽시계도 알람을 울릴 준비 중이었다.

다시 나의 네 손가락은 책상을 따다 다닥 두드리며 이 심각한 와중에도 무엇을 먹을 것인지 고민에 빠진 나 자신이 놀라울 따름이다.


일단,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고스름한 치즈가 준비되었으니~

냉동실 문을 열고 말린 포르치니 버섯을 꺼냈다.


가을엔 버섯 아닌가!


포르치니 버섯을 한국말로 그물버섯이라 부른다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 버섯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서양요리가 우리나라에 자리를 잡으며 냉동이나 말린 버섯으로 판매하는 상점들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치는 송이버섯과 닮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등급에 있어선 ‘일 송이 이 능이’라는 말처럼 서양에선 ‘일 트러플 이 포르치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포르치니 버섯 by pixabay



포르치니 버섯.

오래전, 이태리에서 요리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뜬금없이 선생님과 친구들이 포르치니 버섯을 따러 가자고 날 졸라댔다. 기숙사에 살던 우리는 번갈아 가며 셰프님 보조를 정해 요리해야 했다. 그날 요리 당번은 우리 조 차례였다. 아무리 식사를 준비해 주는 셰프님 보조로 배우며 별 중요하지 않은 요리를 하고 있었지만, 빠질 수는 없었다. 갑자기 브라질에서 온 친구가 나서며 자기가 대신해 주겠다는 우김질에 당황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을 따라 버섯을 따러 갔었다.


그런데 때는 늦은 가을도 아닌 겨울이었다.

“선생님, 이렇게 추운데 버섯이 있겠어요?”라는 나의 질문에 “잘 찾아보면 있을 겁니다.”라는 대답뿐이었다.

우리의 요리 수업은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해 5시 만에라도 끝내주면 감사한다고 절하며 식사 준비하는 형편이었다. 말하자면 시간이 너무 늦어 어둠이 내려앉고 있어 플래시를 켜고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

“선생님 너무 늦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시간을 보시더니 “그럼 이제 가볼까요. 버섯이 이제 나오지 않나 봐요.”라며 성큼성큼 차가 세워져 있는 방향으로 우릴 데리고 가셨다. 걱정하는 나를 본 아이들은 킥킥대며 내 양팔에 팔짱을 끼고 “지나, 어서 가자. 와인 한 병 사갈까?”라며 뭐가 즐거운지 날 흔들어 댔다.

학교 식당에 들어서는데 기운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뻥’하고 아이들이 사 온 샴페인이 터지고 “생일 축하해.”라며 내 양 볼에 축하를 담아주었다.


그날 포르치니 버섯 한 송이 따질 못했지만, 그날 아이들이 만들어준 생일파티는 포르치니 버섯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난다.


냉동실에서 꺼낸 말린 포르치니 버섯을 물에 헹궈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이물질을 제거한다. 물에 담가 한 15분 정도 불린다.




냄비에 스파게티 끓일 물을 준비. 파스타를 어떻게 삶느냐에 따라 맛이 파스타 요리의 맛이 좌우된다. 물에 소금을 넣어 짭짤한 상태로 만들어 끓어오르면 스파게티를 넣고 간이 스밀 수 있도록 끓여 준다.

새끼손톱만 한 마늘을 칼 등으로 내리쳐 준비하고 적 양파는 다져 놓는다.

불린 포르치니를 건져내 물기를 꼭 짜준 후 너무 작지 않게 다지듯 썰어준다. 불린 포르치니가 들어있던 검은 물은 한쪽에 놓아둔다.

팬에 두른 올리브유가 데워지면 마늘을 넣고 투명해지면 양파를 넣고 양파마저 투명해지면 썰어 놓은 포르치니를 넣고 볶아준다.




다음엔 페페론치노를 넣고 포르치니를 불렸던 검은 물을 부어주고 바글바글 끓여 준다.

반쯤 졸아든 포르치니 소스에 소금과 후추로 간하고, 스파게티를 넣어 소스와 잘 섞어준다.

졸아든 스파게티에 갈아둔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넣어 잘 섞어준 다음 불을 끈다. 여기에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넣고 잘 섞고 스파게티와 소스가 한 번 더 잘 섞이도록 위아래로 흔들어주고 접시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파르미지아노 치즈를 올려 마무리한다.





“그래 이 맛이야."

"그 친구들과 선생님은 잘 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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