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올림픽도 시드니 책도 아니고 마라톤으로 시작해서 마라톤으로 끝나는
무라카미 하루키2015비채
까슬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보들한 하루키 특파원이 보내온 23일동안의 시드니 체류기!
이 책은 올림픽 열기가 한창 달아오른 2000년 한 스포츠 매거진의 요청으로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게 된 특별취재원 쿠라카미 하루키의 올림픽 관전기 및 시드니 여행기라고 하지만 실은 시드니 여행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접하는 TV중계와는 전혀 다른 지극한 사견(주로 불평불만이 많음;;)으로 똘똘 뭉친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올림픽 리포트와 소설가 하루키의 감성으로 전하는 낯선 도시 시드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사실 올림픽의 전반적인 내용이라고 하기엔 중간 중간 야구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마라톤 내용밖에 없을 정도로 하루키 작가의 주된 관심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책입니다. 그리고 특이하게 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일본 여자 마라톤 선수 다카하시 나오코가 아닌 중도 포기한 일본의 대표 마라톤 선수 이누부시 다카유키와 그 감독의 인터뷰가 말미에 실려 있구요. 뉴욕 마라톤(갑자기?)에서 기대에 못 미치게 금메달은커녕 10위를 기록한 또다른 여자 마라톤 스타 아리모리 유코의 취재기도 실려 있습니다. 주로 승리한 사람들 인터뷰만 볼 수 있고 패배(?)한 사람들 속마음은 알기 힘든데 진솔하게 취재하셨더라구요. (그치만 하루키님은 소설가잖아요)
그리고 올림픽 경기에 대한 주된 내용보다는 뒷이야기 취재실 취재 눈치싸움, 숙소, 음식, 올림픽 경기장으로 가는 길 등 비하인드 스토리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저 유명하고 저명한 당대 최고의 위대한 소설가 하루키님을 감히 시드니 올림픽을 취재하라고 3주나 출장을 보낸 ‘스포츠그래픽넘버’잡지의 패기에 우선 놀랐구요. 모든 행사를 거부하며 모든 지인의 결혼식은 패스하고 심지어 본인의 결혼식도 열지 않았으면서 본인의 직장도 아닌 한 잡지사의 요청으로 머나먼 시드니까지 가서 단기간에 400페이지에 달하는 취재 원고를 쓴 당시 50대였던 하루키 작가의 집념과 패기에 또 놀랐습니다. 본인도 그 당시 20년 경력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후기에 적으셨더라구요. 놀라운 경험이었지만 앞으로 같은 경험은 사양한다고 하셨습니다 하하핫 그리고 이 기사에 잡지사가 만족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후훗
주의) 스포츠에 관심이 있거나 시드니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패스하셔요. 오로지 하루키에게 흥미 있는 분에게만 재미있을 책입니다. 시드니에 대해 호주에 대해 잘 알고 싶으신 분은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읽으셔요. 이 책은 객관적으로 유머가 난무하며 아주 재미납니다. 저는 하루키 작가의 에세이를 즐겨 읽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인상적인 문구를 옮겨적으며 마치겠습니다.
어딜 가나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존재하며 그 무엇으로도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변화를 증오한다.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변화를 자신을 향한 개인적인 모욕과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복합적인 시점을 갖추는 것을 정신적 후퇴라고 여기는 사람까지 있다. 이러니 호주 원주민 출신의 캐시 프리먼이 죽자 사자 금메달을 따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400미터 부문에서 아무도 그녀를 따라가지 못했다. 사냥감을 덮치는 맹수처럼 결승선을 향해 가슴으로 크게 다이빙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환호성은 거대한 땅울림이 됐다. 그 자리에 있던 내게 그 시간은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 속에 딱딱하게 굳은 무언가가 녹아내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걸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본 것만으로도 오늘 밤 여기에 온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순간이었다. 캐시 프리먼의 싸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캐시 프리먼이 육상 트랙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디에서나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나는 바랐다. (255)
마라톤에서는 1위 선수만이 승자가 아니다. 선수에게는 저마다의 싸움이 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장소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한다. (중략)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경쟁이다.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후회없이 싸우는 것이다”(337)
우리는 거의 모두 자신의 약점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 약점을 지울 수도 없다. 그 약점은 우리를 구성하는 일부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옳은 행동은 약점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정면으로 받아들여 약점을 자신의 내부로 잘 끌어들이는 것이다. 약점에 발목을 잡히는 것이 아니라 디딤돌로 새로이 구성해 자신을 좀 더 높은 곳으로 끌고 가는 것 뿐이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얻는다. (394)
금메달이란 대체 뭘까. 금메달을 따기 위해 나 자신을 그렇게까지 버려야 하는 걸까. 한 사람의 인간인 자신을 그렇게까지 지워야만 하는 걸까. (중략)열의만으로 달릴 수 있는 나이는 인생에서 한정되어 있잖아요. 결혼하고 가정을 만들고 인생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러운 형태로 오래오래 경기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397, 아리모리 유코의 인터뷰)
올림픽은 우리에게 하나의 거창스러운 메타포다. 만약 우리가 세상 어딘가에서 이 메타포와 실체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메타포가 다른 메타포로 연결될 뿐이라면 우리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기묘하게 생긴 대중매체의 놀이공원이리라. 나는 시드니의 야생 동물원에서 단잠에 빠졌던 왈라비를 떠올렸다. 녀석의 크고 두꺼운 꼬리의 감촉을 기억했다. 그것은 어떤 메타포도 아니었다. 좀 기묘하지만 나는 그 왈라비의 도움으로 올림픽이라는 메타포를 땅에 붙들어 맸다. (401)
나는 대체 시드니에서 뭘 본거지? 나는 경기의 진정한 모습을 놓쳐버린 것일까? 누가 뭐래도 나는 일부러 남반구까지 가서 실물을 보고 왔다. ‘이건 올림픽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우리는 투하 자본과 거대 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고 올림픽은 그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월등하게 친절하고 고상한 해설과 반복 재생이 첨부된 공동 환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 환상의 복합성이 만들어낸 것 중에는 우리의 실재와 분명하게 연결된 무언가가 있다. 환상의 실재성과 실재의 환상성이 어딘가에서 교차한다. 그것이 올림픽이라는 거대 장치를 통해 내가 지켜본 풍경이었다. (405,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