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풍경, 페즈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아보긴 했지만 페즈는 정말 태어나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특히 메디나의 노란색 육면체 건물들이 여러 개 쌓인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알라딘이 자스민공주 손을 잡고 도망치는 장면의 배경 같았다.
모로코를 여행하며 메디나(Medina) 라는 말을 난생처음 알았다. 아라비아어로 메디나는 도시를, 이슬람에서는 구시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고 하는데 페스의 메디나는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천년이 넘는 건축양식과 도시 모습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인데, 오랜 세월 때문인지 메디나는 아주아주 빼곡히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골목이 9천개나 된다는데 이많은 골목이 그렇게 만들어진 모양이다.)
9천개 골목에서는 Gps도 구글맵도 소용없어 오프라인 지도 앱(MapsMe)을 썼다. 아니? 사실 그마저도 10m에 한 번꼴로 길을 잃어서 나중에는 그냥 마음 놓고 길을 잃어보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엄청난 눈호강도 했다. 골목마다 상점앞에 앉아 사람들이 손에 칼을쥐고 나무인형을 깎고 있거나, 도자기를 만들거나, 태피스트리를 짜고있었다..수공예품 만드는걸 라이브로 보다니. 너무 멋져서 심장이 뛰었다. 영화세트장에 제대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도 대체 몇 년 전 물건인지 가늠할 수 없는 원석, 필름카메라, 나무로 깎아 만든 악기, 스테인드글라스조명같은 죽여주는 수공예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골목마다 즐비했다.
메디나의 입구는 왕궁의 대문같이 생긴 건축물 ‘블루게이트’였다. 이 블루게이트로 들어가면 미로 같은 골목의 메디나가 나타나는 구조인데, 메디나의 사람들이 대부분 요정 같은 전통 의복 ‘젤라바’를 입고 ‘바부슈’를 신고 있어서 그 모습이 구시가지와 어우러져 참 신기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블루게이트만 통과하면 미로 같은 골목에 형형색색 태피스트리와 그릇, 오만가지 향신료를 파는 것이다. 그 풍경이 너무 생경해서 그냥 만들어진 세트장을 걷는 것 같았다. 사하라 사막에 가기 위해 억지로 들린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단 걸 깨달았다.
페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슈아르 테너리라는 가죽 공장이다. 편리한 화학약품이 생겼음에도 비둘기 배설물같은 자연재료를 손발로 만지며 가죽을 만드는 방식때문에 유명한데, 이런 제작방식 말고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팔레트처럼 보이는 풍경도 장관이다. 사실 객관적으로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수도있다(?) 동물의 벗겨진 가죽이 널려있고, 고약한 냄새 때문에 코에 민트 잎을 꽂고 있어야 하니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보냐는 심정으로 길을 잃으며 애써 찾아갔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 경험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페즈의 메디나는 골목이 좁고 건물이 높아서 내가 어디쯤인지, 건물 옆엔 뭐가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슈아르 테너리를 보기 위해 가죽 상점 옥상으로 올라가 보면 복잡한 메디나가 한눈에 볼수있다! 파란 하늘과 모래성 같은 건축물이 빽빽하게 보이고 그 중앙에 탁 트인 가죽 공장의 풍경이 팔레트처럼 펼쳐지는게 아주 진풍경이다.
고약한 냄새 때문에 오래 있을 순 없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 다른 모습의 공장을 바라보며 문화와 역사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고, 다른 각도에서 페즈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참 귀한 경험이었다.
한국에 살면서 나는 이토록 다양한 색을 본적이 없다. 아프리카는 다 이럴까? 모로코는 신기할정도로 여러가지 색과 패턴을 과감하고 다양하게 사용하는데,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도 내가 살면서 항상 무채색과 무난한 패턴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건 그냥 내 편견이 아니었을까. 편한길을 걷기위해 했던 선택이 아닐까.
*메디나 밖은 마트도 있고, 버거킹도 있었다. 생각보다 발전된 도시모습인데 메디나안의 사람들은 마치 그 안에서만 살고있는 사람들 같아 신기했다. 메디나엔 팔지 않는 물건이 없으니 그 안에서만 사는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모로코 사람들은 1을 7처럼 쓰는 것 같다. 영수증을 보고 몇 번이고 되묻다가 깨달은 사실
*좋은 기억들을 적었지만 페즈는 사실 악명 높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빈곤율과 범죄율이 높아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많고, 실제로 캣콜링과 인종차별을 많이 받기도 했다. 자기가 쫓아와놓고 내가 길을 알려줬으니 돈달라는(?) 사람은 아주 흔했다.
*모로코인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나간다고 생각한단 소문을 들었다.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을 때 이를 의식해 사람이 없는 곳만 찍으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