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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티프로젝트 Apr 14. 2023

진저티 신입사원 영재의 진저티플 버스킹: 고운

스스로 가장 고된 하루를 살아낸 후, 왜 힘들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함께하는 사람들을 아름다운 빛으로 위로해주는 노을.

안녕하세요 여러분. 벌써 7번째 인터뷰이입니다! 이번엔 고운님을 모셔봤습니다. 아쉽게도 고운 님은 이번 인터뷰를 끝으로 진저티에서의 1막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여정을 향해 떠나신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떠나시기 전에 붙잡고 인터뷰를 해봤습니다! 그럼 진저티에서의 고운님의 마지막을 피날레로 장식할 인터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영재: 고운님 자기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고운: 어쩌다 대표를 3년째 하고 있는 김고운이라고 합니다.


영재: 기존 버스킹에서는 저희가 진저티 오기 전에 어떤 삶의 맥락을 다 물어봤는데요. 그것보다는 좀 시간을 앞당겨서 진저티에 처음 들어오게 되었을 때를 물어보고 싶어요. 처음 진저티에 들어오게 된 계기, 어떤 마음으로 들어오게 되셨는지 등 스토리를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운: 저는 신기하게도 진저티 창업할 때부터 연결되어 있었어요. 이전 직장에 다닐 때였는데, 실력 있는 세 명의 여성이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만나서 함께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했었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법인의 형태로 만드셔야 한다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지금의 주식회사 진저티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되었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 회사가 지금 나의 회사가 될 거라고. 나의 특별하고 소중한 파트너사 정도였죠. 제가 전 회사를 그만두고 무중력 상태에 있을 때 현선 님(아마 대부분 다 아시겠지만 진저티프로젝트 공동창업자이자 지금의 진저티 DNA를 만든 특별한 주주님)을 오랜만에 만나 재밌는 대화를 나눴고, 헤어지는 타이밍에 현선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2주 후에 만나요!” 

보통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헤어질 때는 ‘다음에 언제 또 봐요.’ 이런 식으로 다음에 볼 날짜를 특정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2주 동안 진저티 내부 구성원들에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논의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저에게 진저티에서 함께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저는 이전 직장을 그만두고, 회복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일 공동체’가 될 줄은 몰랐던 거죠. 진저티 구성원 5명이 저를 에워싸고 인터뷰를 했던 순간도 조금은 어리둥절한 상태여서 별 긴장감 없이 ‘면접'이라는 것을 봤던 것 같네요. 제가 원래는 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 낯선 사람 다수와 대화할 때 속으로 긴장하는 편이기도 한데, 그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그날의 편안한 대화(=면접) 이후에 진저티에 오게 되었네요.


영재: 그렇게 고운님의 진저티 여정이 시작되었군요! 저도 현선 님과 대화를 나누다 진저티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신기하네요. 시작이라는 점에서 갑자기 궁금해졌는데요. 고운님이 진저티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나누셨던 대화가 궁금해요. 혹시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으신가요? 

고운: 함께 인터뷰를 마치고, 같이 일하는 것을 결정한 날, 현선 님이 저를 사무실로 부르시더라고요. 그리고 저한테 어떻게 일하고 싶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재밌게 일하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그때 생각했던 ‘재미’라는 건 조금 우여곡절이 있긴 한데. 제가 이전 직장을 조금 힘들게 그만두고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었는데, 제가 정말 좋아했던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를 방문했었어요. 자포스(Zappos)라고. 그 회사에서 받았던 충격과 인상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FUN’이었거든요. 그 잔상이 오래 남아서 ‘재미'있게 일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재미'는 굉장히 플랫하고 막연한 거였던 거 같아요.


고운님 인터뷰 당일, 고운님 동네 감성 카페 '사이유지' 앞에서

영재: 저도 그런 느낌으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진저티에 들어왔어요. 그동안 그런 재미가 많이 채워지셨던 거 같나요?

고운: 그때만 해도 이렇게 ‘재미'라고 퉁친 경험으로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몰랐다면 이제는 이렇게 아주 소소한 것들이 점철된 ‘빅(big) 재미'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햇살 좋은 날 합정에서부터 망원시장까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서 호박식혜 사 먹기  

    우연히 함께 걷다 발견한 팝업스토어에서 레코드판을 뒤적거리며 동료의 음악취향 발견하기  

    원온원 대화를 핑계로 연남동의 노을뷰찻집에서 3시간을 대화하고 헤어지는 말미에 잘 가라고 인사하고 난 후 배고프지 않냐며 피자 먹고 가기, 그렇게 총 5시간 대화하기  

    새로운 거, 성장하는 거 무섭다며 재택 하면서 전화로 1시간 넘게 통화하기  

    명절에 동료 허락 없이 그 집에 모여서 각자 원하는 거 하기(나는 뜨개질, 누군가는 루미큐브)  

    동료의 여자친구를 만나 로컬브랜드 맛집에서 맛있는 거 먹고, 고민을 함께 고민하기  

    1시간 넘게 출퇴근하는 동료의 집에 가서 치킨토마토스튜에 레드페퍼매시포테이토를 얻어먹고, 그 친구의 아름다운 동네 탐방하기  

    일본스터디트립에서 약속 없이 떠난 각자 취향의 날, 피카소 그림을 보다가 우연히 옆에서 반가운 나의 동료 발견하기  

    아프고 힘들 때 다정하게 어깨를 내어주는 동료에게 기대어보기

    지역에 사는 동료가 우리 집에서 자면서 도란도란 얘기 나누고 반려묘인 초코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지켜보기  

    프로젝트를 하며 알게 된 WFM 친구들 집에 초대해 초코의 냥펀치를 맞아가며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기  

개인이 어떻게 퍼포먼스를 내야 되는지 ‘일잘러’로서의 고민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합과 재미를 더 디테일하게 다양한 레이어로 경험하며 ‘공동체러’로서의 체급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네요. 정말 이것보다 더 많은데! 지금처럼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느껴지기도 해요. 세상에 어떤 회사가 퇴사자 인터뷰를 한다고 이렇게 회사 근처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우리 동네 카페(찐 도토리로 물물교환하는 그런)까지 와서 이야기를 하고 그래요.


영재: 맞아요. 저도 이런 시간들이 진저티에서 제일 즐거운 것 같아요. 아 물론 일을 할 때도 즐겁지만요. 일하기 싫다는 건 아닙니다! ㅎㅎ 수습이 안되네요 넘어가야 겠어요. 고운님은 그동안 관계에 대해서 깊은 재미를 느끼신 것 같아요. 고운님은 진저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걸 경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고운: 저는 이제 진저티 와서 공동체의 효험을 봤다고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저는 진짜 고양이 같은 사람이라서 남들이 그냥 특정 보호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는 건 싫다. 이런 사람이었거든요. 물론 굉장히 학습된 소셜매너로 표현하는 편이지만 처음에는 진저티에 와서 서로의 집에 가고 막 아무렇게나 자주 전화하고 그런 게 너~~ 무 싫었어요. 개인 사생활 보호 같은 건 전혀 없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사생활을 침해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개인의 맥락을 굉장히 촘촘하게 공유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진저티에 와서 저의 취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기도 했고, 그런 순간들을 통해서 제가 회복될 수 있도록 다들 같이 견뎌준 것 같아요. 물론 그게 쉽지는 않죠. 나의 연약함도,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을 수용하는 것도 함께 훈련되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공동체의 진짜 멋진 효험을 맛보고 싶다. 그런 공동체가 필요하시거나 만드실 분들은 진저티로 오셔서 차 한 잔 하시는 걸 추천해요.

고운님 페어웰 당일, 고운님의 버킷리스트 인생네컷!


영재: 이제 본격적으로 퇴사자 인터뷰 질문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시작하기가 싫네요… 아 보내드리기가 아쉽다는 말입니다. 고운님이 생각하시기에 진저티에서 이룬 성취는 무엇인가요?

고운: 음 성취라는 단어를 보면 achievement랑 fulfillment 두 개가 생각이 나는데요. 먼저는 약속의 성취라고 하는 fulfillment라는 부분을 말해보고 싶어요. 진저티 안에서 제가 회복된 경험을 통해서, 목적이 이끄는 다음 여정으로 갈 수 있게 된 게 진저티에서 경험한 의미 있는 성취라는 생각이 듭니다. 

Achievement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진저티가 개인과 조직이 건강해지는 거를 목적으로 두고 일하기도 하잖아요.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 하면서 사람들이 살아나는 거를 진짜 많이 목도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거기에 기여했구나라는 감각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영재: 어떤 사업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버터나이프크루 당시 고운님

고운: 저는 아무래도 3년의 연속성을 갖고 실험했던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제가 진저티에 와서 처음으로 극한의 ‘고통'과 ‘재미'를 동시에 느꼈던 사업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진저티의 ‘굳이 굳이’ (굳이 고려 안 해도 될 부분까지 끝까지 고려하고, 굳이 끝까지 수고를 더 한다) 스피릿과 맞닿아 있는 청년들과 동료들을 만나기도 한 경험이기도 해서요. 

청년들이 함께 모여서 자신들의 삶에 맞닿은 주제들에 대해서 본업이 있는 분들도 문제해결을 위해 새벽까지 논의하고 우여곡절 끝에 ‘굳이 굳이’ 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도전과 영감을 받기도 했고요. 조금 포기하고 싶은 분들도 임파워링(empowering)하면 끝까지 해내는 성장 드라마 같은 감사한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저에겐 의미 있는 실험이었어요. 그분들이 정말 크고 작은 임팩트를 만드는 거를 우리가 눈으로 봤기 때문에, 저는 그 사업을 진행했던 것도 너무 기뻤고요. 추억들도 많았거든요. 같이 협업하면서 진저티 구성원끼리도 그렇고 진저티와 같이 협업했던 빠띠, 니트 생활자, 소셜임팩트오퍼레이션스, 여성가족부 주무관님들 세상이 가진 납작한 시선들을 보기 좋게 우리 다움으로 보여주는 이런 멋지고 다정한 사람들과 연합해서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들이 큰 자산으로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밖에도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사업들. 파트너들 모두 기억에 남는데 개인적으로 작년에 새롭게 토크콘서트 모더레이터를 해 볼 기회를 주신 스페이스살림의 민경님, 태은님께도 스페셜 감사를 드려요. 


영재: 좋습니다이쯤에서 넘어가 볼까요다음 질문은 ‘자신이 가장 성장했다고 느끼는 영역과 역량은 무엇인가요?’입니다. 고운님이 진저티에서 가장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고운: 음 강제 리더십? 강제로 공동대표가 된 경험? 생각해 보면 사고가 확장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진저티에서 일을 하려면 강제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스템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주어진 맡은 바를 수행하다 보면, 성장도 강제로 하게 되는 거 같아요. 

확실히 진저티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새로운 분야에 실험이 필요하거나,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오잖아요.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의 폭, 접촉면이 넓다 보니까 저도 덩달아서 생각의 확장이나 자극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아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성장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고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진짜 개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진저티 안에 남아있는 선대 리더십들의 유산과도 같은 마음이, 저의 사고의 확장과 성장에 되게 핵심 DNA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 끝 차일 수 있는데 제가 대표가 되지 않았다면 못 보았을 어떤 면을, 대표가 되고 나서는 저런 면을 봐야 되는 거구나라는 배움이 일어났던 거죠. 덕분에 사고나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영재: 세 번째 질문이에요!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일하는 동안 고운님이 가장 노력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고운: 그냥 저 개인적으로는 매 순간 도전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근데 진짜 피하고 싶은 도전도 진짜 많았거든요. 대표적인 건 ‘공동대표’ 이런 거 ㅎㅎ 근데 어쨌든 피하지 않고, 매 순간 노력했던 것 같고요. 조직적으로는 과거 직장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경험을 했기 때문에, 진저티의 시스템적인 부분이나 체계가 비어 있는 구석을 제가 더 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 같거든요. 

시스템에 순응하던 제가 회사의 어떤 빈틈에 불평하기보다 기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는 것에도 쏠쏠한 재미를 느꼈고, 그런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요. 그게 아예 경험을 안 해본 분들은 이게 없어도 불편한지 어떤지 모르시는 상황일 수 있는데, 제가 봤을 때는 그 사람도 힘든 상황인 거면, 그 동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고요. 


고운 님 집에서 했던 홈 파티 feat.가은님, 예은님

영재: 지금 진저티 내부의 행정 시스템을 포함해서 여러 체계가 다 고운님이 만드신 거라는 게 진짜 놀라운 거 같아요. 위대한 유산이라고 하고 싶어요. 혹시 관계적으로는 어떤 노력이 있으셨는지도 궁금해요!

고운: 노력이라기보다는 좋았던 점과 가까운데요. 타인에 대한 공감은 저에겐 조건반사처럼 일어나는 성질의 것이어서,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공감은 많이 하는데 이제 어떤 판단들로 수용은 잘 안 돼서 그게 항상 저한테 좀 챌린지이긴 하거든요. 공감은 하지만 칼같이 포용하지 않는 어떤 구석도 있다 뭐 그런 건데. 

제가 정말 좋아하는 최지훈 작가님의 ‘조직문화 재구성, 개인주의 공동체를 꿈꾸다'라는 책에 보면 “회사 생활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분열된 자아’, 곧 ‘자기다움의 상실'때문”이라고 쓰셨는데 정말 깊이 공감해요. 제가 감사한 거는 진저티가 그냥 그런 회사 같지 않게, 자기답게 일하는 거에 특화돼 있는 조직이었어서 진저티 안에서 진짜 저다움을 회복할 수 있었어요. 사람이 태어난 그 본연의 어떤 성질이 있잖아요. 그런 성질들이 드러나게 되는 공간이 진저티 같아요. 물론 가다듬어져야 할 부분도 함께 안전하게 드러나서 말이죠. 그래서 진저티가 훈련터 같다는 생각도 있어요. 

제가 진짜 다른 사람의 임파워링(empowering)을 돕는 것 정말 좋아해요. 어렸을 때부터 성장서사의 덕후거든요. 진저티에서는 일을 하면서도 이런 것을 경험할 수 있어서, 일하는 도중에도 채워지고 다시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진저티가 엄청 강도 높게 일하는 순간들도 많아서 고갈될 때도 있지만, 보통 회사에서 일할 때는 그런 의미와 가치가 쉽게 발견되지 않기도 하고, 노력했던 부분들이 굉장히 헛헛한 마음으로 돌아올 때도 있고 그렇잖아요. 진저티는 그렇게 헛헛한 마음으로 돌아왔던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모든 걸음에 진짜 이유가 있었던 진저티였기 때문에.


영재: 그 말이 떠올라요. 드라마 도깨비에서 ‘모든 날들이 좋았다.’ 감사해요 고운님. 

이제 4번째 질문입니다. 고운님의 다음 스텝에 대한 내용이에요. 고운님이 ‘인생의 새로운 전환/도전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떤 도전을 하게 되신 건지, 그 스토리도 함께 듣고 싶어요.

고운: 놀랍게도 저의 처음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요. 제가 진저티에 올 때부터 ‘북한’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들어왔어요. 그래서 입사하면서 현선 님한테 조건으로, 저 출근하는 거는 좋은데 제가 사실은 그전에 이미 스웨덴에서 하는 북한 관련 세미나에 스텝으로 참석하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고 했어요. 감사하게도 제가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제가 다른 분들의 배려로 첫 해에 스웨덴에 3주를 갔다 왔어요. 거기서 한 번 더 저의 방향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그 후로 진저티의 속도나 진저티의 밀도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빠르고 촘촘하다 보니까 이 북한이라는 키워드를 신경 쓸 여력도 없이 마음 한편에 이렇게 묻어놨던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이 ‘북한'이라는 키워드에 뜻이 있고 이 길로 가고자 하시는 분들 다 앞으로 나오세요 하는데 저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 나간 적이 있어요. 엄청 큰 대강당에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앞으로 나간 사람은 진짜 한 스무 명 미만이었거든요. 그 일이 작년부터 리마인드 되기 시작했어요. 그거를 상반기에는 좀 외면했던 것 같고,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시그널이 선명해졌어요.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다음 학교’와 관련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약간 올 것이 왔다는 느낌? 왜냐하면 거기에 그 학교의 키워드가 ‘통일, 다음 세대, 북한'이 있었는데, 어떤 분들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거나 관심이 없다고 느껴지는 부분이겠지만 저에게는 모두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키워드들이었어요. 그 키워드들이 영상에 한 번에 등장해서 조합되는 걸 보는 순간, ‘큰일 났다.’ 약간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애써 그 마음을 계속 외면하려고 했는데, 그 장면이 몇 달 동안 잔상이 남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는 연락을 해봐야겠다 생각하고 프로보노를 할 수 있을지 연락해 봤죠. 


영재: 한편으로는 무서우셨을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이 들지는 않으셨어요?

고운: 작년부터 제 마음에 내적 갈등이 좀 심했어요. 왜냐하면 그 방향으로 가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게 명확한데, 저에게 주어진 진저티에서의 공동 대표라는 역할에 대한 책임을 진짜 끝까지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그 학교에 처음 전화했을 때 컨택했던 선생님이 올 4월에 그만두신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 후에는 그 학교에 뭔가 사람이 필요하려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이 설마 나인가?라고 본격적으로 연결고리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함께 공동대표를 한 주은님과 이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주은님이 ‘고운님이 가야 하는 상황이 되면 말해주세요.’라고 말해주셨어요. 제가 주은님이라면 이렇게 진저티의 중요한 시점에 내려놓아도 된다는 말이 입 밖에 나왔을 것 같지가 않거든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리더십인 주은님, 현선님과 계속 대화하면서 이거는 진짜 내려놔야 되는 때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책임에 대한 저의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게 되었던 거 같아요.

고운님 출근 마지막 주, 매니저들에게 행정 꿀팁 전수중

영재: 고운님이 해주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묵묵히 애써주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요. 정말 마음의 짐 없이 홀가분히 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고운님은 이제 어디로 가시나요?

고운: 저는 ‘다음 학교’라는 곳으로 가게 됐어요. 이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그널이 몇 개 있는데, 첫 번째는 워크숍을 통해서 다음학교와 연결된 부분이었고, 두 번째로는 그 학교 선생님 그만두신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제안을 드렸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교장, 교감 선생님이 채용하려면 새로운 포지션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육청에 인가를 받거나 하는 과정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타이밍이 딱 이번 주까지였어요. 제가 만약에 조금이라도 결정이 늦어진 상태였으면 이렇게 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그분들 하고 대화를 나눴을 때 제일 저한테 강하게 왔던 키워드는 열매, 그리고 다음세대였어요. 우리가 북한이라는 키워드로 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다음 세대를 분명히 키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그 열매라는 거를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 이 얘기를 듣고, 제가 가야 할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영재: 북한이라는 키워드는 정말 누군가는 해야 하는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제가 손대기엔 아득하고, 정말 불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고운님의 다음 스텝에 대한 마음이 정말 감사한 것 같아요. 고운님의 새로운 도전을 저도 이곳에서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다음 질문이에요. 진저티를 위해서 고운님을 대신할 사람은 어떠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 게 좋을까요? 

고운: 이 질문은 앞으로 퇴사자 인터뷰할 때 바꾸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뿐만 아니라 진저티에 다녀간 각 사람이 대체될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진저티에는 어떤 사람이 와야 될까라는 거를 생각했을 때 저는 ‘태도’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스펙이 엄청 화려하다 한들, 그런 게 진저티에서 크게 의미 있나라고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우리 영재님처럼 한때는 약간 금쪽이 코스프레를 좀 하셨었는데, 저는 영재 님을 보면서도 그런 걸 느꼈거든요. 제가 맨날 영재 님한테 하는 얘기 있잖아요. 평소에는 금쪽이 같아도 작년 보고서 쓸 때에 남들 다 쓰러질 때 마지막까지 그거를 써내는 힘이 있다고. 그게 영재님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을 위해 수고하는 영재님을 볼 수 있었어요. 

영재님처럼 다른 진저티플도 상황마다 그 사람이 그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진저티에 있기 때문에, 새로 올 사람은 이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가 있는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리고 동료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냥 일반 회사에서는 남들이 힘들면 힘든 대로 그냥 알아서 그만두겠지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데, 진저티에서는 누군가 분명히 힘든 구간이 있을 때 그거를 외면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영재님 같은 사람?


고운님 인터뷰 당일, 도토리가 예쁜 '사이유지' 카페에서

영재: 앗.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어댑티브 리더십 감수 사건’ 이후로 팀원들한테 미안해서 동료가 힘들 때 외면을 못 해요. 그때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 줄 몰랐거든요. 어댑티브 리더십 원고 제출일 전날에, 모두가 다 같이 검수할 때 그냥 간단한 최종 검토 이런 거일 줄 알고 재택을 했거든요. 근데 다음 날 다들 밤을 새신 거예요. 좀 도와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시면서. 그때가 또 저 스스로가 체력적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었고 되게 할 의지도 있었거든요. 근데 저의 편안함만 생각했을 때 우리 팀이 너무 힘든 걸 보니까, 그때부터 전체를 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신입이라… 저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제 얘기가 길었네요.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진저티프로젝트가 좀 더 안전하고 성장하는 일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제안해 주세요.’인데요. 이와 함께 남아있는 진저티플에게 무엇이 필요할 것 같은지를 말해주시면 어떨까요?

고운: 우리가 이제 학습하는 조직으로서 많은 실험과 시도들을 하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각자가 외부의 어떤 전문적인 영역들에 가서 그거를 배워오고 또 그 배운 거를 가지고, 내부적으로 전파 학습도 하고 각자가 대표인 주은 님이 많이 맡아서 하시던 외부와의 접촉면을 다른 분들이 함께 맡아서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개개인 스스로가 그런 접촉면이 더 넓어지는 영역과 그런 곳에서 학습하는 기회들이 많으시면 좋겠어요. 투자하고 배우고 하는 것을 더 장려하면 좋을 것 같고요. 

그리고 조금 고민되는 거는 진저티가 프로젝트에 자율과 책임을 많이 주는데, 가끔은 그 체급에 맞지 않는 책임이 부여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버거움이 있을 때, 영재님처럼 바로 말하는 사람은 괜찮지만, 성향적으로 먼저 어려움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앞으로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해결을 못했지만, 계속해서 누구든지 힘들 때 나눌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데 힘쓰면 좋겠어요. 


영재: 이제 거의 마지막입니다. 결코 찐 마지막은 오지 않을 거예요. 진저티는 한번 연결되면 어떻게든 다시 연결될 테니까요. 고운님 1막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인척'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고운: 진짜 저희 진저티 동료들에게 너무 고마워요. 저를 리더로 만들어주셔서.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 걸 스스로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로, 대표로 키워주셨던 것 같아요. 실제로 ‘킹메이커’를 자처하신 분도 있었고요.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저의 미숙함도 인내해 주신 많은 파트너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이전 직장에서는 아픈 상태에서 그만두게 된 상황이어서, 이 결정이 맞는 걸까? 하고 혼란스러웠는데 지금은 그에 비해 정말 깨끗한 결정인 것 같아요. 다음 스텝으로 가는 여정에서 정말 안전하게 마무리하게 해 주신 것 같아서 하나님께 감사해요. 같이 갈 수 있는 동역자로 이렇게 만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잖아요. 나중에도 진저티와 제가 가는 학교에서도 다른 차원에서 연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우리 진저티 여러분의 새로운 여정에도 기도와 응원으로 함께 할게요. 


고운님 안녕! 곧 기쁜 마음으로 다시 뵈어요! 진저티가 고운님의 새로운 여정을 응원합니다! :)

가장 춥고 어두웠던 새벽을 지나, 가장 치열하게 따뜻한 빛을 낸 후,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고운님은 ‘노을' 같아요. 

스스로 가장 고된 하루를 살아낸 후, 

왜 힘들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함께하는 사람들을 아름다운 빛으로 위로해주는 노을.


진저티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새로운 회복을 주기 위해 떠나는 고운님께 드리는 저의 버스킹 곡은 이하이의 ‘한숨'입니다.


https://youtu.be/5iSlfF8TQ9k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저는 이 곡을 마음이 힘들거나 위로 받고 싶을 때, 강변을 걸으면서 자주 듣곤 해요. 

그러면서 쌓인 감정을 털어내기도 하고요.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요즘 마음 상태는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어떤 마음이든, 고운님이 진저티플을 위로할 때 그랬던 것 처럼, 저도 아무 말 없이 여러분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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