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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 Mar 26. 2018

초록 불빛을 향해 나아가는 삶-위대한 개츠비

스콧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나는 개츠비라는 한 남자를 알고 지냈던 적이 있다. 오래 전 일이다. 겉으로만 보자면 개츠비는 내가 내놓고 경멸하는 부류의 대표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개츠비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그가 보여준 삶에 대한 방식 때문이다. 그는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땅거미 내려앉는 거리를 지나다 위를 올려다보면 노란 불빛이 비치는 창문들이 보인다. 창문은 마치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비밀을 엿보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창문을 올려다보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 했다. 놀랍도록 다양한 인간사에 매혹당하는 한편 진절머리를 내면서.    


<톰과 데이지>

개츠비를 만나기 전 내가 먼저 알았던 사람들은 톰과 데이지였다. 데이지는 먼 친척이고 톰은 고등학교 알던 사이였지만 둘은 다시 만난 건 내가 고향을 떠나 한동안 살았던 동네에서였다. 그 동네는 북미대륙에서 가장 이상한 동네 중 하나였다. 나는 해협에서 가까운 작은 집을 빌려 살았는데, 내가 살던 집은 거대하고 엄청난 대저택 사이에 끼어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대저택이 개츠비의 집이었다. 

톰과 데이지는 부부였다. 톰은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는데, 예일대학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린 친구였다. 그는 스물한 살 때 이미 오를 수 있는 곳까지 다 올라서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 그 뒤로는 모든 게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부류였다. 그 부부는 폴로를 할 줄 아는 부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즐기며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톰은 대학시절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입은 고집스러워 보이고, 태도는 건방지고, 두 눈은 거만하게 번뜩였다. 데이지는 사랑스러웠다. 빛나는 눈동자와 정열적으로 빛나는 입, 눈부신 광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흥분 같은 것이 실려 있었다. 아무 말이나 떠들어대는데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투였다. 

데이지는 명랑하게 떠들다가 잠시 주저하며 말했다. 

“난 끔찍한 나날을 보냈어. 모든 것에 대해 냉소적이 됐다구.”

딸을 낳았을 때 데이지는 혼잣말을 했다고 했다. ‘딸이라서 다행이야. 이왕이면 아주 바보가 돼버려라. 이런 세상에선 바보가 되는 게 속 편해. 귀여운 바보가.’ 데이지는 태도를 돌변하며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했다. 눈동자가 거만하게 빛났다. 잠시 후 그녀는 예쁘장한 얼굴로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았다. 변덕 때문에, 그녀가 하는 말들이 진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데이지의 남편인 톰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었다. ‘뉴욕에 다른 여자가 있다’는 말은 톰에게 잘 어울렸다.     


<톰과 윌슨부인>

기차를 타고 같이 뉴욕으로 가던 길에 톰이 내 팔을 잡고 강제로 끌어내렸다. 애인을 보여주겠다는 거였다. 

톰의 애인인 윌슨부인은 삼십대 중반에 약간 살찐 몸매를 가진 유부녀였다. 움직임이 육감적이고 얼굴은 예쁘지 않지만 눈부신 생동감이 뿜어져 나왔다. 톰과 그의 애인이자 정부인 윌슨부인과 나는 함께 뉴욕으로 가 사람들을 초대해 아파트에서 술을 마셨다. 나는 산책이라도 하려 했지만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붙잡혀 의자에 앉아있었다. 

톰과 윌슨부인은 술을 마시다 열띤 목소리로 말다툼을 벌였다. 윌슨부인이 데이지 이름을 언급할 권리가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였다. 윌슨부인이 소리 질렀다. 

“데이지! 데이지! 부르고 싶을 땐 언제든지 부른다구. 데이지!”

톰이 손바닥으로 그녀의 코를 후려쳤다. 빠르고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윌슨부인이 고통을 호소하며 울부짖었다. 화장실 바닥이 피 묻은 수건들로 어지럽혀졌다. 누군가 구급약을 들고 왔다. 여자들이 톰을 비난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사란 얼마나 놀랍고 다양한가. 그것은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진절머리가 난다.    


<개츠비>

그 해 여름 내내 옆집에서 파티가 벌어졌다. 개츠비의 집이었다. 남녀의 속삭임과 웃음소리와 샴페인과 별빛이 정원을 가득 채웠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개츠비의 저택을 찾았다. 

어느 날, 푸른색 제복을 입은 옆집 운전기사가 초대장을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개츠비를 가까이서 본 적도 없었다. 나는 정식으로 초대받은 몇 안 되는 손님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초대받지 않고도 파티에 왔다. 그냥 자동차를 타고 와서 개츠비 집 앞에 내리면 됐다. 그리고는 놀이공원에서처럼 즐기다 돌아가면 되는 거였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개츠비에 대한 이런저런 추측을 쑥덕였다. 살인혐의를 받고 있다는 말도 있었고, 전쟁때 독일 스파이였다는 말도 있고, 밀주업자라는 말도 있었다. 다들 개츠비에 대해 열심히 수군댔다. 개츠비는 사람들에게 낭만적 추측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개츠비와 몇 번 대화를 나눈 뒤 그와 별로 할 얘기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얘기를 나누기 전에는 그가 신비로운 거물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얘기를 나눠본 후로는 한동네 사는 호화로운 여관집 주인 정도로 여겨졌다. 개츠비는 꼼꼼하게 격식을 차렸지만, 참을성이 부족하고 다리를 떨면서 불안하게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곤 했다.     

개츠비는 진실만 말하겠다면서 내게 자기 얘기를 해주었다. 자신은 중서부의 부유한 집안 아들인데 가족이 모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한 재산이 생겼다고, 그 후 인도의 젊은 왕처럼 살며 가족들이 모두 죽은 슬픈 일을 잊으려고 노력했다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츠비는 거짓말을 하는 데 서툴렀다. 옛날 낡고 낡은 구닥다리 구절을 들으며 나는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개츠비는 내가 자신을 별 볼일 없는 놈으로 볼까봐 자신의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었다. 개츠비에게는 내게 잘 보여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데이지 때문이었다. 

진짜 개츠비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기 전까지 개츠비는 무의미한 화려함 속에 가려져 있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드는 화려한 파티를 여름 내내 열고, 그 파티에서 자신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들은 화려하지만 무의미했다. 그 모든 것들이 데이지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후에야 개츠비는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 보였다.     

개츠비의 부모는 실패한 농사꾼이었다. 제임스 개츠가 그의 진짜 이름이었다. 그는 열일곱 살에, 최초로 인생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 순간에 자기 이름을 개츠비로 바꿨다. 개츠비는 열일곱 살짜리 소년이 만들어낸 새로운 이미지의 인물이었고,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이미지에 충실했다. 개츠비는 코디라는 사람 밑에서 승무원이자 항해사, 비서, 경비 일까지 하며 요트를 타고 오 년 동안 북미 대륙을 세 번 돌았다. 코디는 죽으면서 개츠비에게 유산을 남겼다. 개츠비는 법에 무지해서 유산은 받지 못했지만 대신 코디에게 받은 남다른 교육으로 사업을 벌여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제임스 개츠는 개츠비라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로, 조악하지만 화려한 세계 속의 인물로 실체를 갖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개츠비와 데이지>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에 대해 말해준 사람은 조던 베이커였다. 톰과 데이지가 살고 있는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 본 여자였는데, 나는 그녀와 한동안 사귀었다.     

데이지가 톰과 결혼하기 전,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조던이 둘을 처음 보았을 때 개츠비는 또래 여자들이 한 번만 받아봤으면 하는 로맨틱한 시선으로 데이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개츠비는 그때 장교였다. 개츠비는 자신의 야망도 잊고 깊숙이 데이지에게 빠져들었다. 데이지는 상류층 여성이었고, 오만하며, 그녀의 집은 사치품들로 눈 부셨다. 그녀의 잘 꾸며진 세계는 즐겁고 유쾌한 속물근성의 세계로 가득했다.     

개츠비는 전쟁에 나가 대단한 활약을 치렀다. 휴전 조약이 성사되고 데이지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착오가 생겨 영국으로 가게 되었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돌아오지 않자 다시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며 하루에 대여섯 명의 남자들과 대여섯 번의 데이트를 이어가는 생활로 돌아갔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톰이 데이지 앞에 나타났다. 톰은 부자였고 자질과 신분에 묵직한 무게감도 있었다. 데이지는 톰과 결혼하기로 했다. 조던은 데이지의 신부 들러리였다. 결혼식 전날 파티 때 조던이 데이지 방에 올라가보니 데이지는 한 손에 편지를 쥔 채 취해있었다. 술을 깨게 하려고 욕조에 집어넣었는데도 편지를 놓지 않았다. 개츠비에게서 온 편지였다. 하지만 데이지는 다음 날 태연하게 톰과 결혼식을 치르고 남태평양으로 석 달짜리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리고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톰에게 집착하며 톰의 머리를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 몇 시간씩 모래사장에 앉아 그를 어루만지며 행복에 겨워 내려다보고는 했다. 

시간이 흐른 뒤 개츠비는 일부러 데이지네 집이 보이는 만 반대편에 집을 샀다. 커다란 정원이 있는 거대한 저택을. 그리고 화려한 파티를 벌이며 데이지가 파티에 찾아와주기를 기다렸다.     

조던은 말했다. 내가 데이지를 우리 집으로 초청해 자신을 초대해주기를 개츠비가 원한다고. 우리 집은 개츠비 집 바로 옆집이고, 개츠비는 근사한 자기 집을 데이지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고. 

나는 개츠비의 공들인 계획에 응해주었다. 다시 만난 데이지 앞에서 개츠비는 문자 그대로 타올랐다. 개츠비에게서 뻗어 나온 행복한 광휘가 온 방을 가득 비췄다. 데이지 역시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개츠비는 데이지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구경시켜 주었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출현이라는 기적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랫동안, 믿을 수 없는 집중력으로 꿈꾸어왔던 순간이 펼쳐진 셈이었다. 개츠비가 커다란 에나멜 장롱을 열어 산더미 같은 셔츠들을 꺼내 펼쳐 보여주었다. 리넨과 실크로 된 온갖 색깔의 다양한 셔츠들을.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셔츠더미에 얼굴을 파묻고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야. 너무 슬퍼. 한 번도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거든.”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는 돌이키고 싶어 했다. 데이지가 톰과 결혼하기 전으로. 데이지가 톰에게 ‘난 당신을 사랑한 적 없어.’라고 선언하고 자유로워진 그녀와 함께 결혼하고 싶어 했다. 지나간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하지만 개츠비는 모든 것을 예전 그대로 돌려놓을 거라고 했다. 그는 뭔가를 되찾고 싶어 했다. 몇 년 전, 데이지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던 바로 그것을. 그때 이후로 개츠비의 인생은 혼란스러웠다. 

개츠비가 되찾고 싶어 하는 것,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개츠비의 말은 아주 오래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삶을 이끄는 별빛, 희망을 되찾고 싶어 하는 거였다. 삶을 혼란스럽지 않게 해주는,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명백한 삶의 목적인 별빛을. 

데이지가 파티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츠비는 파티를 여는 걸 중단했다. 그리고 데이지가 편하게 찾아올 수 있게 하려고 하인들을 다 내보내버렸다. 손님으로 떠들썩하던 화려한 집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 날, 우리는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데이지와 개츠비와 톰과 나, 그리고 조던. 엄청나게 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시내에 나가기로 했다. 데이지는 톰이 있는 자리에서 개츠비에게 당신 멋있다고, 당신은 언제나 멋있다고 반복해 말했다. 개츠비를 사랑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셈이었다. 데이지 목소리에는 신중한 구석이 없었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해 말하며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자 개츠비는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라고 말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 금으로 만든 소녀상처럼 번쩍거리고, 심벌즈 소리처럼 요란하게 울려대기도 하는 목소리. 

개츠비는 톰에게 대놓고 말했다. 당신 부인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를 사랑한다고, 내가 가난했기 때문에 기다리다 지쳐서 당신하고 결혼했을 뿐이라고. 둘의 관계를 알게 되자 바람둥이 톰은 도덕군자처럼 굴었다. 자신의 마음은 언제나 데이지뿐이라고 했다. 데이지는 개츠비만을 사랑하며 그를 따라 떠날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데이지가 그동안 품어왔던 낭만적인 사랑은 현실 앞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시내에서 돌아오는 길 사고가 일어났다. 톰의 정부이자 애인인 윌슨부인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차로 뛰어 들어오다 치여서 즉사했다. 그 차에는 개츠비와 데이지가 타고 있었다. 운전을 한 사람은 데이지였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위해 기꺼이 사고를 뒤집어썼다. 그 날 밤 개츠비는 데이지를 지켜주기 위해 그녀의 집 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서 있었다. 톰과 데이지가 모의를 벌이고 있는 집의 창을. 

나는 개츠비에게 외쳤다. 

“다들 썩었어.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개츠비가 자기 부인인 윌슨 부인의 정부라고 믿은 윌슨은 개츠비를 죽이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어버렸다.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딱 한 명 빼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개츠비의 대저택 파티에 몰려오던 사람들이 수백 명이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데이지는, 꽃 한 송이, 조전 하나 보내지 않았다. 

데이지라는 단 하나의 꿈을 갖고 살아왔던 것에 대해 개츠비는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렀다. 불확실성 너머의 초록색 불빛, 데이지 집을 밝혀주던 초록색 불빛, 데이지라는 초록색 불빛을 향해 개츠비는 팔을 뻗고 끝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기꺼이 온 몸으로 몰락을 받아들였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거기에 있다. 자신이 믿은 불빛을 향해, 그것이 비록 헌신적인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데이지라는 불빛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밀어붙이며 나아갔으므로 개츠비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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