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온도를 오해하는 순간, 우리는 멀어진다.
아이들의 검도 대회를 앞두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초등 저학년의 경기로 시작해, 오후엔 초등 고학년과 성인부 경기로 이어지는 긴 하루. 아이들이 지루해할까 걱정되어,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애들 데리러 와 줄 수 있어?”
역시나, 답은 No였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막상 그 말이 돌아오니 또 한 번 실망감이 스쳤다.
“미리 말하지 않았잖아.”
“그건 학원에서 할 일이야. “
”넌 왜 늘 학원 편이야. “
익숙한 대답들. 결국 내 마음은 상할 대로 상했다.
지난 10년, 급작스런 연락에도 아이 둘을 데리고 말없이 나가야 했던 수많은 날들. 무작정 따라야 했던 시간들. 그 어떤 사정도 통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면 다툼이 됐고, 그로 인한 감정의 골은 더욱더 깊어졌다. 나만 감정을 삭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느 토요일, 남편이 퇴근하며 말한다.
“이따 저녁에 나갈 거야”
나는 늘 그렇듯 웃으며 말한다.
“그래, 잘 다녀와.”
쉬지 못하고 일만 하는 삶이라, 친구도 만나야 하고,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니까. 남편을 배려해야만 했다.
그 시간, 나는 두 아이를 돌보며 토요일을 보낸다. 일요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10년을 견뎠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남편은 예전의 방식 그대로다. 하루 전에 이야기하면 “갑작스럽다”며 거절하고, 미리 이야기하면 “그때 돼서 이야기해”하고 미룬다. 정확한 이유 없이, 충분한 설명 없이, 수 없이 거절당한다. 결국 내 마음이 다치고, 상처받고, 내 속을 다 뒤집고 난 뒤에야, 남편은 말한다.
“알았어. 주소 보내” OK를 외친다.
남편의 기억 속엔, 결국 들어줬다는 결과만 남는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엔, 수없이 쌓인 ‘NO’의 순간들이 남는다. 감정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고, 우리는 점점 진솔한 대화를 잃어갔다.
나는 남편에게 받은 감정을 삼킨다. 소화시키고, 그 속에서 정리하고, 남은 감정을 밖으로 내보낸다. 마치 음식을 먹고, 소화를 시키듯. 소화된 남은 찌꺼기를 몸 밖으로 내보내듯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화가 덜 된 감정의 덩어리가 아이들에게 향할까 두렵다. 이렇게 애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에 대한 신뢰도, 애정도 조용히 식어간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가장 두렵게 한다.
오늘의 참견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자식에게 이와 같은 관계의 실수를 반복할까? 아마도, 그들을
‘나의 일부’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내 일부니까, 내 뜻과 같아야 하고, 내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다른 ‘인격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부부관계, 부모 자식 관계는 삐걱리기 시작한다. 적절한 설명 없이 반복되는 거절. 감정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멀어진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사춘기, 그리고 성인이 되어 돌아올 것이고, 갱년기에 부메랑처럼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모른다. 아내, 남편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와 다른 타인으로 인식하는 노력.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것. 우리가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것을 받이 들이는 노력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이 불행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나는 못 받아봤으니까, 나는 몰라’가 아니라, ‘나는 뭘 받고 싶었지?’를 먼저 떠올려 보자. 거창한 게 아니다. 인정받고 싶었고, 존중받고 싶었고, 내 의견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거절당할 때, 우리 마음속에 반감은 자라난다. 그리고 언젠가 모두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상처를 받았다면 위로를 보낸다. 혹시 상처를 주고 있다면, 당장 멈추기를 바란다.
이미 성인이 된 나조차 감당하기에 힘이 든 이 감정을 아직 마음이 다 자라나지 않은 아이들은 두 배, 열 배로, 더 크게 느낄 것이다. 좌절감, 무력감, 무기력감의 그 무게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사랑해서, 함께하고 싶어서 그(혹은 그녀)와 결혼했고, 그 결실로 아이를 낳았으니까. 부부이니까 배우자를, 부모이니까 자식을 귀하게 여기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