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싸움이 어른의 싸움이 되지 않으려면

그 말은 때림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by 어쩌다현모양처

“유준이가 집에서도 동생을 많이 때려요?”


어색한 눈인사를 주고받은 엄마들이 말없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자리였다. 잠깐의 정적을 깨며 던져진 그 질문에,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형제끼리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손이 나갈 때도 있어요. 다른 집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유준이가 저희 아이를 자꾸 때린대요.”


그 말에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다시 숨을 고르고 물었다.


“혹시... 이렇게요?”


손으로 아주 작은 동작을 흉내 내 보였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 자리에 있는 엄마들은 아직 우리 아이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혹시 우리 아이가 때리는 아이로 기억되지는 않을까.’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반 친구 엄마가 말하길 유준이가 계속 아이를 때린다고 했다는데, 혹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저에게 따로 연락이 없으셨는데...”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키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곧 불편한 감정이 밀려왔다. 확인되지 않은 아이의 말이, 이미 사실이 되어버린 순간.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그 감정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아이가 속한 사회에서,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날 이후 나는 아이에 대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되뇌었다. 설거지를 하며 아이에게 건넬 말을 소리 내어 연습했다. 아이를 바라보았고,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말을 잘하고, 책을 빨리 읽는 4살 아이가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까지 성숙하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의 말에는 사실과 감정, 억울함과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다. 그래서 어른들의 귀에는 그 말이 ‘과장’처럼, 혹은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아이의 언어 방식’ 일지도 모른다.


부모가, 어른이 그 언어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면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줄어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내 아이는 성격이 급했지만 말이 느렸다. 원하는 것을 말로 풀기 어려워, 손이 먼저 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두 손을 몸에 붙이고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자고.


“하지 마.”

“나 불편해.”


나의 아이와 다르게 반 친구는 말을 잘했고, 내 아이의 모습이 위협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작은 움직임이 ‘곧 때릴 것 같은 신호’로 해석됐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정말 다르고, 그래서 더 어렵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의 말을 바로 사실로 옮기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 말 뒤에 숨은 감정을 먼저 묻는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라고.


다행히도 주변 엄마들은 아이의 변화를 함께 기다려주었다. 아이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고, 그 응원 속에서 아이는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자라났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아이의 속도를 찾으려 했던 것, 아이의 행동이 나를 대변한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 그리고 나와 아이를 분리해서 생각했던 일이었다.


그 덕분에 아이를 지키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이와 나를 함께 지키며, 오늘까지 왔다.







< 당신에게 전하는 내 작은 진심 >



나의 말이 상대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요? 분명 같은 말을 들었는데, 서로 전혀 다른 마음으로 남았던 순간은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다른 집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랐고, 다른 경험 속에서 세상을 바라봐요. 그래서 같은 말도, 같은 상황도 각자의 마음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남기도 해요.

그걸 알게 된 뒤로 저는 말을 조금 더 천천히 하게 되었어요. 중요한 말을 하기 전엔 속으로 한 번, 입 밖으로 한 번 더 말해보고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조금 더 담백하게 말하려고 노력해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고민한 말일수록 조금 늦게 도착해도 더 깊이 닿더라고요.

혹시 오늘,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 있어요. 서로가 다르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요.

이 글이 당신을 조금 덜 몰아붙이는 하루에 닿기를,

역할은 바뀌어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만은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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