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질보다 먼저 알아야 했던 것.
“엄마, 잘 모르는 게 잘못된 거는 아니잖아.”
그렇다.
모른다는 게 잘못된 일도, 혼날일도 아니다.
내가 아이에게 높은 기준을 두는 걸까?
아이가 따라오기 벅찬 걸까?
항상 고민했고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그동안 아이의 눈높이와 속도에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이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갑자기 내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가 뭘까?
아이는 책에 낙서를 하고, 연필심을 부러뜨렸다. 아이의 엉덩이는 의자에서 반쯤 내려와 있었고, 눈은 천장을 향해있었다. 아이의 모습에, 아이가 보낸 신호를 놓치고 말았다.
“엄마, 나 이해가 안 돼.”
그 한마디를 먼저 해주길 바랐던 걸까. 그랬다면 나는 잠시 멈추고,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이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이제 겨우 9살. 배운 것보다 앞으로 배워갈 게 훨씬 많은 그저 ‘아이’였다. 나는 종종 첫째라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나이보다 더 큰 아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 한쪽이 스르르 무너졌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 찼다.
“엄마, 모르는 게 잘못된 거는 아니잖아.”
아이의 목소리는 억울한 듯 격양되어 있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모르는 건 잘못된 게 아닌데, 아이의 행동을 보고 나만의 결론을 내려 버린 것이다.
‘또 숙제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겠지.'
아이가 오해의 사인을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말했어야 했다.
“이해가 잘 안 되니?”
하지만 이미 내려버린 결론. 아이를 바라보지 않은 채 내뱉어진 말.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공부에 대한 태도를 알려주고 싶었지만, 내가 아이에게 전한 메시지는 ‘엄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였다. 나는 가장 먼저 ‘아이의 행동을 오해한 것’에 사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주어야 했다.
“엄마가 오해했어. 미안해. 잘 모르는 건 잘못된 게 아니야. 네 말이 맞아. 그렇지만 잘 모를 때는, “엄마, 잘 이해가 안 돼.”,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 그래야 엄마도 널 오해하지 않고, 너에게도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아.”
그 뒤로 아이가 스스로 말해볼 수 있도록 ‘말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 너의 기분은 어때? 신호등 색으로 엄마에게 알려줘.” 아이는 자신의 기분을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에 맞춰 알려주었다. 때로는 1~100까지 숫자에 맞춰서 말해주기도 했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날, 그날을 기다려 주는 것 역시 나의 중요한 역할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표현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고, 함께 연습해 나갔다. 말 연습을 할 때는 ‘아이의 언어’로 시작했다. 가르치고자 하는 본질을 ‘내 아이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대화법을 찾았다면 내 아이에게 맞도록,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방식으로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우리 집 언어’라고 말한다. ‘우리 집 언어’로 아이와 함께 ‘말 연습’을 할 때, 그것이 일상이 되고,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관찰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와 아이는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노력이 통한 걸까? 아이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고, 내 목소리가 커지는 일도 줄었다. 여전히 우리는 함께 노력하고 있다. 나와 아이의 관계를 망치는 것이 나의 ‘조급함'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 걸까?
-내가 아이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걸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해가 되는 것은 뭘까?
나는 생각했고, 늘 생각했다. 최근의 일이다. 11살이 된 아이는 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다며 나에게 물어왔다.
“엄마, 이럴 때는 친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해?”
“엄마는 흥분하지 않고 말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어?”
꽤 오랜 시간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엄마는 나를 잘 이해해 줘.”
가슴 깊은 곳에서 아주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울컥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아이는 느낀 것을 말할 수 있었고, 또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을 배우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막막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에게 전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천천히 아이에게 닿고 있었다. 속상함에 흘렸던 수 없이 많은 눈물이 있었지만, 오늘 만큼은 참을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아이의 기질을 파악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나를 제대로 아는 일’이다. 아이의 행동에 끊임없이 화가 나고, ‘내가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부끄러웠던 시간들.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이 한 번쯤은 느껴본 감정들일 것이다. 그럴 땐, 나 자신을 비난하기 전에, 나의 욕구를 한번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잘 키우고 싶은데, 내 뜻대로 안 되는 지금의 상황에 화가 나.’라는 내 마음을 알게 된다. 그럴 때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건다.
-아직 아이다.
-어른도 말을 안 듣는데, 아이가 안 듣는 것은 당연한 거다.
-나의 목표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내 아이의 시간을 바라보자. 그리고 기다리자.
내 감정의 욕구를 들여다보았고, 내 안의 나를 안심시켰고, 아이가 아닌 나를 먼저 살폈다. 옳은 방향에 올바른 방법으로 끊임없는 시도를 했다면, 마지막은 기다림이다. 멋지게 성장할 아이를 기대하며 아이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나는 나의 조바심을 잠재운다. 그리고 ‘마음속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한다. 그렇게 하나씩 나만의 정답을 찾아간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독립적인 어른으로 키우고 싶다는 나의 마음은, 지쳐가는 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고, 멈춘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내 삶에 감사할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
< 당신에게 전하는 내 작은 진심 >
‘관계’라는 것은 참 힘든 것 같아요. 나를 빼고 상대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일은 정답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내 기준만 옳다고 믿는 것도 답은 아니었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상대를 위하지만, 나를 잃지 않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선과 나를 지킬 수 있는 선을 알고, 그 ‘선’까지만 행동하는 것. 그렇게 되면 상대에게 상처 주는 일도 적고, 동시에 내가 상처받는 일도 줄어들 거예요. 그 과정이 있어야 서로 잘 지낼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 어떤 방식이 상대에게 가장 좋을지, 왜 가르치고 싶은지에 대해서 꼭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이 더 잘 닿을 거예요. 깊은 생각을 거치지 않은 채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의 대부분은 상처만 줄 뿐 그 어떤 가르침도 줄 수 없더라고요. 깊은 고민으로 다듬어진 생각이 있다면, 상대에게 말로 그리고 글로 전해 보세요. 내가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상대에게 닿을 거예요.
후회가 많은 날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고민했고 또 고민했어요. 고민했던 수많은 날들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오는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당신의 마음이 덜 외로워 지길 바라며 오늘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