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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18. 2021

엄마 눈으로 보니
쓸쓸하고 씁슬하다

나이 오십에 아직도

띠 띠 띠 띠 띠리링. 애들이 왔나 보다. “우리 왔어요.” 하는 소리에 어서 오라 대답은 했지만 발딱 일어나 맞을 수는 없다. 살살 일어나 앉아 복대를 한 다음 몸을 일으키니 그제야 들어오는 애들 얼굴이 보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부스스한 얼굴을 문지른다. 드라이라도 하고 있을걸, 얼굴에 뭐라도 찍어 바르고 있을걸. 사위 보긴 민망하나, 다 귀찮다. 내 몸이 아픈데 어쩌랴, 너무 말끔하게 하고 있으면 어미 늙은 걸 무시할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세심하게 마음 쓸 줄 아는 작은 사위는 들어오자마자 어디가 제일 불편하시냐며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나를 이끈다. 사위에게 몸을 맡기고 어깨며 다리며 안마를 받는다. 밖에서는 감빠슨지 뭔지를 한다고 장을 봐온 큰 애가 소란스럽게 덜그럭 거린다. “엄마, 통마늘 어딨어? 가스레인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살림은 할 줄도 모르면서…. 작은 딸은 뭐하나 지 언니 좀 봐주지….


새우감빠스, 맛있다. 맛 보단 애들이 밖에서 먹고 다니는 음식을 맛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감빠스 국물에 살짝 구운 바게트 빵을 찍으니 그 맛도 괜찮다. 입맛이 떨어지지 않는 게 다행이기도 하면서 아프다는 어미가 이렇게 잘 먹어서 되나 싶은 생각도 잠깐 든다. 일단 몸을 일으키고 나면 그다음엔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이 병을 꾀병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에 대해 나도 모르게 자꾸 반복해서 말한다.


작은 딸이 깔끔하게 부엌을 치워놨다. 늦게 온 큰 사위를 위해 떡만둣국을 끓여 다시 상을 차리고, 한 솥 끓여놓은 배추 된장국과 삼치 조림, 두부조림, 밑반찬 두 가지를 나누어 쌌다. “엄마, 진짜 그만하라고, 가져가도 다 먹지도 못한다고, 그렇게 말을 해도 왜 매번 반찬을 하냐고!” 오늘은 작은 딸 입에서 이 소리가 나왔다. 지난번에 큰 딸이 그러더니. '잘 먹겠습니다' 그러고 들고 가면 좀 좋아. 한꺼번에 많이 해야 음식이 맛있지. 며칠 반찬 걱정 안 하면 좋지, 왜 저리들 야단들인지.


먹고 치우고 오후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올해 대학 입학하는 손녀 둘의 등록금을 챙겨줬다. 애들이 감사하다며 절을 하고 딸·사위들도 고마워하는 눈치다. 내가 이 나이에도 너희들에게 기대지 않고 손주들 등록금 챙겨주는 할머니란 말이다.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간다고들 줄줄이 일어선다. 주말이라 내일도 쉴 텐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큰 손녀에게 "자고 가지, 내일 출근 안 하잖아?" 했더니, “클렌징 폼을 안 챙겨왔어요”하는 소리가 닫히는 엘리베이터 안쪽에서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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