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오십에 아직도
2020년 12월 31일 밤 12시가 지나면 법적 성인이 되는 아이들은 2002년생이다. 우리 식구 중 두 02년생은 며칠 전부터 술 이야기를 했다. 12시는 술집 출입 금지가 해제되고, 모자를 눌러쓰거나 주인 눈길을 피하지 않고도 알코올 구매가 허가되는, 영원히 허가되는 시각. 그 시각을 기념하려는 계획들이 들렸다. 그 목소리에서는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두려움도 약간 느껴졌다.
SNS에 올라온 사진에는 아직 따지 않은 맥주 몇 캔과 소주 한 병, 손도 안 댄 프라이드치킨, 뜯지 않은 과자 몇 봉지가 놓여 있다. 얌전하게 차려놓고 인증숏을 찍었으리라. 무슨 통과의례를 치르기나 하듯 사진 한 장 속엔 얼마간의 위엄과 경건함이 보이기까지. “이모, 우리가 편의점에서 맥주를 계산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11시 58분인 거예요. 아저씨가 아직 안 된다고 2분 있다 오라고 해서 기다리다가 12시 땡 치고 계산했잖아요.” 조카가 전한 승전보다. “근데 소주는 무슨 맛으로 먹어요? 그렇게 쓴걸? 복숭아 맛 맥주는 좀 낫던데.” 금기라서 한없이 유혹적이었던 술은 맛없는 걸 싫어하는 취향에는 애초부터 유혹거리도 아니었을 것을.
엄마의 맥주를 한 잔씩 거들던 또 한 놈은 엄마와 마신 건 술이 아니라는 듯 친구들과의 첫 술을 하러 나갔다. 친구 엄마가 내준 사무실로. “난 많이 마시지 않을 거야” 분명 그러고 나갔는데 다짐은 다짐일 뿐. 공공칠빵으로 시작했다면 이미 끝난 얘기. 소주 한 병에 한 번 게워내기까지 했단다. “다 기억나, 쓰러져있는데 저쪽에 친구는 너무 말짱한 거야, 그래서 일어나서 '난 성숙해질 거야, 성숙해질 거야' 그랬어. 다시는 그렇게 안 마실래” 이렇게 또 다짐을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이따가 다 얘기해 줄게” 하곤 곯아떨어졌다.
딸이 보여준 SNS에는 첫 술을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했다. 술과 함께 법적 성인식을 치르며 더 이상 술이 자신들에게 금기가 아님을 뽐내는 듯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모범적이다. 남의 손을 빌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서 뭐 그렇게 요란스러울 것까지야. 조카는 “이모, 혹 우리의 청춘이 부러우세요?” 물었다. 딸은 “엄마, 어른이 뭐야?” 묻는다. 청춘은… 내 손으로 직접 열어져쳐야 할 문이 내 앞에 많이 있다는 것을 의미할 거야. 그리고 자신이 열어져치고 나아간 결과, 따라 나오는 모든 것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어른이라 할 수 있을 걸. 어쩌면 너희들이나 나나 여전히 청춘이고 여전히 어른은 아닐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