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책상 주변에 있었다.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마지막 장을 읽느라 그랬다. 꽤 오래 해 온 베르그송 읽기 모임이 내일 공식적으로는 끝이다.
꽤 오래 했다고 써놓고 보니 실제 얼마나 했는지 궁금하다. 베르그송 단체 톡 방 첫 톡이 작년 5월이다. 다른 단톡방에서 넘어온 게 그날이고... 이전 톡 방을 보니 2019년 7월부터 시작했다. 베르그송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간에 한두 달씩 다른 저자의 책들도 읽었다. 특히 올리버 색스는 인간으로서도 저자로서도 흥미롭다. 그 바람에 그의 저서도 꽤 구비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데, 날이 6일이나 되어도 읽어야 할 범위를 1/6 해서 매일 조금씩 꾸준히 읽지 못한다. 오늘처럼 꼭 임박해서 무리를 한다. 그러니 허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해지고, 읽을 분량으로 치면 대여섯 시간이면 되겠다 싶지만 2시간 넘어가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눈이 피로해지니 잠깐이라도 먼 곳을 바라보며 눈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사실 집중되기까지 워밍업하는 시간도 1시간, 어떤 날은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앞에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다시 보느라, 조느라.
몸은 정직하다. 어제 읽고 오늘 이어서 읽을 때랑, 오늘 처음 읽을 때랑 워밍업 하는 데 드는 시간이 차이가 많다. 어제의 엉덩이 힘이 다 빠져나가기 전에 오늘 또 힘을 쓰면 좀 쉬워지고, 어제 이해가 안 돼서 고민했던 부분이 다시 이어지니 좀 수월하게 넘어가고 그런다.
고작 두세 시간 집중해서 읽겠다고 오늘도 종일 책상 주변을 못 떠났다. 베르그송의 마지막 저작, 최종 파트. 뭐가 남았을까.... 누가 베르그송에 대해 말해보라 그러면 얼마나 얘기할 수 있을까.... 불러올 수 있는 기억이 없다. 그럼 뭣하러 이런 짓을 했을까. 어디 베르그송뿐인가? 자꾸 세월이 더해지는 게 부끄러워진다.
나도 모르는 어떤 충동에 이끌려왔다. 암호 같았던 책이 간혹 희미한 이해의 빛을 비출 때 오는 기쁨, 그러나 그것도 주된 동기는 아니다. 기쁨의 시간보다 암흑 같은 몰이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허우적거림조차 멈추지 못하게 하는 어떤 힘에 복종해왔다. 그리고 여전히 그 힘의 강도가 약해지지 않았다.
충동은 직진한다.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지만 중간에 그만두지 못한 것, 여전히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랬다면 이 저명한 철학자가 위대한 것은 결국 몇 마디로 요약되고 말 그의 사상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끝났을 텐데. 그의 위대함은 그의 삶과 분리될 수 없고 그가 평생을 지속해온 사유의 궤적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베르그송이 팔십 평생 쓴 저작들이다. 고작해야 2년 읽고는 스스로 너무 고생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