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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한 Dec 17. 2020

#29. 풍경 수채화 그리기

 수채화... 수채화... 밀당의 귀재이자 한 번 그 매력에 빠지면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게 만드는 수채화로 인해 참 마음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 하나는 수채화 포기자였던 제가 수채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특별한 사람들이 그릴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던 그림.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울 거 같았던 수채화를 이처럼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정말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고 지금도 겪으며 수채화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또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재료를 만났을 때 수채화가 어떠한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지를 울고 웃으며 경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풍경 수채화를 참 좋아합니다. 인물 수채화도 좋아하지만 풍경 수채화를 그릴 때는 정말 그곳으로 여행을 간 것과 같은 간접적인 체험을 합니다. 한 장소를 그림을 그리는 시간 동안 관찰하고, 그리며 보고 또 보고, 그 풍경 안의 곳곳을 깊게 탐험합니다.


 이제 수채화만의 시간입니다. 물이 오늘은 또 어떠한 일을 할지, 오늘 웃게 될지, 혹은 가슴을 치며 답답해할지 두근두근 합니다. 지난번 썸네일 스케치로 그려봤던 그리고 싶은 몬트리올 다운타운의 거리를 그려 보겠습니다.


 이 풍경을 눈을 반쯤 감고 명도 관계를 확인합니다. 보통 이런 식으로 맞은편 거리의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 풍경은 모두 2점 투시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3점 투시로 그리면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2점 투시의 소실점은 모두 좌, 우 화면 밖으로 나가 있습니다. 저는 화면 좌측 밖에 위치하고 있네요.


 하늘과 그림자 덮인 도로를 중간 명도로 포함했고 썸네일 스케치를 다음과 같이 진행했습니다.


 썸네일 스케치를 토대로 수채화 용지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고 스케치에 들어갑니다.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는 이유는 그림 외각에 물감이 침투되지 않은 깔끔한 화이트 프레임이 생기게 하기 위한 것 외에도 종이가 물을 먹으며 그릴 때 울지 않도록 꽉 잡아주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후 마스킹 테이프를 뜯는 순간 참 시원한 기분이 들죠. 저도 참 좋아하는 순간입니다. 마스킹 테이프를 뜯을 때는 그전에 그림이 잘 말라 있어야 합니다.

 시작은 항상 가장 중요한 눈높이 투시를 확인하고 눈높이 라인 근처의 오브젝트들을 스케치하여 주는 것부터 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오브젝트들의 스케일에 대한 좋은 참조가 생깁니다. 화면 밖에 소실점이 있는 위치에 동전 등의 작은 참조 오브젝트들을 두는 것이 정말 유용하니 꼭 시도해보시길요.


 저 또한 실제로 참조 오브젝트들을 두고 투시 라인들을 잡아 줬습니다.


 세로 라인이 수직이 되도록 신경 써주면서 소실점으로 모여야 할 가로 라인들을 이에 맞춰 스케치해줍니다.


 큼직한 그룹들이 잡힌 후에는 세부묘사가 좀 더 쉬워집니다. 이 때도 투시는 신경 써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자를 대고 그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정확한 듯하게 그려주시면 됩니다.


 중요도가 높은 건물을 먼저 작업한 후 원경으로 나아가는 건물들을 크게 박스 형태로 투시에 맞춰 스케치합니다.


 많은 창문들과 세세한 장식 등 세부묘사까지 스케치에 포함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실 경우 오브젝트 중심의 스케치에 채색이 갇히게 됩니다. 물론 선호 스타일이 오브젝트 중심이신 경우는 당연히 그렇게 그리셔도 됩니다.


 하늘 워시를 위한 물감물을 많이 만들어 줍니다. 저는 그림자들도 모두 하늘 워시로 칠하며 중간 명도를 한 번 묶어 줄 것인데요. 그림의 사이즈가 quarter 사이즈(약 8절)이기에 이를 충분히 칠하고도 남을 양을 만들려면 그 양이 꽤 많아야 합니다. 음... 그냥 많다고 하면 애매하니 종이컵으로 계산하면 반 정도는 되도록 만들어 주시면 좋습니다. 양이 많다고 물만 많으면 안 되고 물감도 충분히 풀어줘야 합니다.


 저는 푸른 하늘을 코발트 블루(cobalt blue) 베이스로 많이 채색하는데요.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나 프렌치 울트라마린 (french ultramarine)도 하늘색으로 적합하지만 고려하실 사항들이 있습니다. 보통 원경의 하늘을 표현할 때 밑으로 내려오며 옐로우 계열의 웜한 컬러로 부드럽게 그라데이션을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요. 프러시안 블루나 프탈로 블루(phthalo blue)의 경우 이때 색이 혼색되는 과정에서 그린으로 변하게 됩니다. 하늘이 그린이 되면 참 난감해요. 그러나 코발트 블루는 옐로우 계열로 전환할 때 그린 계열로 잘 변하지 않습니다. 밑의 그림을 보시면 블루 -> 옐로우 전환이 강한 그린 층을 만들지 않고 부드러운 것을 보실 수 있어요.(프러시안 블루였으면 녹음의 색이...) 하늘의 베이스가 코발트 블루여서 그렇습니다.

 또한 울트라 마린의 경우 물감 브랜드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감의 그래뉼(granule)이 두드러지게 남습니다. 그래뉼은 물감이 마르면서 물감의 입자가 표면에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 흙과 같은 토양에는 아주 적합하나 하늘과 같은 곳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워시를 하늘에만 그치지 않고 어두운 영역까지 함께 칠해 묶어 줍니다.


 최대한 연결하는 게임을 한다고 생각하시고 진행하여 주시면 좋습니다.


 건물의 밝은 면을 웜한 계열 컬러로 약하게 채색합니다.


 질감이 평면적이지 않게 약간의 효과를 주는 것이 좋을 듯하여 손으로 물을 뿌려줬습니다.


 다음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완전히 말려줍니다.


 이제 핵심이 되는 건물을 묘사해주되 이 건물에 웜한 컬러를 집중하고 원경과 외곽으로 빠질수록 쿨한 컬러들을 사용하면 중요한 건물만 앞으로 나와 보이는 효과가 생길 것입니다.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강조해주는 거죠. 레드 계열이 섞인 웜한 컬러들을 앞으로 나와 보인다고 하여 진출색, 블루 계열이 섞인 쿨한 컬러들은 뒤로 들어가 보인다고 하여 후퇴색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진행상황에 따른 묘사가 들어가게 되는데 묘사 강도가 주인공에 집중될 수 있도록, 토널 투시에 따른 차이가 있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명도 관계를 깨지 않도록 밝은 면의 묘사는 비교적 밝게, 어두운 곳은 어둡게 묘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혹 붓에서 털이 빠지기도 하는데요. 신경이 제법 쓰입니다. 빼주려고 갖은 방법을 써봤지만 실패...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그냥 두시고 마른 후에 털어 내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다만 참 거슬려요.


 어두움이 시작하는 부분을 어둡게 해 주시고 이로부터 조금씩 풀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첫 워시의 물감층이 완전히 덮이도록 커버하지 않고 이를 적절히 잘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껏 칠했는데 완전히 덮으면 아깝잖아요? 위에 레이어를 쓰더라도 첫 워시의 컬러가 투명하게 비쳐 셀로판지를 겹친 것처럼 밑의 색이 어느 정도 혼색되도록 표현해주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밝은 면들이 서로 겹쳐있는 곳은 구분하여 표현하기가 참 애매하죠? 이럴 경우 일부러 약간의 어둡기를 표현한 후 물로 블렌딩 아웃을 해서 구분 지어주면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요. 마르면 밑과 같이 밝은 명도 관계를 깨지 않으면서도 면과 면이 구분되게 됩니다.

 창문의 묘사를 들어가되 그림자와 연결해줍니다. 연결 연결. 최대한 연결입니다.


 밝은 면의 묘사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자칫 밝은 그룹군에 있는 것이 파괴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원본을 믿지 마시고 그림에 맞추셔야 합니다. 현수막도 단번에 표현해줍니다.


 어둡기가 시작하는 곳이나 땅과 만나는 곳을 어둡게 해 주면 효과적입니다.


 엇! 아까 밝은 면끼리 겹쳐 있는 곳에 문이 있군요. 네거티브로 밝은 면을 드러낼 좋은 기회이죠? 꼭 표현해줘야 하겠습니다.


 밝은 면의 워시 색과 살짝 다른 색으로 건물의 표면에 질감을 만들어주는데요. 이렇게 오래된 건물은 막 지은 건물에 깔끔하게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것 같이 매끈한 것이 아니라 살짝 얼룩진 질감들이 있는 것이 낫습니다. 이때 붓의 옆면을 활용하여 종이에 가볍게 터치해주면 종이 질감에 의해 어떤 부분은 물감이 묻고 어떤 부분은 묻지 않아 드라이브러시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는 건물의 질감을 나타내기에 좋습니다. 단 어두워져서 명도 관계를 깨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종이가 마르며 물감의 피그먼트들이 종이 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하면 채색한 색이 연해집니다. 눈을 반쯤 감고 중간중간 명도 관계를 확인한 후 어둡기가 너무 연해졌을 때 보강해줘야 합니다.


 지금 채색하고 있는 문은 포인트가 될 거 같네요. 살짝 채도를 높인 색을 써줍니다.


 어두움 영역을 보강해주되 계획을 따라줍니다. 원본은 매우 어두운데 그대로 어둡게 채색하면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아요. 중요한 부분을 강조한 후 약하게 사라지듯 풀어주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젖었을 때 창문들을 좀 더 짙은 농도로 칠해서 명확한 형태가 아니라 부드럽게 블렌딩 되게 해 주세요. 어두운 곳에 있는 형태들은 좀 더 통합되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해보시면 되겠습니다.


 메인 건물과 거리를 벌리도록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라도 토널 투시의 원리들을 적용하여 줍니다. 이제 라인 투시와 토널 투시의 차이와 활용법은 잘 이해가 되실 거 같아요.


 건물의 어두운 면도 주인공 건물의 어둡기보다는 밝게, 묘사도 단순하게 들어갑니다.


 이제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표현하며 좀 더 세밀한 묘사들을 더해줍니다.


 도로도 더 어둡게 눌러주는 것이 좋을 거 같네요.


 자동차를 표현해주되 매우 디테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차된 차량이라 테일라이트는 꺼져 있네요. 그림자 안에 있는 차량이기에 테일라이트를 밝은 레드보다는 브라운 계열로 표현해주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또 눈을 반쯤 뜨고 어둡기가 어떤지 확인 후 보강합니다. 이때 필요 부분을 채색하고 물로 블렌딩 아웃하여 불필요한 채색의 경계들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줍니다.


 썸네일 스케치 때 좌측의 나무가 참 인상 깊었는데 본 그림에도 포함합니다.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군데군데 포인트로 잡아줍니다.


 우측에도 기둥이 있는데 시원하게 뽑아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코발트 터퀴즈 라이트(cobalt turquoise light) 포인트 컬러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렇게 완성입니다. 그리는 동안 현장에 대한 분위기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또한 원본과는 다르게 제가 생각했던 계획을 잘 표현한 것 같아 좋았습니다. 항상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아쉬운 점들을 발견하게 되고 이들은 잘 된 부분들보다 크게 보입니다. 발전을 위해 아쉬운 부분들도 돌아봐야 하지만 자신이 그린 그림의 잘 된 점들도 꼭 스스로 칭찬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너 제법이다. 수고했다."하고 토닥토닥해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신의 그림을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림에 더 자신감이 붙고 계속 그려나가실 수 있는 원동력도 생길 것입니다. 수채화와의 밀당은 번거로울 수 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놀라운 매력이 넘치는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초대를 거절하지 마시고 손을 잡아 주세요. 그래서 꼭 그 즐거움을 누리시길 바랍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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