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
매일밤 꿈을 꾼다.
어떤 날은 서너 개의 꿈을 꾸기도 한다.
수면중에도 나의 뇌는 생생한 영상을 만들어내고 현실과 똑같은 감정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한다.
말하자면 나는, 매일 밤, 가성비가 아주 좋은 멀티버스 세계관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들이 꿈속에서는 어쩌면 그리도 당연한지,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보인다.
말이 안 되는 일이란 없다. 그래서 꿈이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는 순간을 보았을 때는 엉엉 우는 내 통곡 소리에 내가 놀라서 깰 정도였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자니 민망하긴 했지만 엄마가 살아계심에 감사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전화를 하게되는 효녀심청 무료체험판을 맛보기도 했다.
수많은 평행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이 우주에서는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하는 묘한 감정들이 생겨난다. 어벤저스 히어로들과 함께 어두운 행성에서 헬스트레이닝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슈퍼맨은 왜 또 유니폼?을 입고 스쿼트를 하는건지...(꿈에서도 그건 좀 이상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 가족으로 나오는데 그쪽에선 당연한 일이고, 뜬금없이 도로 한복판에 서 발가벗고 있는 내 모습에 어쩔줄 몰라하는건 기본,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도 허구한날 하늘은 왜 자꾸 날아다니는지. 심지어 신나 한다. (이 나이에 아직 하늘을 나는 꿈을 꾼다는 것도 신기하다.)
매일 밤 이 세계에서 내가 잡은 악당만 수백명이요, 구출한 생명도 수천명이다.
뭔가 말이 좀 되는 상황을 경험했다면 책을 써도 시리즈로 몇 박스는 됐을 텐데, 이건 뭐 건질만한 게 하나도 없다. 애초에 완벽한 스토리가 아니라 장면 중간에 날 던져 버리니까.
맞다. 그게 단점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것.
데려다준 장소에서 순발력 있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게 이 멀티버스의 룰이다.
앞뒤 맥락 없이 자꾸 바뀌는 이 상황들을 컨트롤할 수만 있다면 소설 그거 뭐 하루만에도 후딱 나올 텐데. ㅎㅎ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공포에 떨기도 하고 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를 경험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모든 여정이 끝나고 나면 다행히도 안전한 내 침대로 얌전히 날 데려다 놓는다는 것이다.
멀티버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지금의 이 모습이 나의, 당신의 한계가 아니라는 증거라고 강력히 말하고 싶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고, 때로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같은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멀티버스라는 가설에 의하면 내가 포기한 꿈을 이룬 나, 하고 싶었던 일을 과감히 시도하는 나, 놓쳐버린 인연과 행복하게 사는 나, 등등 내가 하지 않은 선택도 다른 차원 어딘가에서는 현실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가설이 약간의 위로가 되면서도 안도감이 드는건 왜일까?
그러니까 지금의 선택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내 안의 숨겨진 가능성을 찾아서 우리는 이곳에서의 여행을 완수하면 되지 않을까?
두려워 하지 말자.
우리는 여행자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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