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 가장 나다운 나

아무튼, 숏컷

by 조이아

“짧게 잘라주세요.”

“괜찮겠어요?”

머리를 자를 때 듣는 말이다. 자르고 나면 만나는 이마다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다들 짧은 머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나 보다.

처음 커트 머리를 한 건 대학생 때였는데, 정말 무슨 일이 있어서였다. 복수전공을 해보겠다고 수강한 다른 과 수업에 조별과제가 있어서 친구랑 거의 밤을 새워 준비했다. 발표는 타과 언니가 했는데, 우리가 힘들게 준비한 게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것 같아 찝집했다. 그날 당장 둘 다 커트를 했다. 잘린 머리칼에 아쉬움은 없었고 홀가분하기만 했다. 그렇게 숏컷에 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다음은 교생 나갈 때 야무져 보이고 싶어서 짧게 쳤다. 아나운서처럼 보이고 싶었다. 머리를 기르는 과정에서 당시 유행하던 멕 라이언 스타일을 따라 하기도 했다. 쇼트커트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건 아니지만 이때만 해도 다른 사람 스타일에 대한 따라 하기의 마음이 더 컸다.

머리칼을 길렀다가 자르고 다시 기르던 나날에서 지금의 숏컷을 유지하게 된 것은 파리에서 살 때부터다. 유럽의 석회수 탓인지, 한국에서 한 열펌과 염색 탓인지 머릿결이 많이 상했다. 마주치는 파리지엔느들의 스타일은 얼마나 자연스럽던지 우리나라처럼 작정하고 모양낸 게 아니어도, 곱슬이면 곱슬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개성을 뽐냈다. 짧은 불어로 미용실에서 커트를 했다. 나 나름대로는 멋진 사진을 들고 가 보여줬는데 결과물은 남자아이 머리였다. 그 후로는 한국인 미용실을 찾아가 머리를 잘랐다. 구불거리는 내 곱슬머리에 알맞은 숏컷이었다.

우리나라에 오자마자 사람들은 내 머리에 대해 한 마디씩 해댔다. 언제 기르냐, 왜 또 잘랐냐 등. 한국식 정의 표시라고? 내게는 간섭으로밖에 안 느껴졌다. 여성에 대한 두발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남의 머리 모양에 그리도 관심이 많은 걸까. 남들과 같기를 바라는 문화가 있는 건 아닐까. 실제로 외국에서 만나는 동양 사람 중에 한국인은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유행하는 옷차림과 잘 세팅된 머리 모양 때문이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는 일은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 내게는 숏컷이 어울린다. 키도 커 보이고 여성스러운 얼굴에 쇼트커트를 해 놓으니 세련된 느낌을 준다(고 생각한다). 내게 어울리지 않으면 또 어떤가. 나는 내 짧은 머리가 좋다. 자르고 나면 산뜻하고 더 잘생겨 보이는 기분까지 획득한다. 머리를 자르는 이유는 실연을 당하거나 언짢은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멋진 누군가를 따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다움을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 다음에 미용실에 가거든 귀를 파달라고 할 테다.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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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 미바, 조쉬 프리기 <셀린&엘라; 문득 네 생각이 났어>, 우드파크픽처북스

+ 글은 수필 쓰기 수행평가 나의 <아무튼, OOO> 쓰기 대비 예시로 썼습니다.

+ ‘가장 나다운 나’라는 제목은 오늘 멋진 학생이 딱 정해주었어요.


* 맞춤법에 맞는 표기는 '쇼트커트'입니다. 그런데 '숏컷'이 주는 어감이 좋아서 그대로 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