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만들기가 올해 목표입니다.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는 일, 왜이리 어려워요? <비폭력대화>를 읽고

by 조이아

<비폭력대화>를 읽고 세 명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적인 대화라니 정말 획기적이지만 단시간에 익힐 수 없는 대화다. 객관적인 '관찰'도 어렵지만 겉으로 드러난 '감정'에 숨어있는 '욕구'를 읽어내기 또한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의 욕구조차 알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함께 이야기 나눈 언니들의 경우는 그나마 본인들의 욕구가 명확한 편이었는데,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랬다. 열심히 대화(나로서는 호응)하는 내내 나의 욕구는 무엇일까 속으로 질문을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몇 년 간 나를 보아온 언니가 나의 '배려'에 대해 짚어 주어서 물꼬를 텄다. 지금도 듣기만 한다며.

@ 마셜 B. 로젠버그_<비폭력대화>_한국NVC센터

"나의 욕구요?" 친구랑 여행 일정을 짜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먹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언니들은- 너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고 있지 않느냐 묻는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대체로 만족스럽기도 하다. "맞아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기는 하는 것 같아요." 했더니 이어지는 언니들의 증언들. 나는 뭔가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언니들이 알려준다. 어디서나 하지는 않는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이 언니들을 꼬드겨 김보라 감독의 <벌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을 같이 보러 갔었다.) 뭔가를 배운다거나(<벌새>를 보러 가면서 프랑스어 스터디 시험이 있다고 혼자 지하철에서 공부를 했다.) 독서모임도 계속하고 있다고. "맞아요, 작년에 독서모임은 그것대로 했고, 북토크며 줌으로 하는 작가와의 만남 등 자꾸 신청해서 챙겨 읽느라 책에 치였어요." 그래서 그걸 다 어떻게 했냐 묻는 언니에게,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다 했다 답했다. 가까이 있는 남편은 종종 타박한다, 언제 그만할 거냐고.

"너는 doing이 되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 언니가 내려주는 결론. 이렇게 다른 사람을 통해 들으니까 내가 좀 더 명확해지는 것 같다.

방학을 한지 몇 주가 지났다. 일정을 쓰는 위클리 다이어리가 빼곡하다. 방학이어도 근무가 있다거나, 아이 치과나 피부과 데려가기, 주말에는 친구와의 여행 등. 책방지기 친구랑 만나서 그간의 이야길 했더니 "쉬는 날이 없었네요." 하는데 정말 그랬다는 걸 그의 말을 듣고야 인식했다. 누가 만나자고 했을 때에도 언제 언제는 무엇이 있으니 오늘 만나자며 갑작스러운 티타임을 갖기도 했으니까.

뭔가 일정이 없으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 같다고 털어놓았다. 휴직자일 때는 아침마다 그랬다. 뭔가 무기력한 기분에 동네 도서관에라도 가지 않으면 가치 없는 사람 같이 느꼈다. 왜 이렇게 뭔가를 하려고 할까. 친구 하나 없는 지역에서, 코로나 시대에 참 난감한 욕구다.

이런 내 마음을 우리 아이들이 너무 잘 안다. 자꾸 아이들에게 어디를 가자고 하니까. 애들을 데리고 미술관에도 가고 대형서점에도 가고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보러 간다. 코로나 시대라 덜하긴 하지만, 바로 지난주에도 지하철을 타고 계룡문고를 가고, 지하상가를 조금 돌고, 소품샵에서 문구를 구경하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나마 아이들 상담 선생님께서 이런 나를 칭찬해주셨다.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이렇게 잘 다니세요? 지난번에도 미술관엘 가시고, 초콜릿 만들기 체험도 하시고. 아이들에게 참 좋은 것 같아요."하고.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집을 참 좋아한다. 특히 둘째는 더 그래서, 밖에 나가기만 하면 언제 집에 가냐고 툴툴댄다. 이야기 나누던 언니가 자기는 둘째의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집에서 편하게 있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주었다. 의외였다. 집에 있으면 편한가? 이 질문이 또 나의 특성과 이어지는 것 같다.


나는 좀처럼 쉬지를 않는다. 지난번에 친구랑 여행한다고 친구가 먼저 체크인을 해서,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다. 친구는 침대에 쏙 들어가서 책을 읽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아이들 둘을 데리고 미술관과 궁에 다녀왔던 나에게 친구가 피곤할 테니 잠시 침대에서 쉬라고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침대는 잘 때 가는 곳이다. "아니야, 난 괜찮아, 우리 나가자!" 지금 생각하니 그럴 일인가 싶지만 얼른 '더현대'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구경도 하고 싶었다. 집에서도 나는 도통 소파에 눕지를 않는다. 전에 동료 선생님 댁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그 선생님 말씀- "나는 여기 이 소파에 누워서 하늘 보는 게 너어무 좋아." 엇. 우리 집은 일층이라 그런 일을 상상할 수가 없지만, 대낮에 소파에 누워서 하늘을 보며 빈둥거리는 일이란, 나에게 정말 상상할 수가 없는 일 같다.



<비폭력대화> 모임이 이끌어낸 생각들이다. 좀처럼 쉬지 않는 나, 자꾸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나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시간이었다. 방학맞이 일정을 소화하느라 나는 자꾸 아이들에게 통보하고, 졸라댄다. 오늘은 연휴 지났으니까 집에서 쉬자고 (혼자) 어젯밤 다짐했다. 아침부터 쿠션을 빨고, 청소도 하고 건조기를 돌려놓고 나는, 내 다짐을 번복한 채 또 아이들을 또 꼬드겼다. 도서관 가자, 샌드위치 사러 가자, 핫초콜릿이라도 마시러 가자고. 아이들은 뜨끈한 장판 위를 뒹굴며 "오늘은 집에 있고 싶은데." 한다. 가지치즈치아바타가 먹고 싶어서, 혼자 사 가지고 오는데 강한 바람에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 애들은 오늘 학원 가는 일정이 있는데 나 혼자 아무것도 없다고, 아니, 수정한다, 네 시 반에 미용실을 예약했다. 시간이 비었다고 그새를 못 참고 또 아이들을 조른 것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친구도 없고, 마음 붙일 곳도 없고, 글이나 쓰며 나를 성찰해야겠다고. 그래서 네 시 반이 되기 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앉아 있다.



새해가 되어 올해의 목표를 정했다. 쉬는 시간, 멍 때리는 시간 만들기가 나의 목표다. 남편이 의아해했다. "뭐라고?" 나는 자꾸만 각 잡고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하려고 한다. 그 뭔가가 겨우 SNS 할 때가 많지만. 자꾸 그렇게 책상 앞에 앉는 것이다. 마음 편히 유튜브도 못 본다. 유튜브 보는 시간이 나는 아깝다. (이로써 MZ세대가 아님이 판명되었다. 80년 생이라 간신히 MZ라 우기고 싶지만.) 유튜브를 보더라도 독서 관련된 콘텐츠나 요가 따위를 보고 한다. 맘 편하게 유튜브를 볼 때는 목욕하면서가 유일하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는 기분이다. 나는 도대체 누구를 의식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 내 안에 감시자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또 긴 이야기가 주렁주렁 달려 나올 것만 같아 이만 마무리해야겠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나를 잘 모르겠다. 아직도 모르는 나를 조금은 알게 된 게, 정초라 다행이다. 그런데 쉬기를 또 계획하고 목표 잡고 있는 게 어이가 없기도 하고. 멍 때리기, 소파에 드러눕기. 이런 일이 아직은 실행하기 쉽지 않아서 일단은 드라마 보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뭐든 계획대로 척척 해내지도 못한다. 작년에는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에 세 가지씩 감사할 일 같은 걸 적곤 했는데 이젠 그 노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문학동네에서 준 일력에다가 그날 읽은 책을 기록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같은 시기에 관뒀다. 이렇게 허술한 것이 창피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게 내 모습인데 뭐 어쩔 것인가.)



엊그제 둘째가 하던 게임을 해봤다. '맛집 셰프'라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게임인데 게임 중에 머리도 손도 분주하다. 그 분주함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는 엄마가 게임을 한다고 또 신이 났다. 나는 나대로 미션 클리어를 위해 집중한다. 그날 친정에서 둘째를 데리고 자느라 얼핏 잠에서 깨곤 했는데 꿈속에서도 나는 햄버거를 만들어 접시에 올리는 화면을 보았다. 배경음악은 요새 꽂힌 윤석철 트리오의 <여대 앞에 사는 남자>였다. 전날에 악보를 구매해서 쳤는데 샘플에는 보이지 않던 3, 4페이지에 멜로디언 파트가 나와서 매우 난감했던 곡이다. 그러니까 나의 doing 리스트에는 악보를 사서 피아노 연주하는 일도 있다. <즐겁게, 음악>이 없어서 저 곡을 샀는데, 이런 연주는 아주 재미난다. 나의 욕구는 무엇일까.

<비폭력대화> 모임에서, 학생 상담을 깊이 있게 하는 수학선생님 언니가 <욕구 코칭>이란 책이 참 좋다며 빌려주었는데 나는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이라는 책이 읽고 싶어졌다. 헐, 언제까지 '계획질'을 할 것인지. doing 말고 being, 그냥 존재만으로도 꽉 차다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으니 내가 말해줘야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그래야 유튜브를 보는 아이를 보는 내 시선도 따스할 것 같고, 쉬고 있는 이들을 향한 마음이 더 너그러워질 듯해서 말이다. 오늘 저녁에는 꼭 뜨끈한 방바닥에 아무 생각 없이 누워만 있어 보겠다! 게임도 좀 해주고!


실은 3월초부터 수강하기로 한 드로잉 클래스가 하나 있다 고백한다.

나는 위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살까, 가고 싶었는데 문이 닫혀 있던 책방 @풀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