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아들의 시험기간, 나도 시험 보는 기분
아끼던 먼슬리 플래너를 갖다 바쳤다. 위클리 플래너도 한 권 선물했다. 여전히 비닐이 뜯기지 않은 채 그대로 책장에 꽂혀 있다.
중학교 2학년 첫 시험을 맞이하는 학부모의 마음. 주변 선배 선생님들이 아이들 시험 기간에 왜 그리 힘들어하셨는지를 알게 되었다. 몸이 피곤해도 마음대로 잘 수가, 아니, 마음 편하게 잘 수가 없고 불편하게 잠들었다. 아이가 공부하고 있어서라면 다행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학교 다녀와서는 유튜브를 실컷 보는 것 같았고(근무시간이라 확인할 수 없다) 학원 다녀와서는 공부하고 왔으니 좀 쉬어야 한다고 또 유튜브를 보았다. 심지어는 게임도 했는데, 일주일 전부터는 게임하지 말자고 무려 3주 전부터 나는 얘기해왔던 것이나, 다른 애들은 하는데 왜 자기만 못하냐고 투덜대는 바람에, 그래 머리 식힐 겸 하렴, 하고 허락해버렸다. 그러니까 막상 공부를 시작하는 시간은 저녁 10시는 되어야 시작되는 것인데 그 시간이 되면 나는 몽롱해지고,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시동을 건다며 내게 주절주절 오늘은 어떤 과목을 얼마큼 하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몽롱한 채로 눈을 부릅뜨고 그래, 그러자, 그렇게 하면 되겠다 맞장구를 치면서부터 나는 속으로는 언제부터 공부를 할 것이냐를 외치다가 지쳤다. 열한 시 정도가 되면 나는 뜨끈한 전기장판에서 책을 보다가 자꾸 눈이 감겼는데, 이제 그만할까?를 내 입에서 먼저 말했다는 게 후회될 만큼, 아이는 또 내 물음에 그럴까 하고 대꾸했던 것이다.
우리 반이나 우리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과 아들을 비교하지 않으려고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같은 학년을 맡지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 중에 수업 시간에 조는 아이들에게, 어제 몇 시에 잤니 물으면 새벽 두 시 혹은 네 시(두시까지 공부하다가 네 시까지 드라마를 보고 잤다는 솔직한 대답이었다.)라 대답하는 아이도 있었으므로 열한 시에 주무시는 아들을 보는 내 심기는 매우 불편했지만,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니 자라고 이불도 덮어주고 불도 꺼주곤 했던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또 엄청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꼭 안아주는 것이었으나, 내 속은 부글부글했다.
바다는 요새 가면 딱 좋다는, 어린아이를 둔 동료 선생님의 말이 생각날 정도로 화창한 주말에도 우리 식구는 집에서 지내야 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중학생 때문은 아니고, 언제 공부를 할 것인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중학생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공책 정리를 하고는 꼭 쉬어주고, 역사 유튜브 강의를 보고 나서도 꼭 한두 번씩은 게임을 해야 하는 아이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와 겹친 아들의 시험기간, 나는 내 시험을 앞두고 문제 난이도는 괜찮을까를 걱정하고 있는데 정말 다행히도 아들은 걱정이 없었다. 시험문제는 꼭 다시 한번 풀고 검토하고, OMR카드에 내가 고른 답이 옳게 마킹되어 있는지 밀려 쓰진 않았는지 꼭 살펴보라는 당부를 두 번 했다.
학교에 있는데 카톡이 왔다. '국어를 실수로 많이 틀렸어요'라고. 엄마가 국어를 가르친다고 아이가 국어를 잘하지는 않는다. 이 아이는 여전히 'ㅐ'와 'ㅔ'를 자주 틀리게 쓴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달래고 부랴부랴 조퇴하고는 집으로 갔다. 유튜브를 보며 쉬고 있는 아이에게 첫날 첫 시험이라 긴장해서 그랬을 거라고, 괜찮다고 달랬다. 마치 나를 달래는 듯. 그날 밤에는 한문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들의 토로에, 부수라든가 음과 뜻 꼭 알아야 되고, 해석하는 순서 등을 알야하 할 거다 짚어주었다. 그래 놓고는 내가 무척 졸려하는 밤 열한 시 직전에, 아이에게 한문 관련 퀴즈도 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산뜻하게 열한 시에 취침!
둘째 날에는 카톡이 연달아 많이도 왔다. 한문은 잘했는데 '수학이 망했어요. 하나 빼고는 다 할 수 있는 건데. 다 아는 건데 계산 실수로 틀렸어요. 슬퍼요. 나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라니.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흔들렸다. 마침 우리 학교도 수학 시험이 있었는데, 2학년 수학 시험감독을 하면서 나도 무척 마음을 졸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수학 시간은 교사를 긴장하게 하는데, 유독 이번 시간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저어기 앉은 눈이 예쁜 아이는 컴퓨터용 사인펜만 들고 수학을 눈으로 풀고는 OMR 카드에 색칠을 해댔기 때문이다. 저 아이가 볼펜이나 연필이 없어서 문제를 못 후는 걸까 혼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앞면을 그렇게 암산하며 마킹하더니 뒤편부터는 샤프를 들고 시험지에 풀기 시작했다. 교실 앞 중앙에 서서 이 아이 저 아이 열심히 눈을 굴려가며 관찰을 했다. 틈틈이 수정테이프를 갖다주고 종료 10분 전도 알려주었다. 시험 종료 5분 전 교내방송이 나가고 곧바로 한 아이가 수정테이프를 요구했다. 갖다주고 다른 아이들을 보고 있는데, 수정테이프 쓰는 마찰음이 계속 이어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뒤쪽의 일고여덟 문제를 다 지우는 거다. 밀려썼구나, 나는 속으로 새 카드로 바꿔줘야 하나 고민했다. 5분이니 가능하겠다 가늠하면서. 하지만 아이는 열심히 다 지웠고 나는 원위치로 가서 새 카드 하나를 들고 대기하면서 아이가 더 이상 실수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연스레 그쪽으로 눈이 갔다. 여전히 다른 아이들도 문제를 푸는 손길이 바빴고, 학번 이름, 마지막 번호까지 마킹했는지 확인하자고 다시 강조했다. 수정한 아이는 새로 마킹을 하다가 아까 수정테이프를 붙인 곳을 떼기를 두어 번. 앗, 지웠던 게 답이었구나, 이걸 어째. 내 맘이 탔다. 손목시계를 연방 들여다보았다. 손톱으로 수정테이프를 긁었다가 마킹을 했다가 하던 아이는 펜을 내려놓았고, 아이들도 계산하는 손이 멈추진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시험이 끝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종료령이 울리고 카드를 걷고, 수고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교무실에서 만난 내 앞자리 선생님이 2학년 아이들이 수학 시험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유독 내가 들어간 반만 힘든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힘들게 수학시험을 보던 2학년이 바로 우리 아들이었나 보다. 수학 망했다는 카톡을 확인하고 다독이는 답장을 보냈다. 급한 일처리를 하고 전화를 걸었다. 땡땡아,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수학은 다 힘든 거야. 하는데 '네'하는 일음절의 대답이 떨린다. 땡땡아, 괜찮아. 엄마가 오늘은 일이 있어서 일찍 못 갈 것 같은데, 괜찮지? '네' 목소리가 여전히 흔들린다. 이걸 어쩌나. 우는 것 같은데. 일단 쉬고 있으라 하고 전화를 끊고는 사랑한다는 카톡을 보내 두고 급한 업무를 보았다. 오늘은 일을 다해놓고 가야, 다음날 있을 현장체험학습 준비가 되는데 마음이 급해졌다. 다시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땡땡아, 엄마 지금 집에 갈까? 물었더니 '네'하는데 그 소리가 왜 이렇게 가슴에 사무치는지! 시험기간이라 학원을 두 시까지 간다던 아이에게 갈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부장님과 일에 대한 일정 등을 조율하고 복무처리를 해놓고 조퇴를 했다. 예상한 시간보다 지체되었는데 마침 버스는 오질 않고, 전화를 하면서 급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땡땡아, 조금만 기다려. 엄마 지금 가고 있어. 이 길에는 다니는 택시도 없는데, 학교에서 미리 택시를 부를 걸 그랬다 후회하면서 달렸다. 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가서 무얼 할 것인가. 아이는 이미 울었고, 마음을 추슬렀을 텐데. 그냥 천천히 갈까. 에이, 그래도 첫 시험 망했다고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까지 했는데, 시험 때문에 울었는데 어떻게 그냥 있어. 하는 마음에 열심히 달려갔다. 오랜만에 달리는 내 다리는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마침 해제된 야외 마스크 벗기 덕에 집까지 숨차게 달릴 수 있었다.
말간 얼굴의 큰아이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땡땡아, 수고했어. 실수할 수 있는 거야. 처음 시험 본 지금 실수해야지, 나중에 실수하면 더 속상해. 괜찮아. 반복하고 한번 안아주고 학원으로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학원도 안 보내고 끼고 있고 싶었지만, 내일 있을 영어시험 준비를 해야 되니 무거운 가방을 들려 보낸 거다. 그래도 그 잠깐 얼굴을 본 것이 내 마음을 달래주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인데, 아들 또한 그랬을 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시험날을 위해서는 우리는 또 역사공부를 했다. 이번에는 유튜브 강사 선생님의 강의를 같이 들었다. 그리고 또 열한 시 취침.
시험 마지막 날, 다행스레 역사도 영어도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았다고 기뻐하여 나도 뿌듯했다. 무엇보다도 시험기간이 끝난 게 마냥 좋고 홀가분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실컷 게임을 하고 계셨다. 둘째 학원을 보내 놓고, 같이 카페랑 도서관에 가자고 꼬드겼다. 원래는 시험 끝나면 뭐할 거야, 묻고 친구들이랑 PC방에라도 가보라고 내가 먼저 부추겼는데, 순진한 우리 아들은 이따가 친구랑 같이 게임이나 할 거란다. 도서관은 순전히 내가 반납할 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자고 한 건데, 아이는 의외로 순순히 가겠다고 따랐다. 어쩜 게임을 실컷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주스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아이는 달달한 디저트를 맛나게 먹었다. 나더러 먹어보라고 하지도 않고 말이다. 달달한 커피를 시켰기 때문에 너 먹어,라고 했지만 섭섭했다기보다는 내 앞에서 맛있게 먹는 아이가 마냥 예뻤다. 도서관에 가서는 이제는 어린이열람실이 아닌 곳의 신간 코너, 만화코너를 알려주었다. 강풀의 '무빙'이 보여서 이거 재밌다고 추천을 했다. 다섯 권 다 빌려가자, 하고 그거랑 내가 고른 책들을 대출했다. 그리고는 정기간행물 열람은 여기서 하는 거라고 하나씩 골라 훑어보았다. 나는 AROUND, 아이는 디자인 서적을 들췄다. 양산 하나를 나눠 쓰며 책을 무겁게 낑낑대며 오는 길도 달달했다. 이렇게 스윗한 우리 아들과의 데이트는 흐뭇하게 마무리되었다.
고백하자면 얼마 전부터 아들과의 팔짱끼기를 거부당했다. 봄길을 걷는 동안, 엄마가 팔짱 끼는 거 싫어?라고 물었더니 '응'하고 대답을 한 거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조금은 놀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자꾸 아이 쪽 팔을 향해 허공을 움켜쥐고자 했으나 이성으로 저지했다. 어쩌면 앞으로는 시험 마지막 날 낮에는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내가 추천한 책을, 아무리 만화라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내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무빙'이 재미있다며 다 본 거다. 나도 소화가 안 된 엊저녁, 한두 시간 만에 뚝딱 읽었다. 예전에 웹툰으로 보았던 건데도 또 재미가 있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들의 영웅담인줄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읽으니 부모의 마음이 다르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소파에 앉아있는데, 친구와의 게임을 두어 시간 하고 나온 아들이 내 얼굴을 보더니 이런다. '엄마, 다음 시험은 언제지? 그때는 과목도 더 많이 보죠? 다음에는 시험 한 달 전부터 공부를 시작할까?' 난 아무 말 안했는데, 게임을 많이 해서 민망했나? 웬 시험 얘기지? 그러더니 '시험이 몰아있지 말고 나뉘어지면 좋겠어. 삼일 간 몇 과목씩 하는 거 힘들어.' 내가 놀라서 말했다. '그러면 매주 시험일 텐데?' 그 오랜 시험 기간을 어떻게 버티라고? 시험 기간은 한 학기에 딱 두 번이어야 한다. 7월 초에는 몇시까지 공부하게 될까. 기술•가정 과목 어렵던데 그땐 어쩜 아들 덕에 나도 기술 공부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들과의 이 특별한 기간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이렇게 남긴다. 비록 팔짱은 금지당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