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키높이만큼 폴짝 뛸 수 있는, 글이라는 우주

글쓰기 시간 45분

by 조이아

종이와 연필은 흔한 도구이지만 때로 이 익숙한 물건이 내 앞에서 <마술 연필>이 된다. 저마다 품고 있는 사연을 풀어내는 이 시간, 이 스물여덟 명의 영혼들은 삶의 어느 순간을 헤매고 있을까. 과거로 시간 여행을 갔을 수도 있고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세계를 펼쳐 놓을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아무튼, 수학'으로 채워가는 이야기들. 제목만으로 흥미를 끄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포켓몬빵'이라니. "성공했단 말이야?" 너무 묻고 싶지만 꾹 참는다.

모두 함께 글을 쓰는 시간은 경이롭다. 잘하고 있는지 책상 사이를 거닐다가 원고지 사용법을 가르쳐 주거나 문단 구별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조용한 소란스러움이 지나가면, 내 걸음마다 나무바닥이 삐걱대는 소리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만큼 아이들 모두가 집중해 글을 쓰는 시간, 자기 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문학은 심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통활동임을 알고,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다'라는 학습목표 아래 수필쓰기를 진행한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쓰자고, '아무튼' 시리즈를 소개했다. 자신만의 부제를 붙이고 경험을 구체적으로 쓰는 거다. 스물여덟 명의 이야기는 분명히 다를 것이고 나는 그 다름에서 기쁨을 찾는다. 저 아이의 핸드폰 이야기에는 친구와의 소통이 담겼을까, 무료할 때마다 할 게임 이야기가 쓰였을까.

아이들이 글을 쓰는 또각또각 소리가 경쾌하다. 지우개의 마찰음과 수정테이프의 딸깍 소리에는 지이익 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곧 이어지는 수정테이프 꾹꾹 눌러 붙이는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다. 회색 종이에 붙은 흰 자국마다 단호한 결심이 담긴 듯 결연하다. 빈칸뿐이었던 원고지가 본인의 글씨로 채워진다. 아이들을 둘러볼 때마다 눈에 띄는 단어들은 나를 설레게 한다. 제목은 '아무튼, 돈'이었는데 '엇나간 마음'이라는 단어가 막 완성되어 쓰인다. '아무튼, 방콕'에는 이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아무튼, 당근마켓'이라니, 무엇을 사고팔았을까? 그 물건들의 사연은 또 무엇일까? 궁금한 게 자꾸 생긴다.

십 분을 남겨 놓고 마무리하는 손이 분주하다. 처음부터 읽어내리는 눈에도, 지웠다가 추가했다가 검토하는 손에도 마음이 담긴다. 끝까지 다 읽고 나서야 안심하는 마음이 마스크 위로 어린다. 45분의 시간이 빠듯할까 조마조마했을 마음이 느껴진다. 손으로 쓰느라 팔도 아팠을 테고, 글씨를 흘려쓰고 싶지만 또박또박 써야한다고 차분하게 자신을 달래는 마음도 있었을 거다.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길 마음이 가장 크겠지? 이만큼이나 글을 써내다니! 자기 안에 나만의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것을 믿기를. 친구들의 글을 읽으면서 열여섯 살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하기를.

이렇게 저마다의 우주가 기록된다. 나는 이 소우주들을 받아들고 어떤 이야기에 홀릴지 기대가 된다. 단 이만큼씩 10 학급의 결과물이 내 손에 쥐어진다는 것이 내게는 늘 놀랄 일이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우주에 풍덩 빠져서 그들 영혼의 키높이만큼 폴짝폴짝 뛰어올라 보겠다. 효과음으로는 나의 큭큭 웃음소리가 함께했으면.



@ 앤서니 브라운, <마술 연필>,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