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독서모임을 하고,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음식의 가치
요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열세 명이 모인 <H마트에서 울다> 독서모임을 하고부터다. 인상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 이야기를 곁들이는데 저마다의 살아온 경험에 맞추어 이야기는 다 달랐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옆자리에 앉은 내 눈도 붉혔다. 곁에 계실 때에는 소중함을 모른다며 지금이라도 어머니께 잘하자는 이야기를 저마다 다른 표현으로 했다. 무엇보다도 음식에는 사람과의 관계가 담기고, 그때의 풍경과 소중한 기억이 담기는 법이라는 오십 대 선생님의 말씀이 내게 꽂혔다. 집에 오는 내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해주었을까 하는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전업 주부인 엄마에 대해 미셸은 친구 엄마 콜레트 아주머니와 비교하며 엄마를 낮게 평가했다. 엄마는 도대체 아무 목적도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이를 키워내고 식구를 건사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나는 특히 요리에 관심이 없다. 시간을 들여 음식을 만들고 나면 먹는 데에는 10분이면 끝나는 게 요리라니, 그렇게 금세 먹을 바에야 맛있는 음식 정도 사 먹으면 된다 생각하고 차라리 정리나 청소에 더 열을 냈다. 음식에 사람에 대한 추억이 깃드는 줄 모르고. 미셸은 H마트에서 엄마와 고르던 식재료들, 엄마와 먹던 음식, 엄마표 요리를 볼 때마다 엄마를 그리워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럴 터이다. 행복하게도 여전히 우리 엄마는 나를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요리를 정성들여 해주신다. 주중에는 우리 집에서 지내시면서 살림을 맡아주시는 거다. 그 소중함을 모르고, 엄마가 해 놓은 반찬엔 손도 안 대고 홀랑 바깥 음식을 사 먹던 주말들이 있었다.
바깥 음식은 공간의 분위기가 특별하지 않는 한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집밥은 우리 가족 중 누군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게 된다. 나를 위해 들인 그 정성을 함께 내 안에 흡수하는 일이 바로 집밥을 먹는 일일 것이다.
K마트를 이용하며 지내던 프랑스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아침저녁마다 밥을 먹였다. 낮에는 학교에서 프랑스식으로 급식을 먹으니 아침도 든든히 먹이고 싶었고, 저녁에도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나와 남편은 1년뿐인 파리 생활을 만끽한다고 점심때엔 여기저기 식당에 다니기도 하고, 저녁으로는 근처 Picard의 다양한 냉동음식을 맛보느라 그런 요리와 와인, 혹은 맥주를 곁들였다. 우리는 그렇게 먹더라도 아이들에게는 꼭 밥을 주었다. 어떤 반찬들을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그래도 지금보다 쌀을 더 자주 씻었고 부엌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주말에는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먹는 즐거움을 누렸다.) 또 그때엔 김밥을 그렇게도 자주 쌌다.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마테오, 이바노 형제를 위해서도 그랬고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자주 해 먹었다. 연말에 학교에서 한다는 바자회 때에도 김밥을 만들어 가져 갔다. 그러고 보니 다니던 어학원의 선생님과의 작별인사 때에도 김밥을 준비했었구나. 요즘은 친정엄마가 살림을 도와주신다는 핑계로 몇 년째 김밥 말기는 안 하고 있다. 할머니가 그만큼 자주 해주시고.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표 음식을 많이도 먹고 기억할 것인데, 나에 대한 기억은 어떠할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퇴근하자마자 "얘들아, 너희는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어떤 게 맛있었어?" 물었다. 둘째가 단박에 "떡볶이."라 답한다. 픽 웃음이 난다. 저 떡볶이는 내가 만든 소스의 떡볶이일까 시판 떡볶이를 사다가 만든 것일까. 첫째는 도통 말이 없다. "음." 하더니 이내 "왜?"하고 묻는 거다. 한참 만에야 퀘사디아가 맛있었노라고 한다. 아, 그 퀘사디아는 이 년째 아이들을 위한 메뉴는 만들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아이용으로는 치킨 같은 고기를 넣어서 만들었었고, 어른용으로는 고기 없이 버섯만 넣어서 나와 남편이 가끔 해 먹는데 너무 미안해진다. 크게 반성해야겠다. 다시금 엄마의 정성이 너무 위대하게만 느껴진다.
<H마트에서 울다>의 발제자인 나는 자료를 준비하면서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음식, 혹은 나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란 질문을 만들었는데, 저 엄마 자리에 이제 나를 넣어볼 차례다. 우리 아이들이 기억할 엄마표 음식에는 무엇이 있을까. 다시금 김밥이라도 말아야겠다. 마흔도 한참 넘은 이 나이에 요리의 소중함을 깨닫다니, 너무 늦은 걸까?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얼른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왔다.
오늘 <향모를 땋으며>를 읽다가 '딸기의 선물'이라는 장에 이르렀다.(아직도 초반부) 저자를 키운 것은 딸기라며, 선물 같은 야생 딸기에 대한 부분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딸기의 달을 쉰 번 겪은 지금도 야생 딸기밭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온통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감싼 뜻밖의 선물이 베푸는 너그러움과 다정함에 겸손과 감사를 느끼는 것이다. "정말이야? 나를 위해서? 내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
50년이 지났는데도 딸기의 너그러움에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가끔은 바보 같은 질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답은 간단하니까. 먹어.
(중략)
'선물이 발치에 한가득 뿌려져 있는 세상'이라는 나의 세계관을 처음 빚어낸 것은 딸기였다.'
선물 같은 딸기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밑줄을 그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나서 저 부분을 다시 읽으니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딸기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베풀고 싶은 것도 이런 사랑이라는 걸 알겠다. 그냥 베풀고 싶은 너그러움과 다정함을 내가 만든 음식을 통해 전하는 일, 근사하다. 최근에 산 요리책은 <채소 마스터 클래스>다. 채식에 관한 요리책은 순전히 내 미각을 위한 거였다. 당근 뢰스티와 가지 샐러드가 어찌나 맛있던지 두 번 이상 해 먹었는데, 아이들은 채소라면 절레절레한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남편을 위해서 요리에 좀 더 정성을 들이고 싶다. 남편이 이 글을 읽으면 비웃겠지. 나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만 하는 사람이니까.
@ 미셸 자우너, 정혜윤 옮김, <H마트에서 울다>, 문학동네
@ 로빈 월 키머러, 노승영 옮김, <향모를 땋으며>, 에이도스
@ 백지혜 지음, 정멜멜 사진, <채소 마스터 클래스>, 세미콜론
*어제는 <H마트에서 울다> 발제문을 준비하다가 내용 요약 위주로 글을 썼는데, 쓰고 나서도 영 찝찝했다. 나의 미천한 경험 탓인가. 오늘 모임을 하고 나니 또 할 말이 떠올라서 써 본다. 역시 반성의 글은 술술 써진다. 반성문을 쓰던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이렇게 또 요리에 대해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