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나를 잃지 않는 방법

쓰기를 통해 더 낫게 실패하기, 모닝 페이지를 써야 하는 이유

by 조이아

내가 글쓰기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장에는 글쓰기 책만을 위한 공간이 있고, 글쓰기에 관한 신간도서가 나오면 솔깃해지고 어느새 하나둘 구입해 이제 두 칸이 되었다. 올해에는 <치유의 글쓰기> 박미라 선생님의 워크북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 이윤주 저자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를 사두었다. 지난주에는 마티 출판사의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를 사서 품에 안았다. 시사인과 채널예스에서 읽은 기사 때문이었다. 채널예스 6월호에 신유진 작가님은 '글 쓰는 식탁'을 연재하면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의 일부를 넣어주셨는데,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매우 공감해 일기장에 보라색 펜으로 적어두었다.


"콜레트는 본질적인 예술이란 기다리고, 감추고, 부스러기를 모으고, 다시 붙이고 금박을 입히고, 가장 나쁜 것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바꾸는 법을 배우는, 저 시시함과 인생의 맛을 잃는 동시에 회복하는 법을 배우는 내면의 업무*라고 말했고, 나는 이곳에 돌아와 비로소 내게 글쓰기가 그런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을 쓰는 나는 무언가를 얻고, 잃고, 부서뜨리고, 붙이며 나아간다. 내 글은 언제나 상처와 흠집의 기록이고, 내 문장은 여전히 흔들리지만, 거기서부터 회복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안다."

* 대니 샤피로 지음, 한유주 옮김,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마티, 2022

- 신유진, <계속 쓰는 사람>, 2022 채널예스 6월호 <<글 쓰는 식탁>> 중에서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도 내 책장에 있다.) 글쓰기를 통해서만이 나를 표현하는 기분이라 쓰는가 싶었는데 저 글을 읽으니 별것 없는 내 일상을 글을 통해 재건하는 기분, 바로 그거였다. 아무 것도 아닌 내 인생이 글을 통해 의미를 찾는 기분, 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글에 있다.


모닝 페이지(매일 아침 의식의 흐름을 3쪽 정도 적어가는 것을 말한다.)를 열심히 쓸 때가 있었다.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나는 모닝 페이지를 극성스럽게 써댔다. 신생아를 옆에 두고 새벽에 글씨는 괴발개발하면서도 마구 써내려 나가던 기분은 자유로운 해방이자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그즈음에 <아티스트 웨이>를 읽은 덕도 있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꼭 필요했다. 둘째를 낳을 무렵 학교에서 수업 시간이 변경되어 1, 2, 3, 4교시를 연달아 한 적이 있었는데 예정일이 남았는데도 진통이 온 거다. 다행스레 휴가를 얻어 쉬는 기간을 얻었다. 너무 잘 쉬어 근육이 완전히 풀려버린 탓인지 아이를 낳은 날 밤, 뒤척이다가 어딘가에 문제가 생겼다. 조리원 욕실로 향하는 낮은 문턱 하나를 지나는 것도 무척 힘겨울 만큼 다리를 올릴 수가 없었고, 조리원에서 나온 후에는 산후 운동 전문병원에 방문해 물리치료며 운동치료를 받았다. 도대체 근육이라고는 없었는지 그때의 나는 엉덩이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 몸이 기능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은 수시로 나를 찾았으니, 나는 나로서 존재한다기보다는 그저 어설픈 엄마일 뿐이었다. 추나요법, 물리치료를 받는 나날이 이어졌고, 나는 나를 필사적으로 되찾기 위해 이상한 글씨로 공책에 뭔가를 써 내려갔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모닝 페이지는 의식의 흐름 대로 쓰는 것이므로 다시 읽지 않아도 좋다. 초반에는 읽지 말라고 한다. 부정적인 생각이든 쓸데 없는 느낌이든 다 쏟아내는 일이 모닝 페이지의 가치이다. 그러다 보면 내면의 창조적인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말했다.


이옥선 작가님의 <빅토리 노트>는 5년 간의 육아일기이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주어야겠다 다짐하고 5살까지의 육아일기를 마련하셨다니 대단한 기록이다. 딸 김하나 작가님이 진행하는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 출연한 13화에서 이옥선 여사님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고, 독박 육아를 하셨는데 어떻게 두 아이의 육아일기를 각각 쓸 수가 있었느냐고. 작가님은 잠이 많지 않아서라고 답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 둘 다 잠들고, 술 취한 남편도 자고, 그러고 나면 육아에서 퇴근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안도의 한숨이 나오면서 바로 자고 싶지 않은 거예요. 시간을 좀 보내고 싶은 거지. 책도 읽고 문장도 좀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대답을 들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잠들었을 때 이거라도 안 쓰면 내가 없어지는 기분을 나는 너무도 잘 안다. 내가 나로 존재하려면 뭔가라도 해야 했다.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라는 책에서 이윤주 저자는 말한다.

“출산으로부터 시작된 여정에서 단 한 차례도 쉰 적이 없는 여성들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고백했다. 극심한 변화의 한 복판에서 해진 마음을 잇고 깁듯이 글을 썼다. (중략) 신체적 고독에 사회적 고독이 더해진다. 삶에서 가장 귀한 존재를 얻은 대신, 그들은 자신의 어떤 일부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낀다. 이 과정에서 ‘정신의 바느질’이 필요하지 않은 여성은 드물 것이다. “


둘째 출산 후 열정적으로 몇 권을 쓰던 모닝 페이지는 이제는 내게 먼 과거가 되었지만, 작년부터 쓰는 일기는 어쩌면 일종의 모닝 페이지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 학교로 옮겼던 작년, 강박적으로 매일 저녁 일기를 써댔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나에 대해 모르는 곳에서 하루하루 버텨나간 나날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보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에는 담임을 맡아서 그런가 체력이 달려서 매일 한쪽이 꽉 차는 일기를 쓰기가 수월치 않았다. 2월까지는 꽉 채운 일기가 보이는데 3월부터는 간단한 기록에 그치거나 하루씩 빠트리며 일기를 채웠다. 이 일기는 하루 중 일어난 인상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일 때도 있지만, 두서없는 내 생각의 전개가 날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올해부터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가고 싶어서 간다기보다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주 2회를 끊어 놓고 겨우겨우.(주 1회만 간 적도 많다.) 갈 때마다 후들후들 내 배는 떨린다. 6개월이 넘어가니 그동안 외면했던 내 몸의 이상을 다시 마주 보게 된다. 왼쪽 골반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다리 운동을 할 때면 한쪽은 힘이 안 들어간다. 엊그제는 강사님이 내 틀어진 자세를 바로 잡아주셨는데, 한 세트에 5회 운동을 하면, 5회 모두 바로잡아야 할 정도로 내 골반은 많이 틀어져진 채로 굳어졌다. 이제는 걸을 때마다 왼쪽 골반이 의식될 정도인데 이걸 어떻게 바로 잡을 수는 없어도 근육을 단련시켜야 할 거라는 답은 보인다. 둘째 아이의 출산은 내게 운동을 안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었는데 그 아이가 벌써 십 대 소년이 되었으니 너무 오래된 내 몸의 역사다.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몸과 마음의 건강은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 몸과 마음을 어쩌면 글쓰기로 단련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나의 몸은 어떤지, 마음은 어떤지를 써나가다 보면 내게 필요한 것들- 이를테면 허리 강화 운동이라든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안이라든가도 써나갈 수 있을 테고, 그때그때 나의 요구 어쩌면 욕구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여름방학을 맞이하면서 나의 모닝 페이지 라이프를 다시 시작하고 싶다. 미라클 모닝은 아니니 가능성은 있다.

여름 아침의 고요한 부산함이 떠오른다. 자연은 일찍부터 하루를 시작하는데 아직 인간 사회는 조용함을 유지하는 그 시간, 사부작사부작 걸으며 아침의 기운을 느꼈던 새벽 산책의 달콤한 촉촉함이 떠오른다. 이른 아침의 고요가 아니더라도 그 시간, 어쩌면 시끄러울 내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 실은 이렇게 길게 나의 다짐을 써야 할 만큼 모닝 페이지를 시작할 자신이 없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아티스트 웨이>를 들춰보았다. '그래, 맞아, 이거였어.' 내 안의 창조성을 깨우는 여행을 올여름 시작하련다. 내게는 창조성보다는 일단 내 안의 잡념들을 쏟아내는 것이 먼저일 테다. 그동안 외면해온 나를 모닝 페이지로 직면해보겠다. 글쓰기의 여정은 몸의 단련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질 것이다. 돈으로 내 의지를 산 필라테스 말고도 내 필요에 의한 요가, 걷기, 달리기도 병행해야지. 그때의 동행으로는 단연 ‘빅토리 노트’가 맞춤할 것이다. <빅토리 노트>의 굿즈로 나온, 과거 이옥선 작가님이 사용하신 공책을 그대로 재현해낸 공책. 그곳에서는 내 몸의 승리와 마음의 승리가 이어지리.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의 서문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더 낫게 실패한다. 우리는 자세를 바로잡고,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다시 시작한다."

드문드문 이어져오는 나의 글쓰기도 모닝 페이지로 새롭게 시작해, 더 낫게 실패하겠다. 더 잘 실패하기,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일 것이다.


@ 줄리아 카메론, <아티스트 웨이>, 경당

@ 이윤주,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위즈덤하우스

@ 이옥선, 김하나, <빅토리 노트>, 콜라주

@ 대니 샤피로,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