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받고 싶은 자세, <레슨 인 케미스트리>
조수석에 탄 아들에게 이 얘기 저 얘기를 건넸는데 들려오는 목소리가 없다. 여드름 치료를 위해 피부과에 가는 길이었다. 재차 물어도 대답 없는 너. 운전 중에 자꾸 옆을 보아야 했고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순간 스치는 단어는 '중2병.'
아들은 얼마 전부터 신기술을 획득했다. 침대와 핸드폰과 합체되는 기술. 간혹 엄지에 까만 골무를 끼고 있을 때도 있다.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꿈쩍도 않는다. 목소리가 낮아서 내게 안 들리는 거라고 위안해 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큰일이구나. 드디어 닥쳤구나. 이게 정말 사춘기인가 보다. 방학식날 우리 반 모범생의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하소연을 하셨다. 안 그러던 딸아이가 학원을 안 가고 친구와 놀고 오는 등 거짓말을 한다는 거다. 늘 바른 자세와 웃는 얼굴로 신뢰를 주던 아이라 나도 깜짝 놀랐지만 '어머니, 아이가 독립하고 있는 거네요. 크게 일탈할 아이는 아니니 너무 걱정 마시고요. 언제나 애정으로 지켜봐 주세요.' 했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의 변화는 너무도 놀라운 일인 것.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다들 힘드신 게 맞다.
방학을 하자마자 아이들을 위한 계획을 세워 친정에 머물며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롯데월드에 다녀오고 석파정에도 가보았다.(실은 내 약속이 있어서 그에 맞춘 일정이기는 했지만, 엄마가 롯데월드엘 가고 싶어 가겠니? 엄마의 수고를 알고 즐겨라 당부했다.)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곧 이어진 학원 방학 덕에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신나게 뒹굴었다. 첫째에 대해 나는 또 놀라고 말았다. 나는 좀처럼 그럴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인데 내 배에서 난 저 아이는 온종일 침대에서 생활하기가 가능하다는 걸 새로 알았다. 초등학교 5학년 둘째 아이는 간혹 몸을 움직이며 땀도 흘리고 포켓몬 카드도 뒤적이고 띠부씰도 들여다보는데, 중학교 2학년 첫째는 두 눈이 작은 핸드폰 액정에 고정되어 있다. 밥 먹어라, 과일 먹어라 해도 가장 늦게 자리에 앉는다. 집에서 가장 책을 읽지 않던 둘째는 담임 선생님이 매주 독서기록을 강조하셔서 매주는 아니어도 2-3주에 한 번은 책을 다 읽고 독서기록도 하고 있다. 나는 학교 학생들이 가져오는 독서 기록지를 보면서 우리 큰아이 생각을 한다. 얘는 왜 이걸 안 할까. 우리 반 누구는 과학고에 간다고 추천서며 자기소개서를 챙기고 그에 맞는 독서기록도 착실히 하는데 우리 집 아이는 왜 못할까. 이런 생각에 한 번씩 속이 상한다. 특출 난 학생들하고 비교를 해서는 안 되는 거 잘 아니까 입 밖에 내지는 못 하지만. 어쨌거나 학원 방학인 이틀 동안 이렇게 침대와 한 몸인 걸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그리고 맞이한 주말은 또 주말이라서 침대와 한 몸이 되신 아드님.
일요일인 어제 아침엔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둘째보다 늦게 일어난 첫째 아이가 식탁에 앉기도 전부터 나는 회의를 한답시고 화이트보드를 들고 앉았다. 방학 계획을 못 세웠으니 이제부터라도 세워보자 했다. (방학 전주 주말에 방학 계획을 세우자고 큰애를 계속 불러댔다가, 대답도 없고 안 나와서 방으로 갔더니 '나 아직 방학 아닌데!'한다. 하릴없이 '응, 맞네.'하고 돌아 나온 적이 있다.) 화이트보드에 키워드 다섯 개를 써두었다. '운동/예술/공부/독서/놀이/집안일' 그리고는 이것들을 하자고 하나씩 예를 들면서 말했다. 다니고 싶은 학원이 있다거나 엄마가 도울 부분이 있음 알려달라고. 소소한 집안일도 하나씩 맡겼다. 놀이 부분에서는 핸드폰 이용 시간에 대해 일렀다. 둘째는 9시 이후에는 하지 말 것, 큰 아이에 대해서는 열 시로 정하고 싶은데 남편은 열한 시가 적당하다 하여 우리는 둘이 논쟁을 했다. 우리 아들들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리를 피했고 결국 나랑 남편이 언쟁을 벌이다가 둘이 마주 보며 하소연을 하는 것으로 회의는 끝났다.
내가 잘못했다. 일어나자마자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아이들한테 회의랍시고 혼잣말을 한 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회의가 이런 건데, 답을 정해 놓고 한 번 얘기해 봐라 하는 식의! 딱 그 모습이었다. 허, 내게 권력이란 게 있는 줄 몰랐는데 아이들에게 부모는 큰 힘을 가진 존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과에 갈 것인가 문과에 갈 것인가를 정하던 때가 생각났다. 담임 선생님이 이과가 대학 가기 유리하다 하셨고, 나는 전혀 그쪽 적성이 아니었다. 그 후로 어느 밤 아빠가 소파에 앉아보라 하고 이과가 더 낫다, 이과에 가라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나를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속옷이 비치는 얇은 잠옷을 입고 이 얘기를 듣는 내가 참 무력하고 무방비하다고. 나는 그저 흐르는 눈물을 닦고 어떤 문장도 말하지 못한 채 그렇게 이과 진학을 결정했다. 어찌 보면 짧은 순간이지만 나로서는 굉장히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가 생각난 것은 내가 그때의 부모와 같은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통보. '네'라는 대답만이 요구되는 시간.
지난주 저녁 산책 때 남편과 걷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애한테 하나하나 이렇게 앉아라, 이거 해라,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관계만 나빠진다고. 에세이며 책을 읽어서 뭐하냐면서, 달라지는 게 없는데-라고. 우리 남편은 평소에 이렇게 말하는 편이 아닌데 그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였는지 나한테 조금 심하게 말했다. 하지만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일요일, 오랜만에 둘러앉아 '우노'를 했다. 핸드폰 게임 우노로 알게 된 규칙을 다시 설명해 주는 첫째는 아주 신이 나 보였다. 이런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게 오랜만이라서 우리는 큰아이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자리에 앉아 게임을 몇 차례 했다. 1등 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동생에게 물을 갖다 달라고 시켰다. 저녁 메뉴는 둘째가 선정했다. 남편은 안마를 받았다. 내가 1등을 하면 모두에게 독서시간 30분을 주겠다고 했더니 기를 쓰고 다들 이겼다. 와인잔에 포도주스를 따라와 달라는 소망도 있었다. 속으로 나는 1등을 하면 뭘 시킬까 골똘하고 있었는데, 다들 이렇게 가벼운 소원을 말하다니 놀라웠다. 그러고 보면 게임 1등이 아니어도 나는 늘 뭔가를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씻어, 이제 자자, 밥 먹어, 책 좀 읽어' 등등. 나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 들까. 그것도 우리 식구에게! 내가 1등을 못 한 건 세 남자의 강한 의지였을 수도 있지만 내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도 주었다.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일? 불가능하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책을 아시는지? 예순다섯에 데뷔한 보니 가머스의 소설로, 1960년대를 살아가는 화학자 엘리자베스의 이야기이다. 여성에게는 미소를 짓거나 커피를 타는 일 등의 보조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시대에 화학을 연구하는 엘리자베스는 우여곡절 끝에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요리에 임하는 그의 태도는 진지하다. 요리 또한 화학 변화이므로. 시청자들이 과학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고 진지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방송을 진행하는 엘리자베스는 마지막 방송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 보니 가머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심연희 옮김, 다산책방
이런 책을 읽으며 감동을 받고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는, 우리 아이를 이런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중2병으로 규정하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더없이 진지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 한 것이다. 잔소리가 아니라 성찰을 해야 한다. 나오려는 말을 참고 기다려야 하고, 아이를 믿어야 한다. 모닝 페이지를 쓸 때마다 큰애에 대해 쓴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말은 거기에나 써야겠다.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고민할 게 많을 나이인데 내가 개입해서 기분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다. 초등학교 5학년 EBS 방학생활의 첫 강의 주제는 '사춘기'였는데 사춘기의 뇌는 '공사 중'이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그래, 아이는 변화하고 있는 존재다. 자기 생각이 있는 존재임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대하는 내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본다.
자신이 누군지 확실하게 아는 자가 내보이는 분명한 기색. 엘리자베스는 그 자신감을 씨앗처럼 뿌렸고 그것이 마침내 상대방에게 뿌리내려 자라도록 했다.
@ 보니 가머스, <레슨 인 케미스트리>, 심연희 옮김, 다산책방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참 어렵다. 자꾸 부족한 것만 보인다. 강점을 보고 신뢰한다면 어떤 꽃이든 활짝 필텐데. 머리로는 아는데 말로도, 눈빛으로도 잘못 나간다.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에 반성을 많이 한다.
부모가 자식을 바꾸려고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지만 주변의 믿을 만한 어른들이 주는 영향은 아이를 달라지게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오늘은 8월을 맞이하여 우리 반 학생들과 소통했다. 다정한 문자와 카톡, 전화로 반가운 소식을 주고받았다. 운동을 비롯한 예체능과 공부, 잘 놀고 있는 지와 코로나 등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점검했다. 아이가 자라는 데에는 부모 말고 다른 어른들이 의외의 자극을 줄 수도 있으니 교사로서는 열심히 조언하고 상담해야지. 우리 아이의 선생님들께서 한 번씩이라도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다면 좋겠다. 스쳐가는 한 마디가 깃털처럼 날아가는 엄마의 말보다 무게를 가지기도 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의 환대하는 태도, 주위 사람들을 믿고 싶어졌다.
* 남편, 책이 나를 변화시킨다기보다는, 내가, 내가 쓰는 글이 오히려 나를 더 돌아보게 하고 다짐하게 한다는 걸 알아주길. <레슨 인 케미스트리> 재밌으니까 꼭 읽어보고! 이 책의 핵심적인 이야기인, 어머니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꼭 밑줄 그어가며 읽기를! (요리가 중요하다는 얘기는 슬쩍 넘어가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