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십 대 아들과의 관계 회복기
이번 여름방학에 나는 아들과의 관계 회복에 전력을 다했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방학을 앞두고 침대, 핸드폰과 한 몸이 된 아들은 내 말에 대답을 안 했다. 차에 나란히 앉아 운전을 하다가 대답이 없어 조수석을 자꾸만 보아야 했을 때 알았다. 드디어 시작되었구나, 사춘기. 남편은 종종 말한다. 자신도 중고등학생 때 방문을 꼭 닫고 들어가 부모와 말을 안 했노라고, 지금의 이런 관계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때마다 입을 삐죽 내밀며 다른 생각을 했다. 아들과의 관계는 꼭 그럴 수밖에 없나?
방학 동안 아이들과 한 일이 많다.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보았다. 초등학생을 고려하여 감상한 연극은 <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작가의 두 번째 연극 상영작인 <내일은 내일에게>였다. 스토리가 그려지는 이야기였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연극 속으로 빠져들어 마스크 속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본 사람이 나다. 오랜만에 거니는 대학로는 어찌나 활기찬지.
롯데월드에 가서 하루 놀았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학생들끼리도 가는 곳을 우리 애들은 멀어서 못 가나 싶어 데려갔다. 놀이기구가 낯선 초등학생에게 형은 의지가 되어 주었다.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탄 것은 놀이기구가 아니면 무엇이었나 싶을 만큼, 도빵이는 조금 겁을 냈다. 내가 자꾸 바이킹, 아니 스페인 해적선을 타자고 해서 그랬나. 나도 놀이기구가 슝 내려올 때를 잘 못 견디면서 센 척 해본 건데, 물을 때마다 도빵이는 고개를 저었다. 덕분에 우리가 경험한 최고 난이도는 후룸라이드였고 고만고만한 어트랙션으로 모험을 즐겼다. 즐겁기만 한 경험은 아니었다. 종합이용권의 매직패스와 매직프리미엄패스가 어떻게 다른지 몰라 헤매고 멍청비용을 썼다가 스스로에게 실망했다가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멘붕이 오고 헤매는 것을 본 두 아들은 양쪽에서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마음의 여유를 찾고 더 놀다 가자는 내 의견에 반대하며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아이들에게 약간 실망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여름 내 동네 카페에 가서 빙수 한 사발을 먹고 책 읽는 시간을 가졌더랬다. 여기저기 다녀보다가 아들들이 가장 자신들 취향이라는 빙수집을 골라 방학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갔다. 내 목적은 독서였지만 아들들은 그저 콩가루가 듬뿍 뿌려지고 떡이 쫄깃하게 맛있는 빙수를 먹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단 이십 분의 독서 시간이라도 그게 어디야 하면서 빙수집엘 드나들었더니, 마지막 방문에서는 주문할 때 카페 언니가 내 커피 취향을 알아서 주문을 확인시켜 주셨다.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도 열심히 보았다. <탑건 2>와 <한산>은 분명히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본 영화였는데 <탑건 2: 매버릭>을 보면서 나는 또 마스크 속으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다 알 것 같은 스토리 라인과 결말이 뻔히 보이는데도 매버릭은 내게 숭고한 감동을 주었다. <한산>도 마찬가지로 결말을 다 아는데도 감동을 받고 눈물을 보였다. 넷플릭스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도 함께 보았는데 내가 더 재미있어서 챙겨 본 것 같다.
때로 큰 아이는 "우리 우노(UNO) 하자." 혹은 "브루마블 하자." 제안한다. 과묵한 큰 아들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말할 때는 이때뿐이므로 (아, 또 있다. "저녁은 뭐 먹어요?") 나도 남편도 무조건 그 말을 따른다. 테이블에 모여 앉아 우노를 하는 거다. (여름 방학 때 브루마블은 세 차례, 우노는 셀 수 없이 했던 것 같다. 브루마블은 시간이 오래 걸려서 세 번 하고는 저 멀리로 슬쩍 치워 두었다.) 게임에서 1등 하는 사람이 다음 날의 한 끼 식단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거의 규칙이 되었다. 게임 덕에 우리는 햄버거를 먹고, 라면을 먹고, 집 근처 식당의 비빔밥 또는 국수를 먹었다. 보드게임을 할 때마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생생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웃는 것을 슬쩍 훔쳐보는 게 다였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니, 이런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
이런 방학을 보냈다. 공부는 정말 안 하고 책 읽자는 얘기는 많이 했는데 뭐 그렇다.
여전히 <향모를 땋으며>를 읽고 있다. 지난 주말에 이 책을 읽다가 큰 위안을 얻었다. 챕터의 제목은 '세 자매'로 원주민들이 즐겨 심는 작물인 콩과 옥수수와 호박이 얼마나 어우러지며 자라는지에 관한 거였다. 단일한 작물을 키우는 것보다 저 셋을 함께 심으면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것이 요지이다.
옥수수가 무릎 높이까지 자랐을 때 콩 싹은 둘째가 으레 그러듯 마음을 바꾼다. 잎은 그만 만들고 길게 넝쿨을 뻗는데, 이 가느다란 초록색 끈에는 나름의 임무가 있다. 십 대 시기가 되면 줄기 끝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방황하며 허공에 원을 그리는데, 이를 회선 운동이라 한다. 줄기 끝은 하루에 최대 1미터를 이동하며 목표를 찾을 때까지 피루엣 동작으로 둥글게 둥글게 원무를 춘다. 줄기 끝이 찾는 것은 옥수숫대 같은 수직의 지지대다. 넝쿨을 따라 나 있는 촉각 수용체는 우아하게 위로 나선을 그리며 옥수수를 감싼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향모를 땋으며>, 에이도스
이 부분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 콩 잎이 십 대 시기가 되면 '방황하면서' 허공에 원을 그린다니, 우리 집 십 대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아이의 모습 또한 겉보기에는 어떤 효용이 있는지 알 수 없고 무의미하게 보였는데 콩도 이런 걸 십 대 때 하는구나. 그런데 그게 무의미한 게 아니었어. 옥수숫대 같은 지지대를 찾는 거라니 아이의 행동도 달리 느껴졌다. 어쩌면 아이는 부모인 옥수수와의 거리를 재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는 옥수수가 첫째로 나오지만 나는 부모로 읽었다.) 부모에게 얼마나 기댈 수 있는지, 자신을 얼마나 기다려줄 수 있는지, 얼마나 참아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는지도 모르지. 지금은 별 볼일이 없어도 그래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달라는 것으로도 느껴지고, 혹은 무언가를 수행하는 건 아니어도 이런 시간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일 수도 있어.
그뿐이 아니다. 책의 그다음 쪽에는 콩이 옥수수 및 호박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옥수수만 희생하는 것이 아닌 거다. 옥수수는 키를 키우며 자신에게 주어진 햇빛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잡는다. 지지대를 찾은 콩은 옥수수 잎을 방해하지 않고 꽃을 피우고, 땅 속 깊은 곳에서는 옥수수와 호박에게 질소를 공급한다. 서로 돕는 자연의 질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연에게서 배우고 싶다. 부모는 좋은 것을 아이에게 주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주고 싶어 욕심을 낼 수도 있지만, 부족한 것만 못 할 수도 있다. 부모와 자식 또한 상호적인 관계이므로 부모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내게 엄청나게 큰 믿음과 사랑을 준다. 부모가 되고 나서 나를 뜨겁게 하고 가끔은 몸서리치게 만든 것은, 온몸이 빨갛고 고개도 못 가누던 이 아기가 내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는 채 모든 것을 내게 맡기고 믿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내가 잘못하고 있으면 어떡하려고. 때로는 무서울 만치 부담스러운 이 관계가 나를 울게도 하고 웃게도 했다. 나를 움직이게 하고 살게 하고, 그것도 좀 더 낫게 살도록 한다. 아이들은 자꾸 내 마음의 폭을 잡아들고 쭈욱쭉 늘린다.
학원비는 다 내고 왜 애들을 학원 안 보내고 서울 놀러 왔냐고 타박하는 친구에게 나는 그냥 웃어 보였지만, 이번 방학, 공부해라 학원가라 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 앞에서는 아무 말 못 했지만 이렇게 키우는 것도 내 방식이고 나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 일들은 그저 아이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써두고 싶었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는, 아이를 위해 앉아 있던 부모가 아니라 그냥 감동을 잘 받는 나였다. 롯데월드에서 함께 줄 서고 놀이기구를 탄 것도, 아이들 경험시켜주려고 왔다는 것은 허울이고, 놀이공원을 거닐며 정말 신이 났고 후룸라이드에서 하강할 때엔 시원함에 감탄했다. 아이들 덕분에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 수 있는 거다. 나를 웃게 만드는 게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지금, 여기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살아가게 하는 힘을 바로 이 아들들이 준다.
방학 막바지에 강릉을 여행할 때에는 비 내리는 날씨가 풍경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둘씩 짝지어 큰 우산을 쓰고 다녔다. 주차장에서 숙소로, 식당으로, 소품 가게로 가던 길에 우산을 받쳐 들고 걸으며 날씨를 원망했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비에게 감사해야겠다. 팔짱은커녕 손도 못 잡게 하던 큰아들이 우산을 들어주고 내가 팔짱 끼는 것을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강릉이어서 휴가 중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우산 아래 시시덕거리던 순간은 이번 여름을 특별하게 해 주었다. 대답 없는 너를 부르던 한 달 전보다 아들과 나 사이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엄마라는 권위는 내려놓고 나를 의지하도록 때로는 내가 의지하면서 충분한 나로 즐겼기 때문이다. 여름방학 동안 한 걸음 가까워진 이 사이가 더 이상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