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형 인간의 바깥활동 혹은 수줍게 대화하기
오랜만의 회식을 마쳤다. 배불리 먹고 마신 탓에 소화를 시킬 겸 걸으러 나왔다. 바람이 선선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의 산책 메이트인 팟캐스트를 켰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출연하셔서 기대하는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될 무렵, 더 이상의 대화는 힘들다는 생각, 이미 오늘의 대화는 초과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곱 명이 모인 회식 자리가 내게 넘치는 바깥활동이었다는 생각이 든 거다. 좋아하는 대화가 펼쳐질 팟캐스트를 끄고 말없는 연주를 들었다. 빌 에반스와 짐 홀의 합주가 나를 달래주었다.
내게 바깥활동이란 무엇인가.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학교 안 독서모임은 열외로 한다.) 올해부터는 오프라인으로 만나는데 그때마다 약간의 긴장을 한다. 모임의 주최자인 탓도 크겠지만 내가 어쩔 수 없는 내향형 인간이라 그럴 것이다. 그래도 같은 구성원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이 주는 안정감은 분명히 있어 만나기 전의 긴장은 설렘이 되고, 만나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파하고 나면 벅찬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제 같은 회식은 어색했다. 3월부터 같은 부서에서 반년을 함께 했지만, 다른 교무실에서 지내다가 오늘 처음 마주 앉는 분도 계시고 사적인 대화를 전혀 나눠보지 못한 분들도 계시기 때문이다.(그렇다, 올해 단 한 번의 부서 회식이었다.) 생각해보면 올해 새로운 교무실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작년에 머물던 공간보다 파티션이 낮아 얼굴을 마주 보며 근무해야 하는 게 영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이쯤 되면 바깥활동이 문제가 아니라 대인관계를 점검해 보아야 할 판이다.
나의 대화 상대는 누구인가 생각해본다.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대화는,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이상하지만, 팟캐스트인 것 같다.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의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이라든가 '조용한 생활' 김혜리 기자님, '책읽아웃' 오은 시인님, '옹기종기' 프엄 님, 캘리 님은 모두 다정한 대화 상대다. '비혼세' 곽민지 님, '영혼의 노숙자' 셀럽맷 님이나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일기떨기' 등의 대화에도 슬며시 귀를 열어둔다. 이분들이 얼마나 내 마음을 흔드시는지. 출퇴근 시간이 짧아 이분들 대화를 다 따라가는 것도 약간 벅차지만 언제나 재미있고 훌륭한 대화가 흘러나오므로 나는 귀를 한껏 열고 대화 속으로 풍덩 빠져든다. 그리고는 든든한 킥판 하나를 들고 의지하듯, 이 안전한 공간에 내 마음을 한껏 풀어놓는다. 하지만 이 친숙한 분들은 실은 너무 멀리 계신다. 진짜 대화는 아닌 셈이다.
교무실에서의 대화 상대는 옆 짝꿍 선생님 아님 대각선에 앉은 영어 선생님이 되겠다. 바로 앞자리 선생님은 과묵한 체육선생님인데 너무 바빠 자리에 안 계실 때가 많다. 가까운 자리 선생님과 대화하는 걸 보니, 나는 역시 사귐에 소극적인 것 같다. 아니지, 저어기 앉는 국어과 선생님이랑 가장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는 한다. 내가 있는 2층 말고 다른 층에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러 가는 일이 흔치 않다.(후회할 일을 하고 있다.)
내게 딱 좋은 사교활동은 둘이 만나는 일일까 싶어 일대일 만남을 선호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하고도, 온라인으로 알다가 오프라인으로 만난 지인도, 둘이라면 서로에게 관심 보이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고 내 마음도 편하다. 여러 사람과 둘러앉아 나누는 대화는 어렵다. 큰소리로 대화를 주도해나가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런 내가 독서모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네!)
어제 회식 때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 말씀 잘하시는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추임새를 넣는 대화가 다일 뻔했다. 그런데 우리 부장님께서는 한 사람씩 칭찬과 격려를 해가며 대화의 물꼬를 트셨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게 이목이 집중되기도 해서 가끔 얼굴도 빨개지고 몸도 더워졌다. 조금 과장해서 웃기도 하고, 서먹한 순간에는 괜스레 잔도 부딪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아슬아슬한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동안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과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 같은 것들이 우리 주위를 둥실 떠다녔다.
작년 딱 한 번 있었던 부서 회식이 생각났다. 그때는 인원 제한이 있어서 부서를 반으로 쪼개어 회식을 했다. 네 명이서 두어 시간을 먹고 마시며 나누던 대화의 내용은 잊었지만, 시원한 맥주병을 건네며 마음껏 웃었던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분들과 얼굴을 마주하면 우리 사이에 흐르는 정을 느낄 수 있다. 이게 진짜 대화를 나눈 후의 좋은 점이지!
어제의 회식도 아직 낯선 얼굴들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웃었다는 것으로 우리 사이에는 그만큼의 정이 생겼을 거다. 같은 교무실에 있어도 어색하기만 했던 선생님의 반달눈과 눈을 맞추었고, 저 위층에 계신 선생님께 코디 센스에 대한 칭찬을 듣기도 했다. 알게 된 지 몇 년이 지난 선생님께서 집에 거북이 한 마리와 잉꼬 한 마리를 키우신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집에 와서도 함께 나누던 대화가 문득 떠올라 다시 웃기도 한다. 주위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이렇게 몸을 덥히고 여운도 남기는구나.
내향형 인간인 나는 회식 같은 거 왜 하나 싶었는데. 내향형이든 외향형이든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공감하는 대화는 과연 이롭다. 팍팍한 일상에 또 하나의 일거리로 인식되던 회식이나 모임의 유용함을 마흔이 넘어서야 깨닫는다. 그렇지만 오늘 도서관 다녀오는 길, 나의 대화는 다시 또 팟캐스트다. 김혜리 기자님 목소리 매력적이셔.
(실은 이게 다 우리 부장님 인품이 훌륭해서 그랬을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으레 그랬듯 밥 먹으며 벌을 서는 기분으로 시간만 때우다가 왔겠지. 슬그머니 다음 독서모임 도서를 쓰다듬어 본다. <말센스>라는 책이다. 어쩌면 극히 내성적인 사람들을 대화로 이끄는 법 혹은 조용하고 우아하게 모임을 이끄는 법 등을 배울 수도 있겠다.
그치만 전체 회식은 정말 싫어.)
@제목의 사진은 좋은 친구와 둘이 즐기던 저녁의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