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을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이자람의 <이방인의 노래>를 친정부모님과 우리 가족 삼대가 함께 감상했다. 나로서는 옛 생각을 떠올려 준비한 공연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예전에 그러니까 내가 어린이이던 옛날에 아빠가 아는 분께 예솔이와 그 아버지 사인이 있는 레코드 판을 받아온 적이 있다. <내 이름> 노래는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네~하고 달려가면. 너 말고 네 아범.’하던 노래이다. 그 음반을 나는 즐겨 들었더랬다. ‘갓이오, 가시오’하던 말놀이가 담긴 이야기 같은 노래도 나오고 전래동요도 나오던 음반이었다. 그 예솔이가 이자람이라는 아티스트라는 걸 나는 ‘책읽아웃’에서 알았다. <오늘도 자람>이라는 책에 관한 얘기여서 팟캐스트를 듣고 책을 읽고, 그 내용 그러니까 그가 살아가는 태도가 너무 멋있어서 반해버렸다. 작년에 대전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야외공연을 보고 이 멋진 걸 공짜로 보다니 안 될 말이다 생각하며 감탄을 했다. 친구와 뮤지컬 <서편제>를 보면서 또 감동하고 드디어 그의 작창 판소리를 예매한 것이다. 이 좋은 걸 엄마, 아빠와 같이 봐야겠다 생각하고 여섯 장을 예매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엄마 아빠께 이자람이 그 옛날의 예솔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빠는 전혀 기억을 못 하신다. 엄마가,
“왜, 그, 당신 친구 피디하던 사람이 줬었지!”
“맞아요.”
라고 답한 건 나였고 아빠는 누구더라 갸웃한다. 아빠의 둔함이라니! 내가 몇 년 전에 쓴 글을 읽고도 그러셨다. ‘아빠가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라는 글을 썼는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관련한 글을 쓰다가 아빠와의 에피소드를 몇 개 떠올려 적었다. 글을 공유시켜 드렸더니 아빠가 잘 썼다고 해주셨다. 그러다가 나중에야 엄마에게 들었다. 니 아빠가, 그게 자기 글인 줄을 모른다고. 엥?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엄마가 재차
“이거 당신 얘기잖아. 딸이 당신 얘길 썼는데 몰라?”
했을 때에야
“그래? 그런가?”
하고 허허 웃으셨단다. 나참. 내가 이런 아빠를 뒀다. 나의 예민함은 다 엄마한테서 온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내 필요를 알아서 채워주는 분이 엄마. 덕분에 엄마는 걱정이 많고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 섬세함이 엄마의 특징이자 나의 특징인 것 같다.
공연은 무척 좋았다. 소리꾼 이자람 님이 고수와 기타리스트를 양편에 두고 혼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창을 하고, 노래를 한다. 내레이션까지 4인의 역할을 찰떡같이 해낸다. 공연을 보는 중간중간에 아들들이 잘 보고 있나, 엄마아빠는 잘 알아들으시나 살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내가 공연에 흠뻑 빠져 즐겼으니 다들 좋았겠거니 하고 80분을 <이방인의 노래> 속에 풍덩 몸 담갔다.
공연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을 하는 길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실은 공연 전에도 차가 꼼짝을 못 해 아이들과 나만 내려서 공연장까지 걸어갔는데, 이날 퀴어문화축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통제도 있었고, 대전에서부터 차를 가지고 간 우리는 예상치 못한 행사에 길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덕분에 공연장에서 식당까지 운전자인 남편을 제외한 우리는 걸어서 움직였다. 청계천을 지나 광화문 디타워까지 가는 길 우리는 퀴어퍼레이드의 한복판을 가로질러야 했다. 작은 도로 하나를 건너려고 했는데 저 멀리서 노랫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차가 한 대 오고 있었고, 나는 너무 안일하게 우리 식구의 속도대로 걸었다. 막상 도로를 건널 때가 되니 차가 지나갈 때였고, 그 차 뒤로 기쁨의 함성과 함께 엄청난 행렬이 이어졌다. 우리 다섯 명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그 행렬이 도로를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아들들에게는 미리 공연 전 퀴어문화축제를 지나치면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건넸더랬다. 사람은 다 저마다 다른 거야. 자기 겉모습하고 자기 진짜 마음하고 다를 수도 있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고, 차별금지법이 필요한데 없어서 저렇게 쓰여 있는 거고, 오늘 하는 행사의 상징적인 색깔은 무엇일까 맞혀보세요 등 아이들이 편견 없이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절거렸다. 그런데 육칠십 대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난감했다. 아빠는 어쩐지 지하철에서부터 이상한 사람이 많더라, 하셨고, 나는 그저 에이, 그렇게 말하면 안 돼, 했다. 한참을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신나는 노래와 춤이 이어졌고 다양한 색깔의 향연이 지나갔다. 외국사람도 정말 많았다. 엄마는 공연도 너무 좋았는데, 지금도 우리가 좋은 구경을 한다고 하셨다. 우리 옆에 서서 우리와 함께 길을 건너길 기다리는 사람의 옷 가슴팍에 붙은 용수철을 보면서 나는 끄덕거렸다. 나부터도 너무 많은 자극을 받고 있는데 십 대 아들들과 지하철 우대권을 지닌 부모님 옆에서 이걸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그저 부채질을 연신 해댔다.
식당에서 우리는 오늘의 감상을 나눴는데 별명이 ‘이잘함’인 이자람이 너무도 잘하더라는 것과 어떻게 소설을 판소리로 만들었을까 대단하다, 하는 얘기를 했다. <노인과 바다>랑 또 멋진 작품들을 판소리로 만들어서 외국에서도 공연을 했대요, 외국 사람들도 너무 멋지다고 극찬을 했대요, 했더니 아빠는 판소리를 어떻게 외국에서 할 수가 있느냐 궁금해하셨다. 나는 우리말로 창을 하고 자막이 나왔을 거예요, 했다. 그러면서 새삼 우리나라가 이자람 보유국이라 너무 자랑스럽다는 생각과, 이 멋진 판소리를 한국어 사용자로서 번역 없이 바로 감상할 수 있는 기쁨에 벅차올랐다. 부모님께 이런 얘길 하지 않았다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기쁨이었다. 음, 아들들의 감상은 생략하겠다.
우리가 본 공연이 ‘이방인’의 노래였던 것이, 이날 우리가 마주친 수많은 인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을까. 작품 속 물라토 라사라의 노래는 자신만의 정체성에 관한 가사였고, 비단 그에게만 의미있는 내용은 아닐 거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찾아가는 일을 우리는 일생을 통해 한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그 다름 가운데 비슷한 점을 찾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다른 점을 통해 세계를 확장시키는 일을 사람들은 또 일생을 통해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그렇다. 자신의 본모습을 찾아가며 성장하고,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며 서로가 성장한다. 그런데 부모가 되고 보니 나와 아이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일이 참 어렵다. 사춘기 아들 앞에서 나는 왠지 억울하고 분하다. 내가 뭘 했다고 저렇게 적개심을 드러내나. 엄마 아빠는 안 그랬을까? 쟤는 왜 아무 말없이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있나. 왜 다른 애들처럼 종알대질 않을까. 비교하자면 끝이 없겠지. 그렇지만 그 다름 가운데에도 엄마에게서, 아빠에게서 받은 것은 있을 터. 나는 부모에게서 온 것을 어떻게 여기고 있나. 아빠의 곱슬머리와 여드름은 언제나 불만투성이이지만, 최근엔 컬이 있는 내 머리칼이 마음에 들었고(하지만 그제 볼륨매직파마를 했다), 아빠가 뭔가를 시작할 때 책을 펼치는 고지식한 태도며 끈기는 내게도 있다. 엄마의 잔걱정이 내게도 한가득 있지만 덕분에 여러 모로 미리 준비하고 챙기는 섬세한 태도며 미적인 감각, 센스 등을 지녔다. 우리 아이들은 내게 어떤 것을 받을까, 받아갔을까. 조심성 있는 태도, 자기주장이 강하지는 않지만 열려 있는 마음, 주위 사람들과 조화롭게 지내는 마음 정도? 남편에게서는 더 좋은 점을 많이 배울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이며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 등. 우리 아들들에게서 나의 좋은 면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자라고 부족한 모습만 지적하는 엄마이고 싶지 않다.
여러 차례 감사를 표하던 엄마는 다음날 더 많은 것을 내주셨다. 아침부터 진수성찬을 받고 반찬이며 스킨답서스 줄기며 애들한테 필요한 물건 등등을 꾹꾹 담아주신 거다. 한 번에 많은 음식을 그것도 맛있게 준비하는 엄마의 음식솜씨는 언제쯤 본받을 수나 있을까? 남편은 많이 아쉽겠지만 나는 그저 엄마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를 본받은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그리고 그 마음씀 덕분에 잘살고 있다고 엄마한테 꼭 전하고 싶다. 엄마 안의 좋은 것을 내 안에서도 잘 키우고 있으며,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다정함은 다 엄마 덕분이라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 모습이 실은 엄마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이다. 내가 이번에 친정부모님께 드린 것은 판소리 공연과 퀴어문화축제의 열기와 <오늘도 자람>을 비롯한 책 몇 권이 다이지만, 엄마아빠에게 받은 것으로 잘살고 있는 내 모습도 이렇게 글로 보여드리고 싶다.
하재영 작가의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는 엄마와 딸의 공동 회고록이다. 읽고 나서 나도 엄마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나를 키우며 엄마로 사느라 자신을 지워나갔을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엄마의 본모습을 읽어드리고 싶다. 오늘은 내 안에 있는 엄마의 좋은 점을 찾아보았다.
@ 하재영,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휴머니스트
@ 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문학동네 ; 제목이 너무도 진리라 생각했다. 내가 딱 그러니까. 그런데 이번에 알았다. 청계천에서 찍은 엄마와 나의 사진 속 미소는 똑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