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이름이 같아서, 그렇지 않아도

by 조이아

이름이 같아서 생긴 일에 대해 물었다.

“유치원 때 최파랑이 있고 저도 있어서, 파랑아, 부르면 둘 다 선생님한테 간 적이 있어요.”

“제 이름이 목사님 아들이랑 같아서요. 걔는 여섯 살인데, 주황이가 공룡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봐요.”

중2 여학생이 눈썹을 여덟 팔자 모양으로 한 채 말했다.

“선생님도 학교 다닐 때 성이 다른 친구가 반에 두 명이나 있던 적이 있어요. 나중에 교사 되고는 이름이 같은 학생을 두세 번 만났는데, 그때마다 꼭 이렇게 말했었어요. 역시 이아는 다 예쁜 것 같아하고.”

이렇게 아이들과 웃으면서 국어 수업을 시작했다. 시험도 끝났는데, 방학이 오늘인데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타박하는 아이들에게 꿋꿋이 준비해 간 수업을 했다. 이럴 때 내가 하는 수업이란 다 책 소개다.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의 <물고기에게 물에 관해 묻는 일>은 제목이 다소 어려운데, 물고기가 자신이 살고 있는 물에 대해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도 자기가 속한 사회의 편견에 대해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걸 표현한다. 소설은 ‘루이스 벨레즈’라는 이름과 관련이 있다. 주인공은 레이먼드라는 십 대 소년으로 가족을 포함하여 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 그나마 딱 한 명 있는 친구는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친구와의 마지막 등교하던 날 레이먼드는 거주하는 건물 계단에서 한 할머니를 만난다.

“루이스 벨레즈를 알아요?”

라 묻는 노인의 눈은 허공을 향해 있고, 레이먼드는 그냥 노인을 지나치지만 방과 후 다시 찾아가 노인의 사연을 듣는다. 앞을 보지 못하는 92세의 노인을 찾아와 장을 봐주고 말벗이 되어주던 자원봉사자 루이스 벨레즈가 며칠 전부터 집엘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락처도 알 수 없고 노인 밀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인기척이 느껴질 때마다 ‘루이스? 루이스 벨레즈를 아세요?’라고 허공에 대고 묻는 일뿐이었다. 며칠 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밀리를 레이먼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같이 장을 보러 가고 함께 루이스의 행방을 궁금해한다. 그러다가 레이먼드는 루이스 벨레즈를 찾기로 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전화를 걸지만 냉랭한 응대만 돌아온다. 할머니를 실망시킬까 봐 아무도 모르게 루이스벨레즈의 주소를 들고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며, 할머니의 루이스를 수소문하는데 그가 만나는 루이스 벨레즈는 다양하다. 차가운 반응도 있고, 무서운 대응도 있지만, 때로는 식사를 대접받거나, 사연을 듣고는 자신도 누군가를 도우며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다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밀리의 루이스에게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게 소설 중반에 밝혀지는데, 선행을 베풀다가 오해를 받고 살해를 당한 것. 학생들에게 그 장면에 대해 말할 때 아이들의 감정적인 반응이 대단했다.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을 때, 루이스 벨레즈‘들’이 밀리와 레이먼드에게 행한 호의에 대해 말하다가 우리나라라면 낯선 이가 찾아왔을 때, 문이라도 열어주겠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우산을 씌워줬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고 말이다. 한 선생님은 아이가 비를 맞으며 가길래 우산을 받쳐주니 차가운 눈빛으로 거리를 두더란 얘길 해주셨는데, 옆에 자녀가 있어서 ‘하양아, 이리 와.’하고 옆에 서게 했더니 아이가 순순히 우산을 같이 쓰고 가더란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는 소설 속 루이스 벨레즈가 당한 살해도 일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너무 했다. 소설은 사건과 관련하여 사람들의 편견을 깨기 어렵다는 쪽으로 흘러가는데, 학생들에게는 줄거리만 간단히 소개를 해주고 궁금하면 읽어보라고 거기까지만 소개해두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름이 같아서 생긴 훈훈한 일화가 있다. 김민섭 작가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속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는 나의 말 대신 유퀴즈에 출연한 두 김민섭 님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김민섭 작가가 해외여행을 해보겠다고 비행기표를 예매해 두었다가 아이의 수술일과 겹쳐 티켓을 포기한 일이 있었단다. 환불을 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적어서 양도를 하겠다 마음먹고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남자로 이름은 김민섭, 영문 이름도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았다. 영문 이름도 같고, 여행일자에 여유도 있어야 하는 행운의 인물이 작가님 옆의 김민섭 님. 전시회 준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선배로부터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들었으나, 일하고 있는 중이라 어렵다는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마침 그날 회사 대표님과 식사를 하게 되었고, 이런 일이 있다고 얘기하던 중에 ‘갔다 와’하는 쿨한 허락을 받게 된 것! 그리하여 두 김민섭 님이 연결되었는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프로젝트를 지켜보던 한 분이 숙박비를 지원하고 싶다고 연락을 하고, 또 어떤 분은 후쿠오카에서 쓸 수 있는 교통패스를, 또 어떤 분은 와이파이를 제공하겠다 하고, 심지어는 기업에서 여행을 후원하겠다, 김민섭 님의 전시를 후원하겠다는 연락을 주었다는 것이다. 김민섭 님은 많은 이들의 후의에 얼떨떨하면서도 그 고마운 마음을 나에게서 끊기게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름이 같은 루이스 벨레즈들이 보여준 호의와,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에 일조한 분들의 호의를 들여다보면 이분들은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행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자마자 실행한 사람들 같다.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거 아닌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다면 크게 기뻐하는 게 사람 아닐까? 기부계의 큰손은 될 수 없어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선행이라면 기꺼이 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의 옛(첫 학교 때 읽었으니 옛날 거 맞다.) 소설 <트레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트레버라는 어린이가 생각해 낸 학교 과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발상에 관한 소설로,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고, 선행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푼다면 우리가 속한 사회가 달라질 거라는 아이디어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이번에 <물고기에게 물에 관해 묻는 일>을 읽고 찾아보니 작가가 현재 ‘Pay it forward’라는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소설을 읽고 혹자는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하겠지만,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좋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과, 우리나라에서도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와 같은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나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싶다.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선행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물었다. 수줍은 아이들은 그저 옆에 있는 친구에게 칭찬을 하겠다거나 집안일을 돕겠다거나 하는 얘기들을 했지만, 나는 그들이 잠시라도 선행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꿈꿔봤으면 하고 바란다. 세상에 겁내지 않도록, 주위를 믿고 걸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내딛는 발걸음들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수상한 세상이다. 거대한 시스템 이전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라도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다면 좋겠다. 살 만한 세상이라고. 꼭 이름이 같지 않아도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물고기에게 물에 관해 묻는 일>, 뒤란

@ 김민섭,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창비교육

@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트레버>, 뜨인돌


@ 제목의 사진은, 지난주에 있었던 수학체험전에서 본 아름다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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