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도 괜찮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내 몸을 편안히 데리고 살기

by 조이아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북토크를 행선지로 KTX에 몸을 실었다.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엽서와 펜을 꺼냈다. 수신인은 첫 학교 선배 선생님 두 분. 나는 친구와 가기로 하고 진작에 티켓을 사두었는데, 선배님이 나를 떠올리며 같이 가자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다. 내가 배신을 한 셈이니 말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지는 못하지만 잠시 뵐 수 있는 반가운 분들을 위해 엽서를 써 내려갔다. 이 선생님께는 분홍빛 하늘과 초록색 산 그림이 있는 엽서에 써야지. 이분께는 마음의 평화를 주는 초록과 파랑이 가득한 엽서를 드려야겠다. 늘 함께하는 친구에게도 한 장,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초록이 눈에 띄는 엽서를 골랐다. 비가 많이 내려서 출발 전부터 연착이더니, 연착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엽서를 다 쓰고 나니 왠지 배가 살살 아픈 것 같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다. 어제 큰애가 잠이 안 온다며 내 옆에 누워 잤는데, 그 덕에 잠을 설쳐 그런가 아침부터 두통이 있었다. 뭐지, 이 느낌은? 지난번 부산 여행이 생각났다.


아들 둘이랑 부산행 KTX를 탔을 때였다. 아들 둘을 저쪽에 앉히고 나는 다른 쪽 창가에 앉았다. 배가 살살 아프고 어지럽고 견디기가 힘들었다. 옆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엘 갔다. 아침부터 스콘을 굽는다고 부산하게 굴어 그런가? 아침에 생리혈을 많이 쏟아내서 힘든 걸까? 대전역에서 주차할 데가 없어 차 시간을 바꾸고 신경을 팍 써서 그런가? 좌석에 돌아와 앉았는데 얼굴이며 목이며 몸에서 식은땀이 난다. 다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갔다가 먹은 걸 확인하고, 출입문 앞 보조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부산까지는 더 가야 하고, 이따 밤에도 열차를 타고 올 텐데 과연 올 수 있을까, 우리 애들은 저 안에서 내 걱정을 하는 건 아닌가.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가 옆좌석 사람이 내린 걸 보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도 신경이 쓰이는 나는 혼자가 되니 마음이 나아졌고, 몸도 차차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부산에 도착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아 즐거이 먹고 다녔다.


서울로 가는 KTX에서 몸의 이상을 느끼며 부산 갔을 때의 경험을 떠올렸다. 그때도 나아졌으니 괜찮을 거야 속으로 되뇌며 또 내 몸을 출입문 앞 통로 보조석에 앉혔다. 갑갑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부산 때처럼 생리 중이라 그런가, <완경선언>에서 읽었던 완경이행기라 이러는 걸까 별 생각을 다했다. 오늘 만나는 친구는 늘 만나오는 친구인데, 내 마음이 불편한 데가 있나. 기다릴 친구도 걱정되고, 바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먹을 수는 있을까, 밤에는 아홉 시로 예매를 해두었는데 그때까지 몸이 안 좋으면 어쩌지, 다음 달에 애들하고 대학로 연극 보려고 예매해 두었는데, 그땐 KTX를 어떻게 타지, 혼자 해외로 여행할 일을 상상했는데 그건 꿈도 못 꾸겠구나, 내 걱정은 끝을 몰랐다. '예전에도 그랬으니 오늘도 괜찮을 거야'라는 초반의 생각은 그때도 그랬는데, 오늘 또 왜 이러는 거지? 내 몸이 크게 문제가 있나 하는 걱정으로 이어졌다.

이십 분 정도 늦게 도착해서는 약속장소인 합정역을 향했다. 쉬지 않고 걸어 전철을 타고 환승을 하면서 친구에게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친구가 합정역 8번 출구에 약국이 있으니, 거기서 약을 사 먹자고 했다. 내 몸의 이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나는 머리를 굴렸다. 검색을 해보니 귀의 이상으로 인한 어지럼증일 수도 있다고 했고, 다른 결과로는 멀미라고도 나왔다. 멀미라고? 멀미!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고, 배도 아프고 딱이었다. 그러네, 나 전에도 기차에서 이랬구나. 기차 타고 멀미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게 나구나.

약속장소에 다다라 친구의 얼굴을 보고 약국으로 향했다.

"멀미 같아요."

약을 그 자리에서 먹고 어딜 가지도 못하고 역사 안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반가운 친구 앞에서 나는 허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기대어 앉아 몸을 추슬렀다. 바로 앞에 교보문고가 있어서 친구는 책을 구경하고 나는 화장실에 좀 게워냈다.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나 혼자서는 약국에 갈 생각도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멀미의 실체를 모른 채로 내 몸은 왜 이런가 걱정만 했을 수도 있다. 지난번에도, 오늘 겪으면서도, 멀미일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 가면서 힘들었다고 얘기했을 때 아는 언니가

"한의원에 한번 가봐. 보약 좀 먹어야겠다."

라고 했기에 기력이 딸리는가 했다. 노화를 연구하는 남편은 - 또 당연히 - 나이 들어서 그럴 거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그저 걱정만 했을 뿐이었다. 앞으로 여행을 못하면 어쩌지, 하면서. 그런데 그저 멀미를 한 거였다니 메슥거리던 그 순간과는 반대로 너무도 산뜻하고 명쾌한 기분이다. 가기로 했던 비건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르고 나는 벽에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시간이 흐르며 대화에 점점 집중할 수 있었고, 컨디션은 나아졌다.


오늘 북토크는 김하나 작가의 진행으로 김혼비, 황선우 작가를 만나는 자리였다. 책 제목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가 무색하게도 나는 KTX 안에서 무리하게 엽서를 세 장이나 썼다. 그것도 폭우로 느리게 가는 열차 안에서 말이다. 그 덕에 멀미를 했나 보다. 반가운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엽서를 드리고 자리에 앉아 북토크를 즐겼다. 오늘의 북토크는 진정한 북 '콘서트'로 목탁키스트 김혼비 작가와 리코더 연주자 황선우 작가, 우쿨렐레 연주자 김하나 작가의 하모니를 들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과 즐겁고 의미 있는 대화에 내 영혼을 맡겼더니 마음은 흐뭇했고, 점심을 거의 먹지 못한 내 배는 고파왔다. 아침의 멀미는 내리는 비와 함께 싹 씻겨 내려갔다.

저녁에는 문학살롱 초고에서 칵테일을 마셨다. 문학살롱답게 읽고 싶은 신간도 있고, 칵테일과 책을 같이 내는 메뉴도 있었다. 학교 얘기, 아이 얘기와 더불어 책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최근에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을 읽었는데, 자기 개발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이라는 게 결국은 걱정 없이 사는 법을 주제로 다뤄서 놀라기도 했고 의미 있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말하다가 스스로가 한 방 먹은 듯했는데, 그렇게 잘 읽었다는 책을 나는 살아내질 못하고 아까도 걱정을 산더미나 했었다는 걸 말하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왜 이러지? ' 했던 KTX 안에서 내가 했던 건 걱정밖에 없었다. 솜사탕 커지듯 눈 깜짝할 새에 커지는 걱정의 크기를, 친구 덕분에 꾹꾹 뭉쳐서 줄일 수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그저 멀미로구나,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부산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도 나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두 쪽의 글을 마구 써댔다. 대전역에서의 경험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랬다. 만차였던 주차장 외길을 잘못 들어갔던 것이다. 차표를 어떻게 하나, 한 시간 후 출발하는 차를 얼른 예매해 놓고 지금 차는 취소를 할까 말까, 다시 뒤돌아 나갈 수나 있나. 부산 여행은 포기해야 되나 등등의 걱정을 하며 넋이 나간 채로 창문을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주들이 친절하게도, ‘자리 없어요’를 알려주셨고, 나는 내 차를 어떻게 돌려 나가나 하던 차였다. 망연자실한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혹은 자기 차가 나가려면 내 차가 비켜줘야 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한 분의 호기로운 제안에 그분 자리에 주차를 하고 예정된 시간에 열차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대전역에서 받은 큰 호의를 주체할 수 없어서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나의 불안과 감사를 적어내려 갔다. 다시 읽어보아도 급박하다. 이렇게 썼으니 멀미가 났지, 당연하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는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 이옥선 여사님이 <빅토리 노트>에서 노자의 사상을 이용해 말씀하신 문구다. 황선우 작가는 ‘수평 자세로 가마 누워 보는 세상’이라는 꼭지에서 그 문구와 관련한 이야기를 썼다. 지나치게 열심을 다하지 말고 여유롭게 사는 일의 미덕에 대해서라면, 이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여름 한담 편에서도 들었다. 여름철에는 수평 자세로 여유를 즐기자, 너무 자신을 볶아치지 말자는 ‘No more 볶아치즘’ 정신은, 경상도 사투리가 구사된 다음 문장과 세트다.

“가마~~~ 있으므 마, 한개도 안 듭다.”

이번 북콘서트에서는 관객과 진행자들이 함께 저 문장을 함께 따라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혼비 작가님의 목탁 소리와 더불어 저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하면서 이 여름, 가만히 있는 것의 중요성을 나는 절절히 실감했다.


가만히 있는 게 나는 잘 안 된다. 방학을 하자마자, 매일이 뭔가로 부산했다. 날이 맑아서 화장실 청소를 했고, 비가 와서 집에 있게 되면 책장을 정리했고, 이전 학교 선생님을 만나고,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가고, 빙수라도 먹으러 나가고 그런다. 학교 일로는 독서마라톤을 하고 시 필사하기를 한다. 두께 있는 책의 독서모임이 있을 예정이고, 책을 편집해 볼 요량이고 매일 오늘은 뭘 할까로 움직인다. 열차 안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그 시간을 또 활용해 보겠다고 뭔가를 쓰고 했다. 그치만 폭염 안내문자를 매일 받는 이 여름, 조금 천천히 가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본다. 내 몸을 데리고 살아야 되니까. 그리하여 수평자세가 내 여름의 기본자세가 되고(여전히 나는 각 잡고 앉지만),

“엄마, 웬일로 누워있어요?”

하는 물음을 받고 말겠다, 고 쓰면서도 어려우리라는 걸 내가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를 되뇌어야겠다. 동동거리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고 나를 다독일 때마다 이 작은 책을 쓰다듬겠다.

+ 느읒게 일어난 아들한테 글을 보여줬더니 두 마디 했다.

“길다.”

응, 자꾸 길어지네.

“근데 최선을 다하면 죽어요?”


책을 추천할 때마다 선생님이, 아는 언니가

“애들한텐 보여주지 말아야겠다.”

하셨는데 어쩌다 아들한테 글 제목까지 들켜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학생은, 최선을 다해야 돼.”

하고 또 모순적인 말을 했다. 나의 모순을 어찌해야 할까.


@ 황선우, 김혼비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문학동네

@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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