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해보는, 끝내주는 인생
책 만드는 속도는 내 마음 같지 않다. 주위의 다정한 지인들에게 책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해 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없었다면 내가 언제 책을 쓴다고 했던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갔을 거다. 그저 소망만 품은 채.
써놓은 글이 있어서 금세 만들 줄 알았다. 2월에 책 쓰기 연수를 들었다. 속성이었지만 함께 수강한 선생님들과 글을 한 편씩 써서 책 한 권을 받았다. 강사 선생님들의 수고로 책을 만들어주신 거라 거저 공동저자가 될 수 있었다.
올해 독서동아리 학생들과 책을 만들기로 했으니, 나부터 책 한 권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브런치에 그동안 써둔 글의 제목을 ‘워크플로위’에 적으면서 분류했다. 아들 키우는 이야기, 중학생들 이야기, 국어수업 이야기, 엄마나 교사 말고 나로 즐기는 이야기, 독서모임이나 책 읽은 리뷰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어떤 주제로 책 한 권을 꾸릴까 고민했다. 아들을 키우는 중학교 교사가 나을까? 글 속 아들들은 몇 년 간 성장하여 귀여운 어린이였다가 내 맘 같지 않은 십 대 청소년이 되었다. 황영미 작가님의 <사춘기라는 우주>를 읽으면서, 사춘기 청소년에 대한 긍정적인 작가님 마음에 많이 공감을 하면서도, 작가님 아이들은 너무 바르고 반듯해 보여서 ‘에계‘ 했던 게 생각났다. 우리 집 아들들도 너무도 순둥이들이라 공감을 못 얻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한 글을 모아보자고 글을 추렸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도 허술하고 중언부언인 게 이제야 보였다. 인쇄를 맡기기 직전까지 수정할 곳은 자꾸만 있었다.
일단 글을 모아놓고 어떻게 배치할까 고민했다. 글 한 편의 구성과 책 한 권의 구성은 달랐다. 코로나 시기도 겪었고, 글 쓰면서 학교도 한번 옮겼으니 시간 순서대로 두었다가 버찌책방 서점지기님의 조언을 듣고 구성을 바꿨다. 일 하면서 느낀 바와 나에 대한 글을 1부로, 좋아하는 책으로 수업한 얘기를 2부로, 중학생의 귀엽고 엉뚱한 특성에 대해 3부로 꾸렸다.
각 장의 제목을 정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책 제목에 대해서도 한참을 애 태웠다. 봄부터 여름까지 내 일기장 곳곳에는 책에 대한 아이디어, 특히 제목에 대한 고민이 여기저기 쓰여있다. ‘음속어’라고 학생이 수행평가에 써둔 ‘음 소거’의 잘못된 표현에 뒤늦게 꽂혀(작년에 발견한 단어인데 최근에 생각났다.) ‘음속어 에세이’를 후보로 두었다. 수업 시간에 가끔 초성 빙고를 하는데 ‘ㅇㅅㅇ ㅇㅅㅇ’라는 초성이 예뻐서 특이한 제목을 붙여볼까 할 때도 있었다. 중학생들과 지내면서 내 안의 모순을 발견할 때도 있다는 글에 힘입어 ‘내 안의 모순과 춤추기’로 제목을 붙였다가 내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주저했다. 결국 ‘우주를 누비며 다정을 전하는 중’이라고 결정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3월의 첫 수업에 외는 안도현의 ‘우주’라는 시와 더불어 ‘우리가 주인이 되는 국어시간’의 줄임말인 ‘우주국어’가 내 과목 ‘국어 B’의 별칭이다. 학생들의 우주를 존중하겠다는 의미도 있어서 중학생의 ‘우주를 누비며‘라 썼다. 또 내가 하는 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 다정‘을 넣었고, 아무래도 나는 다정을 건네는 교사이고 싶어서 ’다정을 전하는 중’이라고 최종적으로 정했다. 너무 긴 것 같긴 하지만 내 나름대로 ‘우주 다정’이라 줄이며 밀어붙였다.
제목을 정하고, 책의 목차를 구성하고, 편집 작업을 하고, 글꼴을 정하고, 이것 말고도 할 게 많았다.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표지 디자인. ‘캔바’로 두 가지 디자인을 해보았는데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넣었다. 최은영 작가님의 이번 소설 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런 사진을 넣고 싶었지만(<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이며 김화진 작가님의 <나주에 대하여>를 떠올리는 표지였다.) 내게는 그런 멋진 인물 사진이 없다. 대신 겉표지를 벗기면 색이 고운 체크무늬 표지가 나타나는데 그것에 마음을 빼앗겨 좋아하는 색으로 표지 아랫부분을 체크로 해보았다. 그밖에 자유로운 추상 도형을 여기저기 넣어보고 했는데, 제목을 ‘우주 다정’으로 하고 보니 어울리지 않았다. 좋아하는 색을 배경으로 넣고 우주에 관련된 단순한 드로잉 요소를 추가했다. ‘다정’하고도 어울리는 귀여운 드로잉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을 쓰는 것은, 글 전체를 아우르는 일이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가는 글에는 이 책을 만드는 일에 지지를 보여준 분들께 전하는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작업을 여름 방학 내내 했다. 개학 전에는 책을 만날 줄 알았으나 수정은 거듭되었고 이번 주 최종 업로드를 마쳤다.
최근 이슬아 작가님의 <끝내주는 인생>을 읽었다. 진솔하고 사랑스러운 에세이(그래서 에세이를 내겠다는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였는데 좋은 부분이 많아서 태그를 여기저기 붙여두었지만 딱 두 군데만 언급하겠다. 1. 작가님과 위고출판사 편집자님들 에피소드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언저리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작가도 마찬가지라는 말. 기다리고 기대하는 분들이 없었다면 글이며 책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부분에서 왜 이렇게 공감이 되던지! 처음으로 책 만드는 이의 정체성을 느껴보았다고나 할까. 2. 그에 앞서 친구들이 나를 긍정해 준다는 부분을 작가님은 이렇게 썼다. 중학생 때 ‘자의식 지옥’을 경험했다고. 내가 책에서 언급한, 중학생의 특징하고도 비슷하며 나의 중학생 시절도 그러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던 때가 딱 중학생 때였는데, 그런 내용이 나와서 반가웠던 거다. 그런데 작가님과 옆에 있는 친구들이 ‘자의식 지옥’에 빠져 허우적대던 자신을 ‘자의식 천국’으로 데려다준다고 쓰셨다. 맞다, 나 자신을 긍정하면서 내가 나를 지옥에서 빼내기도 하지만 주변의 다정한 이들이 어느새 지옥에 가있는 나를 다시 천국에 데려다 놓기도 한다. 이번에도 나는 그 경험을 했다. 책을 내고 나면 내 흠이 더 돋보이지는 않을까? 괜히 하겠다고 했나? 학생들이 자기 이야기 있다고 타박하면 어쩌지? 갖가지 고민이 따라왔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책은 언제 나오느냐 책 안부를 전하고 궁금해하며 응원해 주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책 만들기는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오늘 책 택배가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내 책을 만나기 전의 설렘을 이렇게 길게 써본다. 실망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아쉽기도 하겠지만 일단은 많이 기뻐해야지. 여기저기 소문도 내고. 제가 쓰고 만든 책이 있습니다!
@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디플롯
@ 김지선, <커피 한 잔 값으로 독립출판 책만들기>, <커피 한 잔 값으로 독립출판 책 디자인>, 새벽감성
책 상자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