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파리에 가나?
어쩌다가 파리에 가게 되었을까. 늘 영국에 간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기술연구를 이유로 1년 간 해외 살이를 계획하고 있던 것이다.
남편의 입장부터 정리하자면 이렇다. 대학원 때 사수였고 현재는 캠*리지 교수님이 되신 박사님께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거지. 게다가 그쪽 실험실은 폐를 연구한다는데, 단백질 및 항노화를 연구하는 우리 박사님은 거기서 할 게 없지. 1년도 넘게 거기로 가겠다고 노래하더니, 막상 그쪽과 연락해보니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자기도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것 같다. 반면 영국을 기대하던 나의 입장은 이렇다. 영국은 영어를 쓰는데, 거기서 1년을 살게 되면 우리 아이들이 영어에 노출되므로 영어 교육에 도움이 될 거다. 나는 해외 생활이면 다 새롭고 좋다. 그런데 내가 영국이 별로였던 이유는 ‘캠브리지’가 대학 도시의 젊음 보다는 정체된 분위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과, 영국의 우울한 날씨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국보다는 유럽이라고 우리 부부는 생각해왔으므로, 그다음은 유럽의 다른 국가가 후보가 되었다. 영국 빼고는 다 영어를 안 쓴다. 후보지는 독일 뮌헨에서는 연락 없었고. 프랑스 파리의 파스퇴르는 거절당했고, 스웨덴에서도 연락 없었고, 독일 소도시는 고민하다 연락도 안 했다. 그러다가 파리를 다시 떠올린 동거인. 파리 제 6대학. 피에르 마리 퀴리 유니버시티. 말로만 듣던 파리의 국립대학이라니. 시떼 섬과 엄청 가까워서 조금 걸으면 노트르담 성당이란다. 게다가 결혼 10주년에 파리를 가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하다나. 이렇게 로맨틱 가이라는 걸 몰랐네. 어쨌거나 이런 데에서 일을 할 수 있다니 우리 남편, 대단하다.
막상 파리로 간다고 하니까 믿어지지가 않고. 그게 믿어지지가 않는 건지, 믿고 싶지 않은 건지 얼떨떨한 채로 며칠을 보낸 것 같다. 학기말, 연말 업무 처리하느라 제대로 고민도 못 했다. 방학을 하고보니 실감이 난다기 보다는, 실감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지.
일단은 엄마한테 파리로 갈 것 같다고 얘기했다. 1월 초 보충 수업 때문에 아이들을 봐주시러 오신 엄마께 어느 오후에 타로카드로 신년 운세를 봐 드리겠다고 봐 드리고. 파리 이야기를 하며 나의 해외 생활에 대해 세 장의 카드를 골랐다. 9 wands – 3 였나 2 wands (아, 기억도 안 난다.) - 13 Death가 나왔다. 죽음이로군. 당연한 결과다. 힘들겠지. 그러나 부활이나 재생이라니, 새로운 탄생이라니 기대가 된다.
그렇게 일주일 보충수업을 한다고 학교를 다니다가 토요일에야 정신이 들었다. 불어를 배워야겠다고 말이다. 대전 불어, 프랑스어를 검색어로 넣고 알아봤다. 두 군데가 나왔는데 주말반도 있었다. 프랑스문화원과 르*드어학원. 1월초라 딱 그날부터가 수업 시작일이었다. 하루를 빼먹었다고 생각하니 일요일반이 있는 르*드어학원에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학원에 전화했더니 바쁘다고 다시 전화 준다더니 하루 종일 연락이 없다. 이 글을 쓰는 16일까지도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영 별로다. 저녁 때 그냥 이렇게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교원연수원의 원격연수 중에 불어 강의가 있나 알아봤더니 ‘티쳐*’에 딱 하나가 있었다. 당장 등록해서 수업도 들어보았다. 남편이 옆에서 보면서, 알아본지 하루만에 수업을 듣냐고, 너무 적극적인 거 아니냐며 응원해(비웃어?) 주었다.
일요일 오전, 혼자 영화 보러 가려고 <라라랜드>를 예매해놓고 있는데 은*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시간이 있다는 언니와 같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만나자 마자 파리엘 갈 것 같다고 얘기를 했다. (하면서 보니 자랑? 자랑이지 뭐.) 공식적으로 처음 얘기하게 되는 것 같았다. ‘남편이랑 신혼여행으로 갔었는데 그 때 10주년 되면 다시 오기로 했는데, 올해가 그 10주년이다’부터 시작해서 그동안의 파리담을 얘기하는데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도 잊고 지냈던 파리 사랑을 말이다. 내가 얼마나 파리를 좋아했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이 났던 것이다. (참, 은*언니는 외고 불어과 담임선생님. 알리앙스프랑세즈를 추천해주셨다!)
세 번을 갔었네, 파리에. 처음엔 *주랑 10개국 배낭여행으로. 그땐 *주와의 3주 중에서, *주가 공부해온 유럽 이야기 듣기가 지겨워질 무렵에 파리에 갔던 것 같다.(난 왜그리 무작정 여행을 간걸까. 기말고사 끝나자마자 출발하면서 너무 모르는 채로 갔다.ㅜㅜ) 둘이 서로에게 지쳐갈 무렵 간 오르세에서 각자 구경하자고 하고는 바로 뒤돌아서서 미술관을 돌았다. 잠시 그렇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는 다시금 반가운 마음이었는데. 그동안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둘이 다시 같이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여행은 나에게 국문과 수업을 듣게 했지. *주에게 평생 감사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이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그리고 프랑스로 20일간의 여행. 가장 좋았던 건 이번에는 준비부터 주체가 되어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정이에게 고맙게도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한 것 같다. 우리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파리에서 일주일여를 있을 수 있어서 가보고 싶은 데 다 가보고 일없이 거닐고 참 좋았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친구 덕분에 세느 강변에서 와인에 치즈, 과자를 펼쳐놓고 넷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밤을 보낸 것도 참 좋은 기억이다. 와인 한 병을 더 사오면서 시청 야경도 보고, 세느 강변에 자리 잡은 파리지앵 혹은 여행객들의 분위기에도 취할 수 있었고 말이다. 이 여행에서는 준비하면서부터 다이어리 하나를 쓰기 시작했는데, 카페, 호텔, 기차에서 일기 쓰면서 한 권의 수첩을 다 채워왔으니 참 마음 편히 한가롭게 다녔던 것 같다. 지금 읽어도 재미있고 뿌듯하다. (아, 그때 정수복 교수님을 아를에서 만났었는데, 두 차례를 우연히 만나고 함께 밤의 론강을 거닐며 이야기 나눴더랬다. 교수님 부인께도 잠깐 인사드리고. 우리가 만났던 그곳의 이야기가 그분의 저서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 나와서 정말 반가웠는데. 물론 우리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그 부분을 몇번이나 읽었는데요!)
세 번째 여행으로는 신혼여행으로 파리만 5일. 오르세, 퐁퓌두,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고. 세느강 유람선도 탔다. 매일 한 호텔에서 아침 먹고 파리의 아침을 시작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남편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생 샤펠 성당의 보석 같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고 나오다가 방명록에 10년 뒤에도 오자고 남편이 썼었는데. 그 약속을 이렇게 지켜주는구나. 이제는 넷이 되어 떠나는 파리. 설렘도 많지만 걱정도 많다.
이렇게 파리를 사랑하던 내가 10년을 그곳을 잊고 지내다가, 1년을 살기 위해 준비하게 된 거다.
그럼 나는 파리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아이들 학교에 보내는데 얼마나 눈물이 많이 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래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권이라면 더욱 열심히 하라고 부추겼을 것 같지만, 불어에 대해서라면 좀더 여유로울 것 같다.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고, 경험이라 생각하라며 다독여야지.
아 이들 학교 일에 관해 내가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싶다. 말도 잘 알아듣고,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나대로 불어 학원을 다니며 사람들 - 주로 프랑스인이 아닌 외국인이겠지? -과 사귀고, 쇼핑 언어부터 마스터하겠다. 프랑스 아줌마 카페에 정보도 많이 얻고 인맥도 쌓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게 되려나? 아이들에게도 이 날이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박사님은 스트레스 없이 일 할 수 있을까? 아니지. 신경 쓰이는 게 많겠지?
우리 가족 모두 탈 없이, 무사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잘 기록하면서 지내겠다!
201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