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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Mar 17. 2024

이름, 사람들이 먼저 보는 나

사람책으로 자기소개를 하다가 쓴 소설

3월, 자기소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다.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걸까. 이름부터가 지긋지긋하다. 어렸을 때 친구들은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다. 어눌한 어린이들의 발음. ‘서누라?’ 덕분에 ‘야’라고 불렸다. 초등학생이 되고부터는 이름이 곧 놀림거리가 되었다. 이름 뒤에 다른 말이 붙었으니 별명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말하고 싶지도 않은 내 이름은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국어 선생님 빼고는.

“선을? 이름 정말 예쁘다.”

자기소개를 사람책으로 한단다. 내가 책이라면 어떤 내용의 책인지, 제목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써보란다. 뻔하지 않아서 좋았고 그래서 어려웠다. 슬쩍 보니 나 말고 다른 애들도 멍하니 쓰질 못한다.



기존의 책 한 권과 선생님이 냈다는 책을 예로 들어줬으나 그래도 막상 내 책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특성이나 경험을 써보라고? 몰라,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이렇게 쓸 수 있지.


1. 엄마 아빠의 욕심으로 이름 붙여진 아이

2. 친구들에게는 이름 불리지 못하는 아이

3. 놀림감으로 자기 이름을 혐오하게 된 아이

4. 성 빼고 서늘한 애라는 소문을 달고 다니는 아이


이렇게 쓰면 내가 싫어하는 내 이름이 드러나서 안 되겠다. 수정테이프로 다 없앴다. 내 특성이라, 뭐가 있을까. 가족 얘기를 안 하고 자기를 드러낼 수 없다면 가족 얘길 써도 된단다. 미쳤나. 우리 집에 아빠가 없다는 걸, 엄마 성격이 지랄 같다는 걸 어떻게 쓰냐고. 오빠가 중학생일 때 엄마가 무선 공유기를 벽에 던져 우리 집에선 엄마 노트북 아니면 세상과 소통이 어렵다. 그 흔한 텔레비전도 없어서 나는 친구들이랑 공통 관심사가 없다. 오빠는 기숙학교엘 가버렸고 나는 혼자 엄마를 대해야 한다. 엄마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 아니면 독서. 이과 엄마는 책 읽는 모습에 약하거든. 아무래도 공부보다는 소설이 집중하기 좋아서 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 그것도 아주 두꺼운 소설만. 그래야 엄마의 세계로부터 금세 단절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책 읽는 애들이 있을까? 1번 완성.

2번은 아날로그인 어떨까. 우리 집에서 세상과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노트북은 물론 한 대다. 이공계인 엄마가 컴 쪽으로 잘 알아서 오빠는 온라인숙제를 하다가 몰래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족족 걸렸다. 어떻게 가능한지 몰라도 그랬다. 나는 일찌감치 유튜브의 세계는 내 것이 아니라 단념했고 여자애들이 주고받는다는 디엠 같은 것도 모른다. 단톡방 확인도 시간 맞춰한다. 엄마는 스티브 잡스도 아니면서 우리 남매를 디지털 세계에 근접하지 못하도록 했다. 남매 이름을 만든 꼬락서니가, 언제까지고 우리 인생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서 나는 부모님이 싫다. 오빠는 지 이름대로 개겼지만 나는 그저 조용히 혐오한다. 오빠 이름을 밝히자면 대한이다. 최대한.

3번엔 뭘 쓰지. 덕질 대상도 없고 외톨이라 쓰기에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3번까지만 써도 좋고, 마지막 목차는 올해 이루고 싶은 일로 써도 좋아요. 여러분의 책은 여러분이 완성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은 오빠처럼 집에서 독립하는 건데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럼 어떡해, 나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버릴 테다.


1. 자발적 독서가

2. 아날로그인

3. 나만의 이야기를 쓰겠다.


목차를 써놓고 보니 그럴듯하다. 제목은 뭐라고 짓지. 고민하고 있는데 국어쌤이 들여다본다.

“어머, 선을이 혹시 동아리 뭐 들 거야? 우리 동아리 어때?”

그러더니 교실 앞으로 가 말한다.

“여러분, 선생님이 책 쓰기 동아리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 중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들어와서 자기 글도 쓰고 친구 글도 읽고, 책 만들기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벌써 이반에 딱 어울리는 친구가 있네. 선을이는 꼭 같이 하자.”

뭐래. 내 얘기를 다른 애들이 읽는다고? 그거 곤란하지. 아빠 엄마, 사람들 때문에 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한데 내 얘길 읽게 줘? 처음 만날 때부터 사람들은 그런다.

“이름이 뭐라고? 최선을? 우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구나. 지켜볼게. “

그 말들과 시선들이 불편해서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게 너무 싫다. 나를 볼 때마다

“최선을! 다하자!”

놀리는 애들도 싫었다. 그래서 친구가 없는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는 그렇게 놀리질 않고 대신에 이름 앞에 ‘서늘한‘을 넣어 부른다. 뭐 싫지는 않다. 그럴 때마다 냉랭한 눈빛을 보내고 나면 더 이상 내 앞에 알짱거리지 않으니까. 아이씨, 제목은 뭐라 붙이지.


제목: 책 쓰기 동아리는 됐고

1.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독서가

2. 나 홀로 아날로그인

3. 나만의 이야기를 써볼까 했는데


이렇게 써놨더니 국어쌤이 흘긋 보고 지나간다. 됐다.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궁금하지만 꾹 참고 쳐다보지 않았다. 다음 시간에는 모둠에서 각자의 책을 돌려 읽고 질문을 만들어 대화한단다. 수업 일기를 쓰고 종이 쳐서 엎드리려는데 쌤이 부른다.

“선을아, 이리 와 봐. “

뭐지?

“옆반에 벌써 동아리 가입하겠단 애가 있는데 선을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

뭐래.

“네?”

“아니, 걔도 책 읽기, 쓰기에 관심이 많은데 삐딱하더라고.”

엥?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

“내가 활동 마지막에 그랬거든. 마지막 목차의 다짐은 쓰기만 하는 게 아니고 살아내라는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라지만,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습니다. 올해 여러분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여러분만이 알 수 있고, 여러분만이 할 수 있어요. 그래놓고 나 방금 멋있는 말 하지 않았니? 나 잊어버리지 않게 좀 써 놔 봐, 했더니 그반에서 걔가 수업 끝나고 나한테 와서 이러는 거야. ‘선생님, 아까 그 말 즉석에서 한 거예요? 선생님 수준이 높은 것 같지 않아서 그러니까 그 동아리 가서 쌤 하는 것도 보고, 해 볼게요’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걔 궁금하지 않아? 이름은 다해야. 선을이 이름을 보고 딱 생각난 친구지.”

그러면서 자기 공책에 쓰인 걔 이름을 보여준다.

“둘이 잘 어울릴 것 같아.”

나는 내 이름을 싫어하지만 이름에 어떤 운명 같은 게 있을 거라 믿는다. 그런데 그 애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안다해. 최선을 안 다해, 딱 내 친구일 거란 느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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