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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May 10. 2024

중학생들의 귀여운 어휘력(혹은 맞춤법 파괴력)

한글 공부와 ‘언어의 높이뛰기‘

"너 좀 고지식하다."

(겸손하게)"아이, 선생님. 제가 그 정도로 지식이 많진 않아요."

단어의 뜻을 어림짐작하거나,

"선생님, 복원선생님 어디 계세요?"

"무슨 선생님? 복원 선생님? 보권? 보건샘?"

자기 멋대로 발음을 바꾸거나,

‘나의 장례희망은 의사입니다.’

라고 무서운 단어를 만들어 글을 써내는 중학생들. 단어를 자기가 아는 대로 쓰는 아이들이 많다. 모르면 자기 나름대로 상상해서 쓴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엊그제 수업하다가 급식을 써놓은 칠판 한구석을 보고 웃었다.

작곡밥을 먹으면 작곡을 잘하게 되는 걸까? (섞박지에 쌍기역이 하나 더 있는 것 정도는 이해해 주자.)


<언어의 높이뛰기>를 읽었다. 언어학자 ‘신지영 교수의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와 같이 잘못 쓰는 존댓말,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쓰는 언론사, 유권‘자’에게 뽑힌 이인데! 통계 자료를 보면서 그렇다면 기자가 아니라 ‘기인’인가 웃었다. 결혼 후 부부가 상대 가족을 지칭하는 단어는 매우 다르고 정말 화가 나는 부분인데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나 격렬하게 수긍하면서 읽었다. 많은 이들이 읽고 자신의 언어생활을 점검했으면, 아니 언론에 쓰이는 언어라도 바르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저자의 이전 책은 <언어의 줄다리기>인데 부제는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가 부제인 훌륭한 책이다. 제목도 잘 붙였다. 예를 들어 ‘미혼’과 ‘비혼’이라는 말을 겨루어 ‘줄다리기’라는 비유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사상을 점검하겠다는 거니까. 언어의 높이뛰기는 우리의 언어 수준을 높여보자는 게 아닐까.

이런 책을 읽으면 꼭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말 걸고 싶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차별이 없는 언어를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 아이들은 장차 더 큰 힘을 갖게 될 미래니까. 아이고, 그런데 중학생들의 어휘를 보면, 언어의 줄다리기건 높이뛰기건 아직 무리인가 싶은 거다. 장례희망처럼 단어를 마음대로 쓰는 중학생에게 언어의 행진 정도는 하자고 할 수 있을까? 걸음마는 떼었지만 소통하려면 단어부터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고 말이다. 행진은 박자를 맞춰 함께 하는 거니까.

@ 신지영, <언어의 높이뛰기>, 인플루엔셜

중학교 2학년 국어 과정에는 한글의 창제원리와 특성이 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지만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그 원리를 배우고 특성을 배워 한글의 우수성을 체감하게 하는 단원이다. 배움을 마치면서 제자 원리로 조건을 갖춘 문구를 만드는 모둠활동을 하고, 모둠별 문구를 행으로 배치해 반마다 시를 한 편 만들어 게시했다.

도전과제로 세종대왕이 글자를 만든 것처럼 우리 반만의 문자를, 우리 반에게 보내는 응원과 격려를 담아 만들어보게 했다. 이때 상형, 가획, 합성 등의 원리를 써보자고. 과제를 내주면서도 아이들이 어떻게 만들어낼까 궁금했는데, 어떤 반에서 만들어진 단어는 다음과 같다.

친구들에게 큰 응원을 보내고 싶어서 저렇게 자음을 나란히 쓴 병서의 원리를 활용했다는 설명이라니. 아이들에게 감탄하고 말았다. ‘복원교사’, ‘작곡밥’ 같은 단어를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처럼 과연 중학생들의 상상력은 내가 높이뛰기할 수 없는 수준이란 걸 확인했다.(맞춤법으로는 ‘파이팅’이 맞습니다. ^^)


아이들의 상상은 무한히 뻗어나간다. 이 맛에 중학생들과 수업한다. 비록 우리 반에서 만든 시는 아래와 같지만. 뭐, 아이들이 반어법을 잘 알고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1행은 반어법이라고 믿어야지. 4행을

비롯한 다른 부분은 참이라고 믿고. 중학생들과 생활하려면 오해와 착각 정도는 장착해야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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