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일 년에 즈음하여
글쓰기 모임이 결성된 지 일 년이 되었다. 일 년 만에 우리는 마주 앉아서 글을 쓰기로 했다. 일주년 기념으로 각 잡고 앉은 건 아니고, 앞으로는 식사 후 카페에서 글쓰기 시간을 갖자고 진작에 말해왔건만 2월엔 워크숍(연극과 미술관 관람)이 있었고, 3월은 교사에게는 고난의 달이었기 때문에 4월 초, '주수희'의 일 년 맞이 글쓰기가 되었다.
주수희의 일 년은 서로를 탐색하고 이해하는 데에 마음을 쓰는 시간, 이러저러한 글쓰기를 시도한 기간이었다. 매달 만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글쓰기로 시작했다. 브런치를 먼저 시작한 나로 인해, 다른 멤버들도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을 발행하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초에 계획했던 책 쓰기를 여름내 해서 가을에 내보이고 주수희로부터 큰 응원을 받았다. 글쓰기에 고무된 우리는 10월 일주일 동안, 매일 글쓰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어찌어찌 7일 글쓰기를 성공했고, 지금 생각해 보아도 짜릿한 경험이었다.
둘러앉아 글쓰기. 3분 쓰기로 자유롭게 나를 탐색하고, 셋의 키워드를 찾았다. 자유와 해방. 해방에 대해 쓰자니, 동시성의 원리가 생각난다. 지난주 토요일 밤 버찌책방에서 맛본 해방의 밤. 은유 작가님의 책을 앞에 두고 우리가 지금 해방의 밤을 즐기는 게 아니냐 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직장과 집에서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온전한 나로 앉아 쓰는 것.
내향형 인간인 나는 어디에 두어도 내가 먼저 내 얘기를 하는 법이 없는데 이 모임에서는 편하게 내 경험과 생각을 말하고, 내가 쓴 글을 내보인다.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어제 ‘정희진의 공부‘를 듣다가 똑똑하고 착한 사람이 오히려 위선적인 면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남들 눈치를 보고 남들의 생각을 잘 읽기 때문에 그렇다는 설명이 이어지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맞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상황을 살피는 면이 내게는 있다. 그러다가 내 의견 말하기를 주저하게 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서 남 생각을 받아들인 경험이 꽤 많다. 글쓰기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어찌 되었든 내 느낌과 생각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쓰기란 내게는 남들로부터의 해방이고 나를 보이는, 내게는 좀처럼 없는 무척 적극적인 행위다. 평소의 내 모습과는 다른 이 일을 동료들과 일 년 이상 하고 있다니. 글 안에 생각을 가둔다고 생각하지 않고 나를 글 안에 풀어낸다는 것에, 우리의 생각이 일치한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다.
내게 쓰기가 주는 해방이란 무엇일까. '저 언제나 모범적이고 바른생활만 하는 사람 아니에요, 많이 허술하고 실수 투성이랍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고 아이들 앞에서 창피한 적도 많습니다.' 이런 고백이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글을 통한 내밀한 고백으로 내 안에 있는 위트를 알리고 싶다. 내가 모아 온 글쓰기 책 중에 제목부터 최고인 책은 편성준 작가님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인데, 제목 그대로의 글을 지향한다. 은근하게 웃기는 것으로 내가 만들어온 틀을 깨부수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분들이 피식 웃으며 자신의 일상에서 조금 숨 쉴 틈을 얻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모여 앉아 자발적으로 글을 쓰는 일, 태어나서 처음인데, 내 옆에 있는 분들도 그럴 텐데, 지금 오른편에 앉은 분이 치는 키보드의 타다다다 소리가 나를 압박한다. 나도 충분히 자유롭게 나를 펼쳐내고 있기는 하지만, 저 소리를 들으니 조바심이 난다. 아니, 뭘 그렇게 많이 쓰는 거예요? 저 부담스러워요. 그래도 같이 글 쓰자고 제안한 것에 후회는 없다. 다음에는 나도 노트북을 가져와야겠다. 소리가 큰 걸로 치자면 적축이던가 청축이던가? 갑자기 키보드 욕심이 난다.
해방의 기분, 일주년 기념으로 마신 와인 탓일 수도 있겠다. 주수희의 시간, 글을 쓰고 소리내어 읽으며 웃고, 또 어쩌면 울 수도 있는 시간을 함께한다. 쓰기가 주는 진정한 해방을 마주앉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