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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Apr 06. 2024

일상의 순간에도 예술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1월에 구입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이번 주에 마저 읽었다. <뉴요커> 기자였던 저자가 아픈 형을 잃고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이야기라는 소개를 듣고 골라든 책이었다. 미술관이라는 매력적인 공간에서 경비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궁금했는데, 그게 치유의 공간이자 행위로써 기능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책을 펼쳐 들고는 문장들이 아름다워 곳곳에서 크게 감동했다. 에세이이기에 탄탄한 서사가 있는 건 아니어서 단숨에 쭉 읽지는 못했지만 간간이 펼칠 때마다 공감하고 감탄했다.

간간이 우리 반 학생들에게 책을 소개한다. 일주일에 한 번 돌아가며 책을 소개하자고 했다. 일단 3월엔 내가 이 책 저 책을 소개하면서, 메트 경비원 책에서 주말에 읽던 부분을 소개하고 읽어준 적이 있다. 끝까지 다 읽고 좋다 표시했던 부분을 둘러보는데 여전히 그 부분에 가장 마음이 가서 인용해 보려 한다.

북적이는 관람객들이 영구적인 인물 사진에 매료되어 자기 옆의 소중한 이들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오히려 사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애쓰는 걸 둘러보다가 저자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 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중략) 그리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 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중략) 오늘 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인류에 대한 사랑을 샘솟게 하는 이 부분이 정말 좋았다. 다시 읽으면서 나는 어쩌면 이런 부분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시고 사진전이 생각난다. 헤엄치는 사람들을 머얼리서 찍은 사진들, 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몸을 뉘고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저마다의 삶을 즐기는 순간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벚꽃이 만개한 4월의 요즈음, 상기된 얼굴로 꽃길을 거니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예술이 깃들어 있다. 가족, 친구, 연인, 반려동물과 걷는 모르는 사람들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 기분. 다 책 덕분이다.


거대한 미술관에서 10년 간 일하면서 저자는 다양한 예술품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누구나 아는 유명한 작품, 특별한 순간을 담은 작품도 있지만, 어떤 작품은 일상을 담아냈고 그렇게 담긴 일상이 액자에 갇혀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일상에도 예술의 순간은 있으니까. 이 책을 통해 일상에서 예술을 발견하는 눈이 뜨인 기분이다. 요새 나의 일상은 고양이 덕분에 더 마음이 포근하다.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 겨울이가 내 옆에 자리 잡고 잠들려는 순간, 그저 웃게 된다. 초콜릿 색 발바닥에 가만히 손가락을 대고 있으면 느껴지는 온기,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겨울이가 곤히 자고 있을 때 내가 쓰다듬으면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기지개를 쭉 켜고 또 잠든다. 안심하고 잠드는 마음이 느껴지면서 고양이라는 생명체가 내게 큰 선물을 주는구나, 한다. 이런 순간들을 계속 수집하고 싶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수만큼은 아니어도 한 전시실을 채울 순 있을 것이다. 그 전시실의 경비원으로 살아야지.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길 아니겠습니까? 사전 투표를 하고 왔다.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김희정 조현주 옮김 (All the Beauty in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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