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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인에게 문학의 향기 입히기

우리 함께 박씨전을 완성하자

by 조이아

남편의 독서에 대해 쓰려고 한다니, 남편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독서 취향이랄 게 딱히 없는데, 괜히 미안하네."

나는 감정을 실어 말했다.

"그니까!"

그의 독서라고 한다면 현재는 논문, 과거에는 교과서. 딱 이렇게였다고 한다. 내가 없었다면 평생 이렇게 살았을 테지. 하지만 나 때문에 점점 많아지는 집안의 책, 아이들과 가족 단위로 가게 되는 서점 구경(대전에는 딱히 갈 데가 없다) 탓에 남편도 책이란 것을 손에 들게 되었었었다. 그의 선호 장르는 딱 하나, 범죄 스릴러. 읽는 게 어디냐며 사다 바치고 중고 서점에 팔고 하는 나날이 몇 해 전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도 커서 나랑 서점엘 가질 않고, 남편도 독서 정체기다.

그즈음 남편이 연수를 수강했다며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던 때가 있었다. (요샌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책을 고르면 집으로 배달되며, 읽고 나서 관련된 문제를 풀면 이수된단다. 나로서는 집에 공짜로 책이 오는 게 좋았는데, 연수 과정 중에는 범죄 장르소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배달되는 책에는 최혜진 작가님의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가 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나는 책을 갖게 된 것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미술 이야기가 재밌었는지 같은 저자의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도 도착했고, 나는 또 흐뭇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책 중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있었다. 미술에 대해 흥미로운 건 그렇다 쳐도 무라카미 하루키라니 의아했다.

"이 책을 왜 골랐어?"

물었더니

"궁금해서."

라 답한다. 오, 소설가라는 직업이 궁금한 사람이었어? 의외라 생각하고 나는 또 내가 읽고 싶은 책장에 그 책을 소중히 꽂아두었다. 내 책장에는 안 읽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한 층, 그러니까 두 칸이 죄다 읽고 싶지만 당장은 안 읽고 싶은 책들인 셈인데, 소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며 언젠가는 꼭 읽을 예정이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안 읽은 지 오래되었고(미안합니다), 3년 전쯤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달리기에도 관심이 생겼을 때였고, 작가로서 달리기를 루틴으로 삼고 마라톤까지 나가는 작가님이 대단했다.

책장 아주 잘 보이는 데 꽂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보면서, 읽어야 하는데 하고 몇 년째 생각만 하다가 작년 겨울에 드디어 꺼내 들었다. 술술 잘 읽히는 에세이였고 하루키 특유의 가벼움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소설가가 된 계기 부분은, 다시 읽어도 신비롭다. 읽는 와중에 동네서점에서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눈에 띄어 들고 와 그걸 먼저 읽어치웠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가 더해져 더 재미있는 독서였다. 그러다가 남편에게 물었던 것이다.

"근데 왜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었어?"

"응? 뭐? 누구?"

"왜 예전에 연수받는다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이 책 골랐잖아. 어떻게 이걸 읽었어?"

"내가 그걸 샀다고?"

헐, 저 기억력을 어쩔까.

"연수받았잖아~."

"그랬나? 암튼 내가 그 사람 소설 좋아하잖아."

"뭐라고? 거짓말. 오빠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었다고? 저 사람 누군지는 알지? 해마다 노벨 문학상 거론되는 작가야."

"그래? 그 정도야?"

"아무튼 읽은 게 뭔데? 뭐 읽었어? 말해 봐."

다그쳤더니 남편이 하는 말.

"왜 그거 있잖아. 용의자 X의 헌신?"

헐, 나는 그저 웃지요.

"뭐야, 그건 히가시노 게이고잖아. 이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응???"

그때 저걸로 문제도 풀었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이어지는 남편의 말은 이렇다.

"어쩐지. 아니,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있길래, 이건 또 무슨 얘길까 들춰봤는데 좀 이상하더라고."

그렇다. 저 에세이를 또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범죄 스릴러라 생각하고 열어봤다는 것이다. 몇 년째 무라카미 하루키를 히가시노 게이고라 생각하고 있는 이런 남편하고 산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표지에는 하루키의 사진이 떡하니 박혀있는데 누구인지 모른 건 그만큼 남편이 문학에 문외한이기 때문일 거다. 안자이 미즈마루 선생님의 설명처럼 눈썹을 찡그린 저 얼굴을 보며 살인이 나오는 추리 소설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양윤옥 역, 현대문학 @ 무라카미 하루키, <장수고양이의 비밀>, 홍은주 역, 문학동네


남편은 종종 자기를 '낭군님'이라 지칭한다. 도대체 저 단어는 어디서 남편 뇌 속으로 굴러들어간 걸까?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 자기가 낭군이면 나는 낭자야? '낭군님 오셨습니까' 이딴 문장을 나더러 해보라고 할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고 비웃는데, 그때마다 생각나는 책이 있다.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라는 고전소설이다. '국어시간에 고전 읽기' 시리즈에서 나온 <박씨전>의 제목이다. 박 씨인 나는 이 낭군과 살면서 나만의 박씨전을 완성해볼 작정이다. 어떻게? 책으로 남편을 개화시키기. 고리타분한 가부장적 사고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전환시키고 싶다.


내가 남편에게 읽히고 싶은 문학은 여성 이야기들. 델핀 드 비강의 <실화를 바탕으로>,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라는 두툼한 책을 남편을 꼬드겨 사게 하고 읽힌 적이 있다. 하나는 모녀에 대한 소설, 하나는 신화 속 마녀 키르케를 비틀어 썼다는 정보만 안다. 언젠가 내가 읽어야지 하고 사게 했는데, 남편이 진짜 읽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도 접하질 못하니 내가 권한 걸 읽기도 하는 거다. <키르케>를 읽고 그랬다.

"이건 쫌 이상하더라."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지만 새로운 여성 서사라니 무조건 좋을 것이다. 제일 잘 보이는 책꽂이에 떡하니 꽂아놓고 책등으로만 감상 중이지만 남편이 읽었다는 점에서 그저 뿌듯하다. 남편이랑 같이 본 연극도 있었다. <이갈리아의 딸들>이 상연된대서 결혼기념일을 맞아 다녀왔더랬다. 여남 성역할이 뒤바뀐 미러링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졌고, 책을 미리 읽은 나는 통쾌했다. 남편은 그때 충격을 좀 받았을 거다. 박 씨와 함께 살면 종종 그럴 것이야, 낭군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훼훼훼!!

우리가 함께 쓰는 '박씨전'이 완성되려면 한참 걸리겠지. 어쩌면 이건 결혼 전부터 내 오랜 계획이었을 수도. 인생을 전부 바쳐야 할 우리의 '박씨전'은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인가 상상해 본다. 고전소설처럼 절세미인으로 변신하는 반전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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