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출력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 살림과 동시에 음악이 재생되는 남자가 있다. 살림을 할 때마다 노래 재생이 기본 사양이라니 무척 곤란하다.
첫째, 재생되는 멜로디가 구리다. 놀랍게도, 선곡은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짐보리(고등학생 아들이 다섯 살 무렵 다니던)에서 듣던 동요가 나오기도 하고, '화개장터'가 나오기도 한다. '사랑의 찬가'가 아니라 '서울의 찬가(아시나요? 패티 김이 불렀습니다)'를 불러댄다. 그러니까 랜덤인 거다. 지난 설에 다둥이 가족이 나와 노래 경연을 하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아들이 듣다가
"어? 저거 아빠가 부르는 노래네?"
했다. 형제들 나이는 오십 대 이상으로 보였다. 나로서는 제목도 알 수 없다. 도대체 저런 노래를 언제 들었던 건지, 그 입력 경로가 궁금해진다. 나랑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저 속에 어떤 노래들이 숨겨져 있을까. 왜 그딴 노래들만 저장해 둔 걸까.
둘째, 원곡과 다르게 출력된다. 귀가 예민한 나는 남편이 한 소절만 부르면 어떤 노래인지 잘 알겠다. 그런데 내가 아는 멜로디가 자꾸 변형되거나, 노래가 앞으로 나아가질 않고 한 부분만 반복된다. 부르려면 제대로 부르지 어그러지는 통에 신경이 쓰여 삐끗하게 재생할 때마다 화가 치민다. 아들이 알아챈 저 노래도 말이다.
"어? 근데 좀 다르다?"
를 덧붙였다는 걸 폭로하고 싶다. 가끔 나를 열받게 하려고 엉뚱한 계이름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이게 더 힘든 거 아니에요?)
저 두 가지 이유로 나는 남편에게서 재생되는 노래들이 듣기 싫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런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 그때도 노래에는 재능이 없음을 알았지만서도, 노래방에서 '취중진담'을 열정을 다해 부르던 모습이 그저 기특했을 뿐이다. 그런데 '세상은 요지경'이나 '개똥벌레'가 아무 때고 재생되다니. 늘 귀를 틀어막고 노이즈캔슬링을 할 수도 없고 아주 별로다. 일찍 일어나는 남편은 마른 그릇을 정리하면서 저런 노래들을 불러댄다. 늦잠 자고 싶은 주말마다 남편의 노래 때문에 일어나고 만다.
자동 재생되는 노래들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남편의 음악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라디오를 클래식 음악 채널로 고정해 놓고 저녁 먹을 때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간간이 재즈도 듣고 우리가 둘 다 좋아하는 이소라, 김동률의 음악 외에도 다양하게 선곡한다. 그런데 내가 일부러 입력한 값에 대해서도, 출력에는 역시 좀 문제가 있다.
노래로 출력되는 것도 랜덤이지만 제목에 대해서도 자기 맘대로 말한다. 차 안에서 선곡 담당은 난데, 어느 날 운전하던 남편이 말했다.
"그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 좀 틀어봐."
"오, 이름도 알고 대단한데? 뭐, 어떤 거?"
음악가 이름도 안 틀리고 대견하다.
"뭐였지? 워터?"
"헐, 워터가 아니라 '아쿠아'야!"
함께 영화 <괴물>을 본 후여서 그 OST를 말했을 거다. 워터랑 아쿠아는 둘 다 물이니까 뭐, 이만큼 알게 된 게 어디냐 싶다.
지난주에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고 와서 말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더니. 쓰레기 버리면서 라알라라 라랄라라 랄랄라~ 라알라라 라랄라라 랄랄라 노래를 한 거 있지. 근데 옆에 다른 사람이 있었어. 크게 불렀는데."
마침 분리배출일이었다. 나는 한번 웃고 말았는데 남편은 계속 말했다.
"차라리 휘파람을 불 걸. 내가 왜 노래를 했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개장터'나 '세상의 요지경'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남편이 부른 노래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였다. 수준을 높여놓기 잘했지 뭔가. 그렇지만 아무 데서나 출력하다니! 후회하는 남편에게 얼른 음식물 쓰레기를 내밀어 만회할 기회를 줬다.
"이번에는 노래하지 말고 다녀와."
남편의 노래는 대체로 빨래를 갤 때, 설거지를 할 때 나온다. 그러니까 노동요인 셈이다. 자신을 달래고 위로하는 주문이라도 되는 걸까. 노래 제목도 멋대로, 멜로디도 맘대로 무한 루프로 반복 재생하는 덕분에 우리 집 살림은 잘 돌아간다. 그래서 나는 저어기 앉아서도 빨래를 개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고 참고 들어줄 수 있다.
곤혹스러운 건 집안일을 하지 않을 때에도 노래가 나온다는 거다. 그럴 때 나는 그저 남편의 존재를 인지한다. 즐겁게 있구나. 아주 가끔 너무 조용하다 싶을 때에는 오히려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그러니까 남편의 노래는 자신의 안위를 내게 알리는 상태음이라고나 할까. 최애 노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강풀 원작, 제작의 <조명가게>에도 나온 명곡....이지만, 이젠 그만 듣고 싶다. 아니, 화장실 청소도 해주면 노래 더 해도 되는데. 남편이 그걸 모르네.
음악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내가 입력하는 노래들이 남편에게 제대로 들어가서 정확히 출력되기를 원한다. 그것도 딱 집안일을 할 때만.
차 안에서 레드벨벳 노래를 쭉 듣다가 'Psycho'가 나올 때 남편이 이 노래가 제일 좋다며 말했다.
"해 나오면 오케이라고 하는 건가?"
마침 보슬비가 내리다가 맑게 개었다. 이런 사양의 남편이랑 살고, 업그레이드를 위해 좋은 노래들을 입력하는 나, 또 이런 걸 '남편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 아래 쓰는 나, 왜 '사이코' 가사가 콕콕 들어와 박힐까.
"사이코~ 사이코~
서로 좋아 죽는 바보, 바보
너 없인 어지럽고 슬퍼져
기운도 막 없어요
둘이 잘 만났대
Hey, now we'll be okay"
우리 남편이 잘 부르는 노래에는 이것도 있다.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마누라지."
'사이코'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우린 좀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