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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들에 둘러싸여

저자 기르는 법

by 조이아

학교에 있는 ‘아무튼 시리즈’를 다 빌렸다. 우리 집에 있던 ‘아무튼’도 싹 끌어모았다. 그렇게 해도 한 반 학생수보다 모자랐다. 모둠 활동으로 책에 대해 파악하게 했다. 주어진 책 세 권 중 두 권을 골라, 이 책의 부제와 뒤표지에 쓰인 글, 저자 소개, 목차를 살펴보라고 했다. 해결할 과제는 글 쓴 목적 파악하기. 사실 모든 책의 답은 그 대상을 좋아해서, 로 수렴된다. 아무튼 시리즈가 바로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모둠에서 책을 들여다보고, 다른 모둠이 살펴본 책에 대해 들으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무튼‘을 떠올린다. 저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 어쩜 저렇게 좋아하는 게 다 다를까. 활동의 목적은 자신의 ‘아무튼, 땡땡’ 한 편을 쓰는 것. 아무튼 시리즈를 살펴보고 한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마인드맵 그리기.


두 번째 시간에는 글의 계획을 세운다. 내 글감, 이렇게 정한 이유,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 개요 짜기. 중간에는 글을 한 편 읽는다. 개요를 안내해도 글 쓰기의 갈피를 못 잡는 학생들이 많아 샘플 글을 읽게 했다. 2종을 준비해 아이들에게 고르게 했는데, ‘아무튼, 요가’와 ‘아무튼, 책’을 준비했다. 둘 다 중학생에게 어필하는 제목은 아니다. 학생들에게 둘 중 하나를 골라보라며 분량을 알렸더니 더 짧은 ’아무튼, 책‘을 읽겠다고 했다. 반마다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이 한 명 이상 있으므로, 괜스레 호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동동이가 좋아하는 작가가 쓴 거야.”

그렇게 ‘아무튼, 책’을 출력한 종이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아무튼 시리즈를 아는 분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아무튼, 책‘은 없는 책이므로. 아무튼 글 한 편이 생각보다 길어서 우리가 쓸 분량을 두 배나 초과했다. 그래 작년에 내가 쓴 글을 출력했다. 그러니까 내가 쓴 글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단 거다. 내가 호명한 동동이는

“어? 제가 좋아하는 작가요? 누구지?”

하며 혼란스러워하거나

“저는 좋아하는 작가가 없는데?”

이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뒷면에 쓰인 저자 이름을 보고

“선생님이 쓴 거예요?”

하며 웃는다. 작년에 독서토론동아리 독토리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쓸 때 나도 한 편을 써서 우리 책 <상태메시지>에 넣었다. 우리가 쓸 글의 분량을 조금 초과한 1400자 정도의 글이다.

어쨌거나 저렇게 글을 나눠 갖고 읽혔다. 나는 조금은 부끄러우면서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나같이 집중해 읽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호감 여부를 떠나 아는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것 하나로 기꺼이 읽어주는 마음이라니. 물론 그 집중력은 조금은 다르게 작용되기는 해서

“선생님, 전과자예요?”

하고 엉뚱하게 묻거나 — ‘전과 후’를 보고 앞 전, 뒤 후로 쓰인 단어를 멋대로 이해했다 —

“선생님, 프랑스에서 살았어요?”

하고 새삼 나에 대해 궁금해했다. 글을 읽고 분량, 문단, 글의 구성 등을 설명하고, 글을 읽고 선생님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처럼 여러분도 글에 자기가 드러나도록 써달라 요구했다. 밝게 빛나는 얼굴들.


셋째 시간 수행평가, 전체 학생들이 집중력을 발휘해 펜을 들고 글을 써내려 갔다. 열심히 쓰다가도 고개를 들고 허공을 응시하는 멍한 얼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 저 장난꾸러기가 저렇게 생각하는 때도 있구나, 이 아이의 축구 이야기와 저 아이의 축구는 어떻게 다를까를 기대하는 시간. 나는 아무래도 이 쓰기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이 고요가 좋고 각자의 열심으로 채워지는 충만이 마음에 든다. 한 학기에 단 한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어제 수업에 들어갔더니 재치꾼 진석이가 묻는다.

“선생님, 제 글 읽어 보셨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 ‘아무튼, 터닝메카드’를 쓴 아이다. 자기 첫사랑이 거기 있어서 쓰면서 눈물 날 뻔했단다.

“아직 못 읽었어. “

하는데 기대하며 반짝이는 눈빛을 보다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마터면 사과할 뻔. 채점에 이르기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아주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직 시작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시키면서

“너희들 글 읽는 게 너무 기대 돼,”

했던 마음과는 별개로 채점할 생각에 한숨이 난다. 내 글을 재미있게 읽어준 아이들의 마음을 떠올리며 악필이라도 맞춤법, 띄어쓰기가 엉망이라도 읽어야지. 나는 자칭 중학생 생태 수집가니까. 진짜 어떤 얘기들을 썼을지가 너무너무 궁금한데 좀 더 궁금하게 묵혀두고만 싶다. 우리 학교는 왜 10개 반이며, 아이들은 각반에 스물일곱 명씩 있는가. 한숨.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일으키기를. 아무튼, 중학생이다.


* ‘아무튼’은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 함께 펴내는 에세이 시리즈. 여둘톡 황선우 작가님의 <아무튼, 리코더>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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