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을 읽고
낯선 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일주일이었다. 첫 근무일의 긴장감은 왜 무뎌지지가 않을까.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동료들 또한 며칠 얼굴을 익혀 반가웠다. 다만 새로운 업무는 두려움과 함께 왔다.
첫날부터 걸려오는 내선 전화.
"선생님, 학적 담당이시죠?"
어떤 작업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저에게 아직 권한이 없어서요."
하는 대답을 해야 했다.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이지만서도 마음은 왜 이리 불편한지. 막상 내게 권한이 들어온다고 해도 내가 잘 해낼 수 있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나를 울적하게 할 줄은 몰랐다. 다음 날 권한을 확인하고 하나씩 일을 수행했다. 그러면서 내 얼굴도 점차 밝아졌는데 (하지만 이내 어두워진 내 얼굴,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날 일기를 쓰면서 알았다. 나, 유능하고 싶은가 보다.
개학 바로 전에 읽은 책은 <다른 삶>이라는 책이었다. 프랑스에 사는 곽미성 작가님의 에세이로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이는 기꺼이 이방인이 된다'라는 부제가 달렸다. 낯선 나라에서 새 언어를 익히고 삶의 터전을 일구는 일들을 읽으면서도 몰랐다. 이 책을 골라 든 이유를. 일주일이 지나고 난 오늘에야 알았지 뭔가. 새로운 학교에서 나는 얼마간 이방인인 것이다. 학생들을 지도해야 하지만 새 학교의 규칙이나 분위기를 모르고, 공간마저 낯설어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입장이다.
책의 한 꼭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영화를 전공한 직장인의 미생'이란 글이다. 유학생 시절 선배가 소개되는데, 그가 얼마나 아는 게 많았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알고 싶은 게 많았는지 나온다. 그리고 작가님은 그 선배에게 '큰 빚을 졌다'라고 한다. 새 직장에 입사했을 때였다.
"새로운 일, 잘 모르는 일이 내 앞에 닥치면 공포의 파도가 출렁였다.(중략)
그럴 때마다 그의 빛나던 호기심을 떠올렸다. 그저 지금 모르는 것일 뿐, 알고 나면 간단한 일이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가 그랬듯이, 고요하고 집요하게 시간이 멈춘 듯이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보다 보면, 놀랍게도 모든 일이 재미있어졌다. 재미있어지면 못 할 게 없다."
과중한 일에 압도되어 있는 내게 꼭 필요한 글이었다. 엄두가 안 나고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내게, 시작의 물꼬를 틔워줄 것 같아 밑줄을 그었다.
"그가 그랬듯이, 마치 내 앞에 놓인 일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세계인 것처럼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그 세계가 정말 흥미로워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재미를 느끼면 못 할 게 별로 없다.(중략)
그 7년의 끝에서 나는 이제 어떤 일이 다가와도 그렇게 두렵지는 않은, '누구나 배우면 할 수 있다'를 믿는 사람이 됐다."
읽으면서 더 확신했다. 내게 필요한 태도라고. 사실 학교 일에 대해서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맡은 업무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야 하는 게 바로 나이니 자꾸만 매뉴얼을 들여다보고, 전임자에게 묻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교무실에 전임자 선생님이 계시며 큰 의지가 된다. 하나 언제까지 묻기만 할 수는 없다. 내가 먼저 알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찾아보고 공부해야... 할... 텐데.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하는 나여, 알고 싶다는 감정을 키워보자. 더 적극적으로 궁금해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어제 버찌책방에서 열린 북토크, 예소연 작가님의 이야기 속에도 호기심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알아보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맞는 것 같다. 이제 막 소설 한 편을 쓰고 있는 자로서 모르는 인물, 사건, 배경에 대해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하고 있다. 자료 조사와 인터뷰 등을 해야 하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겠다. 소설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도, 학교 구성원으로서 내 업무를 하는 일에도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호기심. 궁금해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기꺼이 해낼 수 있으며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호기심은 습관이다. 살아남기 위해 절실하게 따라 했던 친구의 진지한 탐구 자세가 나를 살렸다."
호기심이라는 습관을 장착하기. 숙제라 여기며 내 안의 호기심 영역을 늘려보겠다. 더 열린 마음으로 이 세계가 재미있어지도록 자세를 취해 보련다. 이 세계라 함은, 전입, 전출, 유예, 면제 등 학교생활기록부 전반.......
다시 부제를 읽으니 La plaisir de devenir étranger pour recommencer la vie, 삶을 새로 시작하기 위해 이방인이 되는 기쁨. 어떤 이는 다른 삶을 위해 기꺼이 이방인이 된다는데, 외국도 아닌 새 학교에서 나 또한 기꺼이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보아도 좋겠다. 이방인의 느낌은 곧 사라질 것이며, 내가 얻고 싶은 건 유능하다는 느낌이므로. 호기심이 먼저고 그 후에야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게 맞다.
책의 서문엔 이런 문장이 있다.
"당신이 두려움을 다스리고 황홀한 고통을 기꺼이 즐길 수 있도록 이 책이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3월, 새로운 시작에 너무도 필요한 말들이었다. 딱 맞는 시기에 큰 용기를 준 책을 만나다니.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멋진 언니들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 기쁘다. 새봄, 두려워하는 얼굴 말고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살고 싶다. Comment allez-vous? 하는 질문에, 밝게 답할 수 있도록.
@ 곽미성, <다른 삶>, 어떤책
* 책엔 이런 문장도 있다. “피폐해진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고양이밖에 없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