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 나를 만들 것이다
작년의 내가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소설 쓰기에 도전한 것이다. 버찌책방에서 김이설 소설가님과 함께하는 소설 쓰기 입문반. 12월부터 3월까지 이어온 8회기의 아름다운 여정을 지나왔다. 과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두려웠던 마음은, 물론 계속되었다. 하나 엄청난 소설은 아니더라도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뿌듯한 마음이 크다. 그런데 소설 완성보다 더 흐뭇한 기쁨이 있을 줄이야. 소설 합평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지 난생처음 알았다.
합평이라 함은 여럿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하는 일을 말한다. 글을 평가받는 일은 무섭고 떨리기만 할 줄 알았는데, 김이설 선생님의 안내대로 이루어진 합평은 신나고 흥분되는 일이었다. 함께 배운 학인들의 소설을 읽고 총평, 소설의 구성, 인물, 사건, 배경, 제목 등에 대한 의견을 미리 준비해 간다. 장점과 더불어 아쉬운 점은 더 나은 소설을 위한 퇴고 방향을 제안하는 식이다. 작가는 일단 모든 의견을 듣고 나중에야 발언할 수 있다.
내 소설을 꾸역꾸역 쓰고, 퇴고하느라 다른 분들 소설은 들춰보지 못했다가 일단 마감부터 하고 소설들을 출력했다. 충분한 시간을 마련해 소설을 읽는데, 이번에 처음 소설 쓰기를 배운 분들이 맞나 의심했다. 어쩜 이렇게 몰입하는 이야기, 감동하는 소설들을 써온 것인가. 책벗들의 소설을 뜯어 읽으며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인물들의 대화는 살아있고, 캐릭터가 선명하게 그려졌으며, 갈등도 날이 서 있었다. 갈등 만들기가 어려웠던 나로서는 밑줄을 그어가며, 부러움과 감탄을 섞어 읽었다. 각자의 조금씩이 소설마다에 담겨있는, 고유한 장점이 잘 드러난 소설을 써낸 게 신기했다.
이런 배움은 합평 시간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저마다의 의견에 더 나은 아이디어를 덧붙이며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즐거움이라니. 앞에서 나온 의견은 제외하고 발언하는데 아직 언급되지 않은 장점을 말하고 싶은 내 마음이 들썩거렸다. 이야기가 끊이질 않아 소설 하나에 한 시간씩이나 대화가 이어질 정도였다.
내 소설을 다룰 때는 자세를 바로잡고 하나라도 놓칠 세라 손을 바삐 움직이며 필기했다. 듣는 내내 이렇게 꼼꼼하게 읽어준 분들께 감사했다. 예리하게 소설을 읽어주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들으면서, 내가 만든 허구의 세계를 진정성 있게 읽어준 데에 대해 정말 고마웠고, 소설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마저 했다. 더 나은 방향에 대한 제안들을 잘 살펴 수정해야 할 텐데 아직은 손도 못 대고 있다.
소설 합평을 마치고 신나게 돌아온 밤, 책벗들과 작가님께 받은 고마운 마음, 소설 쓰는 기쁨을 알게 된 것 등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에 잠이 다 안 왔다. 다시금 책벗들의 소설에 감탄하고 내게 써준 피드백에 감동하며, 이래서 합평이 품앗이라고 했구나, 합평을 하면서 소설 쓰는 능력이 커진다고 했구나 새삼 느꼈다.
작가님의 말씀 가운데 "내가 소설을 만들지만, 소설이 나를 만들기도 해요."라는 얘기를 받아 적었다. 소설을 한 편 쓰면서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절절히 알았다. 한 세계를 만들려면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를 더 탐구해야 했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더 관심 가져야 했다. 단편소설 하나가 이렇다면야 소설가들이 왜 그렇게 인문 사회 도서를 자료 삼아 읽는지, 취재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채널예스 기사를 읽다 보니 예소연 소설가님의 인터뷰 제목이 "소설이 저를 자꾸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해요"다. 역시 김이설 작가님과 같은 말씀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예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이 몇 번이고 허용될 뿐 아니라 핵심 기술이 되는 장소다."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어크로스
소설 쓰기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쓰기 어렵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안다. 그렇지만 이 세계에서 좀 더 허우적거리고 싶다는 생각. 마흔 중반의 내가 다시 꾸는 꿈, 소설이라는 예술 장르에서 유영하고 싶다. 편협한 내 세계를 키우는 일을, 소설을 통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