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도 살림

매일을 살아내는 일, 살려내는 일에 대해

by 조이아

개학이 또 연기되었다. 집에서 어린이들을 먹이고 살림을 하는 것이 무척 분주하다.

점심시간은 꽤 빨리 온다. 아침을 느지막이 먹은 것 같은데 치우고, 청소하고, 빨래 돌리고 나면 금방 점심 준비할 시간이다. 삼시 세끼 집에서 밥을 먹으니 아침은 시리얼이나 빵, 점심은 간편식일 때가 많지만 그것도 벅차다.

오늘은 점심을 해 먹이는데 입맛에 안 맞는지 애들이 많이 남겼다. 스파게티를 했는데 소스에 새우나 고기를 안 넣었기 때문일 거다. 가지랑 호박이랑 양파로 나 나름대로는 라따뚜이처럼 먹자고 해보았는데, 내 입에도 뭔가가 부족한 맛이기는 했다. 큰애는 좋아하는 로제 소스가 아니라 싫다 한다. 식성이 무난한 편인 작은애는 워낙 스파게티보다는 피자를 좋아하는 애라, 피자만 두 조각 먹었다. 먹고 나서 치우려는데 접시에 가득한 파스타 면을 보니 화가 좀 났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데 오늘따라 날은 흐렸고. 마음속으로는 오늘은 어떤 업무를 해야 되나 끌탕을 하면서도 막상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릇을 치우면서 아니, 점심 먹기 전에 종료음이 울리던 건조기에서 세탁물을 꺼내면서,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집안일만 해야 되냐고 혼잣말을 했다. 아니지, 혼잣말이 아니고 꽤 크게 소리를 냈다. 나도 할 일 많은데 나는 왜 이런 것만 하고 있냐고 두 번 정도 외친 것 같다. 그걸 들은 우리 애들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지들이 한 건 생각 안 하고, 이럴 땐 다정하다. "엄마 왜?", "내가 도와줄까?" 하면서 쪼르르 내게 오늘 아이들에게, 나는 심통을 부렸다. "야, 도와주기는, 너도 이 집에 살면서 뭘 도와준다고 하면 안 되지, 같이 해야지." 하고 남편한테 하던 말을 그대로 했다. 그랬더니 먹던 그릇도 싱크대에 갖다 놓고, 빨래도 엉망이지만 개더라. 내가 설거지를 다 하고 났을 땐, 아까는 누가 짖었냐는 듯 개다 만 빨래가 여기저기 있고 애들은 놀기 바빴지만.



나는 누구를 향해 외쳤던 걸까? 애들을 향해서 할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반성한다. 큰 소리로 심통을 부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일단 이제껏 이런 일을 다 해줬을 엄마 생각이 나면서,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이제와 들었다. 엄청 품이 드는 일인데 하지 않았을 때의 구멍만 티가 날 뿐, 묵묵히 해내면 너무 당연스러운 것이 집안일인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나 자신에게 화도 났다. 할 일이 쌓여있는데 그건 손도 안 대고, 못 대고 걱정만 하고 있는 내가 싫었다. (처리할 업무가 늘 있다. 학교 일정에 맞추려면 아침부터 퇴근시간 그러니까 오후 네시 반까지는 뭔가를 해야 하는데, 점심 먹고 치우고 나서야 나에게는 여유가 생긴다는 게 내 마음을 바쁘게 한다.) 또 이렇게 집에서 집안일만 하는 것보다는 얼른 학교 나가서 학생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최근 개설한 온라인 학습터에 등록한 학생들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신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렇게 모두를 가두어 놓은 코로나 사태가 짜증 나기도 했다. 막상 감염되거나 치료하느라 수고하시는 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의심과 불안만으로도 정신적인 피로가 크다. 코로나 블루가 정말 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더 속상한 건 이거였다. 나는 왜 집안일을 이런 일 '따위'라 생각하고 애들한테 말했나,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집안일하기 싫은 마음에 이런저런 감정이 버무려져 소리를 낸 건데, 지나고 보니까 집안일은 가치 없다고 얘기한 거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마음에 많이 걸렸다. 집을 이렇게 유지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드는데, 우리 집에서 사는 사람들을 키우고 살리는 일이 얼마나 중한 건데. 아이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줬구나. 페미니스트 아들들로 키우고 싶은 생각이, 이상일 뿐이라는 게 속상했다. 나부터가 이렇게 살림의 가치를 모르며 지냈구나. 대학 때 읽은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책 속에서 '살림'이라는 말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직도 강렬한 핑크색의 표지가 기억난다.) 살림이란 단어의 뜻을 헤아리는 일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살림은 그저 살림이려니 해왔던 것이다. 평생을 지나쳐온 말이었는데, 살림은 모든 것을 '살리는 일'이었다. 그걸 이렇게 이십 년이 지나서 또 깨닫고 있다.


최근에 읽은 책은 '소소하게 찬란하게'다. 파리, 밀라노를 오가던 모델 오지영의 사는 이야기다. 모델로서가 아닌, 엄마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가족들의 이야기, 상실로부터의 회복, 지금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의 삶이 펼쳐지는데, 처음에는 뭐 이렇게 싱거운 이야기가 다 있나 했다. 그러다가 시장에서 장 보기, 신선한 과일과 채소로 샐러드 해 먹기, 천연 발효 빵 만들어 먹기에 이어 채식 이야기, 플라스틱 프리 이야기, 요가 이야기 등등 점점 내가 원하는 생활방식이 이런 모습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기 공간을 꾸미고, 내 몸을 좋은 것으로 채우고, 움직이고 명상하고 하는 그만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생활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다. 에필로그에는 '살림을 하는 일이 좋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나는 그만 여기 펼쳐진 삶의 아름다움에 온몸이 떨렸다.(헉, 정말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내뱉은 말이 더욱 후회됐음은 물론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불속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까 엄마가 일 많다고 소리 질러서 미안해, 그런데 집에서 하는 일은 정말 소중한 거야. 청소나 빨래, 식사 준비 이런 일이 없으면 우리는 못 사니까. 살림은 진짜 중요한 거야." 나란히 누운 어린이들은 갑작스러운 내 말에 조금 어리둥절해했지만 반성하는 나는 이렇게 꼭 말해야 했다.

오늘도 내 공간은 나로 인해 생명력이 가득했나 돌아본다. 오늘 밤, 나는 또 평가계획을 마무리하고 자야 하지만 내 삶을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싶다.

앗, 그런데 이렇게 멋진 마무리 끝에 하나 더 고백하자면, 오지영 작가의 책을 다 읽고 난 밤, 작가가 반죽하고 며칠 발효시켜 빵을 만들고 굽고 하는 그 이야기에 홀려 나는 그 밤에 성심당 빵을 주문하고 잤다. 코로나 시대에는 택배 또한 나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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