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와 말하기

아들과의 대화 기록하기

by 조이아


어릴 때는 도무지 비밀의 개념을 몰라서 엄마와의 비밀 같은 게 없었다. 금세 형제들이 공유하는 것이 무슨 비밀이란 말인가. 그런 우리 집 둘째가 이제는 비밀을 간직할 줄 아는 남자가 되었다.

지난주에 할아버지가 다녀가시고, 퇴근한 나에게 다가와 작은애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나만 만 원 줬어. 용돈."

입이 도무지 다물어지지 않는 얼굴을 하고서, 자기 나름대로는 작은 목소리로 내 귀 옆에다가 흘리듯 말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어하는 그 얼굴에 나 또한 함박웃음을 참을 수 없다. 형이 학원 간 사이에 용돈을 받았다는 거다.

"그랬어? 우와, 좋겠다."

과연 형에게도 비밀을 유지하려나.


둘이서 동네 책방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다음에 또 서점에 가서 책을 사자고 하며,

"다음에는 도빵이 돈으로 사."(무슨 일로 이런 얘길 했는지 모르겠다.)

얘기했더니 이런다.

"왜 내 돈으로 사?"

그러더니

"나, 돈 많다. 삼만 팔천 원."

비밀을 간직하는 타입은 쫌 아닌가.

"우와, 삼만 팔천 원이나 있어? 도ㅇ이 돈 많구나?"

엊그제 외할머니한테 얘기 들은 게 있는 터라 나는 짐짓 모른 체하며,

"할아버지한테 받은 용돈?"

하고 물었다.

"안마비."

"응? 그게 뭐야?"

모른 척 물었다.

"할머니 안마비, 삼천 원!”

"응? 할머니 안마해드리고 받았어?"

"응"

얼굴은 그새 또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헤벌어졌다. 저렇게 돈만 생각해도 너무 좋은가.

"우와, 안마해드리고 돈도 받고. 돈 모아서 뭐하게?"

무슨 대답이 나올까 궁금했다. 요새 부쩍 관심이 많아진 게임에서 뭘 산다고 하려나(현질), 갖고 싶은 레고 시리즈가 또 있을까. 그런데 나온 대답은

"금속 탐지기 산다고 했잖아!"

아아! 나는 잊고 있던 금속탐지기.


올해 상반기에 마스크를 쓰고 바깥 산책을 나갈라치면, 둘째는 늘 땅바닥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고 동전을 찾아다녔다. 몇 년도 동전이 귀하다느니, 그걸 팔면 얼마 짜리라느니, 옛날 동전은 어디서 나오냐, 엄마 동전 가진 거 있냐. 지갑 속의 동전을 수색당한 게 여러 차례.

외출하고 오면,

"동전 생겼어?"

묻기가 바빴다.

"카드로만 샀는데."

“엄마 돈을 안 써서 없어.”

이런 실망스러운 대답을 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세 번이나 길바닥에서 동전을 발견했다. 지하주차장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로변에서. 집에서 꼼짝 안 하려는 아이를 산책 가자 꼬드길 때엔 내가 먼저 동전 찾으러 나가자고 하기도 했다.

동전을 많이 찾으려면 아무래도 금속탐지기가 있어야겠다고 몇 번을 검색해보던 게 생각났다. 금속탐지기를 사서 그걸로 동전을 찾느니, 착실히 용돈을 모으는 게 나을 텐데.



"도빵이 기분이 어때?"

말없이 저어어기로 뛰어 내려간다 팔짝팔짝. 말없이 가버린 게 서운했지만,

"아아, 그렇게 기분이 좋다는 거구나!"

이렇게 말했다. 저만치 앞서가서 못 들은 것 같아서 두 번이나.

"응?"

"엄마가 도빵아, 기분이 어때 물어봤잖아. 그랬더니 도ㅇ이가 대답 없이 뛰고! 그러니까 그 뛰는 게 도빵이의 대답이라는 거지?"

"응, 맞아."

하면서 또 폴짝폴짝 뛴다. 벌써 열 살이 된 남자아이와의 대화를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기록해두겠다. 아, 이것은 아이에게 한 다짐이기도 하다. 책에 대해 얘기하다가, 엄마도 책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고. 그랬더니 자기 얘기도 쓰라고 허락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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