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아이, 꾸중을 듣다

남자아이와 말하기

by 조이아

꾸중 듣다, 나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두 아들과 함께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하던 저물녘이었다.

"엄마도 애기 때 꾸중들은 적 있어?"

둘째가 물었다.

"그러엄, 엄마도 꾸중 들었지."

"언제?"

"글쎄에, O진이 삼촌이랑 싸워서?"

"엄마도 싸웠어?"

"응, 몸으로 싸운 게 아니라아 좀 속상해하고 그랬던 거지, 뭐."

"엄마는 이제 꾸중 안 들어서 좋겠다."

"엄마는 꾸중 안 들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물었다. 나도 교감 선생님한테 혼날 때가 있는데? 아니, 꾸중을 듣는다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속상해하고 탐탁지 않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등등의 목소리가 나올 뻔했다.

"응, 엄마는 접시 깨도 안 혼나잖아."

최근에 나는 두어 번 그러니까 밥공기 하나, 꽃병 하나를 깨트렸다. 밥공기는 혼자 치우느라 힘들었지만, 꽃병은 남편이 싫은 소리 없이 같이 치워주었지. 고맙게도.

"그럼, 도O이는 언제 꾸중 들었지?"

"나는 화분 깨서."

아아, 그랬지. 아이는 자기는 꾸중 듣는데 나는 그냥 지나가는 게 무척 속상한 모양이었다.

"많이 속상했어?"

"응."

"많이 속상했구나."

뭐라고 더 위로를 하고 싶었는데 곧 다른 주제, 길가에 있는 미세먼지 및 오존, 시간, 날짜 등을 알려주는 전광판으로 화제가 전환되었고, 꾸중에 대한 아이의 속상함은 미적지근하게 내 마음속에 들어앉았다.


다음 날 내가 아이에게 꾸중을 듣는 상황이라도 마련해줘야 할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아들 둘과 함께 게임을 하곤 하는 남편은, 게임 실력은 아들들보다 낮으므로 자주 타박을 듣는다. 셋 중에 늘 꼴찌를 해서 아이들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신나 하기도 하고, 아이가 아빠를 북돋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상황 - 아빠보다 자기들이 더 힘이 세거나 더 똑똑하게 느껴지는 이런 전복된 상황 자체가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엄마가 도O이한테 꾸중 듣는 일이 생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는 혼란스러워했다.

"아니이, 도O이만 꾸중 듣는다고 속상해해서~."

그랬더니 놀라운 말을 한다.

"형아는 엄마 꾸중하잖아?"

"응?"

무슨 말이지? 감이 안 잡혔다.

"밥 먹어, 게임 그만 해, 엄마가 말하면 형아가 알았어어 하잖아."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됐다. 십 대 소년이 된 후에 하는 말대꾸를, 둘째는 형이 엄마를 꾸중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저 '알았어어'는 굉장한 감정을 동반한 '알았어어'였던 것이다. 나는

"아아, 그게 꾸중하는 것 같았어?"

하고 웃고 말았다.



아아, 내가 헛된 생각을 했군. 곧 있으면 둘째도 나를 꾸중할 날이 닥칠 것인데.

꾸중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 꾸중: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는 말

* 꾸짖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엄하게 나무라다.


뜻을 다시 가르쳐 줘야 할까? '꾸중을 듣다'라는 표현은 내가 잘 쓰지 않는 건데, 나는 꾸중을 들으며 살아왔구나. 앞으로도 꽤 오래. 한 십 년?


20200822_171732.png 인사동, 르네 마그리트 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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