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는 외계인이야?

아들 둘과 엄마는 대화할 수 있는가

by 조이아

종종 같이 걷곤 하는 E 언니와의 수다 산책. 언니가 친정엄마와 통화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엄마가 요새 하는 생각들을 건네시면서 너는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던가 그런 내용이었다.

"언니는 엄마랑 그런 얘기도 해?"

하고 되묻던 차였다.

"응, 근데 내가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잖아. 엄마, 내가 엄마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엄마가 부럽다."

나도 물었다.

"뭐가?"

"엄마는 이런 얘기를 할 딸이 있잖아. 나는 없는데."

그 순간 나는 휘청, 뒤로 넘어갈 뻔했다. E언니와 나는 아들만 둘이다.


이남옥 작가님의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라는 책 제목은 누가 지으셨는지, 세상 모든 딸들이 엄마를 가리킬 호칭으로 손색이 없다. 나는 딸이 없어서, 나처럼 마음고생시키지 않아도 되겠다 이런 생각만 해왔다. 우리 엄마는 매우 센스 있고, 가족들을 잘 챙겨주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신세 한탄도, 시댁 식구들 욕도, 아빠 흉도 부어주시는데, 나는 그걸 막아내지를 못해왔거든. 나는 내 (있지도 않은) 딸에게 그런 부정적인 것들을 전할 수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막연하게 아들만 있는 친구들이랑, '우리는 나중에 외로워서 어떻게 하냐, 우리끼리 끈끈하게 지내자, 우리 나중에 여행도 같이 다니자' 이런 얘기는 해왔다. 그런데 내 속에 쌓인 얘기들을 터 놓을 상대가 없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아주 조금 복잡해졌다. 그 통로가 닫혀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는데, 나 혼자 답답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던 거다. E 언니의 말로는,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와 혈육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다를 거라는 거다. 그럴 듯 하다.



둘째가 올해 열 살. 십 대가 되시더니 이제 세 남자가 주말마다 같이 게임을 한다. 주말 아침, 나는 평일에 못 하는 늦잠을 자고 싶은데, 일곱 시 부근이면 '다다다다' 저 방에서부터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는 아직도 내 침대에 한 번 누워, 내 품에 안겨준다. 좀 더 자라고 매번 얘기해도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거실 소파에 안착, 화면만 들여다보는 아침 풍경. 그럼 나는 침대에서

"물 한 잔 마셔."

"안경 쓰고 해."

이런 외침들을 허공에다 대고 한다.


게임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주말마다 외출을 도모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나의 계획이란 별 거 없어서, '산책 가자, 산에 갈까, 농구라도 하고 오자, 엄마 맛난 케이크 먹게 카페 가자, 오늘은 꼭 네 신발을 사야 한다' 등 한정되어 있다. 그래도 겨우 저런 데라도 나갈라치면, '제발 외출 좀 해주세요' 읍소하는 꼴이다. 토요일이던 어제는 건너편에 새로 연 도넛 집에 가기로 했다. 널찍한 공간이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이들은 레모네이드를 고르고, 남편과 나는 커피를 마시는데 레모네이드가 입에 안 맞는다고 심술이다. 나는 모처럼만의 카페를 즐기고 싶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게임할 시간이 줄고 있다는 생각에 입이 나온다. 혼자 남아 책을 읽다 가겠다고 남자 셋을 보냈다. 한갓진 마음과 더불어, 점점 이런 외로운 시간이 많아질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니 아직은 혼자만의 시간이 황홀할만치 좋다. 그리고 아주 나중까지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엔 농구장에서 스무 골만 넣고 오자는 남편의 제안에, 둘째가

"엄마도 갈 거야?"

묻는다. 나는 혼자 팟캐스트 들으며 설거지나 하고 있는 게 좋은데, 왠지 애들까지 안 간다고 할까 봐 얼른 반바지를 챙겨 입고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순서대로 공을 던져서 스무 골을 넣으면 집에 갈 수 있다는 규칙을 정하고 우리는 슛을 날렸다. 가장 늦게 스무 골을 넣은 건, 물론 나. 그래도 스물을 채울 때까지 남자 셋은 나를 기다려주었다. 농구공이 바닥에 튀기는 소리와, 우리들의 웃음 소리가 푸르렀다. 같이 운동을 한다는 건, 함께 하는 사람의 몸짓을 관찰하게 하고, 그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고, 그를 응원하는 일을 끊임없이 하는 거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도 남편에게, 어린 아들들에게 위로를 받고(많이) 격려를 받고 있었다. 공 하나를 따라 나를 움직이고, 서로의 행동에 집중하는 일. 같이 운동을 한다는 건, 이렇게 서로를 친밀하게 하는구나 새삼 느꼈다. 이럴 때 나를 소외시키지 않고 같이 끼워주어서 조금은 좋았다.



"왜 엄마는 외계인이야?"

라는 물음은 서른 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였다.

"엄마가 왜 외계인이야?"

아이스크림 이름에 대한 거였는데 나는 뜨끔하며 들었다. 우리 집에서 나만 혼자 외계인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내가 먼저 선을 긋고 우아하게 지내고 싶다며 혼자만의 벽을 세우고 있는 건 아닌가. 곧 청소년이 될 아이들하고도 소통하면서 지내고 싶다. 내 속의 부정적인 걸 퍼붓는 건 안 하고, 서로의 감정을 읽어주고 이해하며 지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나도 게임을 같이 해야 되나. 남자 셋이 게임 삼매경일 때마다

"자세 바르게 하고!"

이따위 말만 날리는 건, 나도 참 마음에 안 든다.

주말마다 들려오는 게임 음악을 외웠다. 다음에 애들이 게임할 땐 저 노래라도 옆에서 흥얼거릴까. 미래에도 소통하는 아들과 엄마로 지내기 위해.

머리에 화관을 썼다고 상상했는데 저것은 뿔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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