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말 기록하기
"엄마는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
어딘가로 향하는 차 안이었다. 저 말이 무슨 뜻일까를 생각하면서
"어, 그렇지. 세계에서 힘이 강한 나라지."
라고 답했다.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보다. 저 꼬맹이가 벌써 나라 간의 힘의 역학을 안다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들은 말이 있나?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어서 국제뉴스를 우리 집에서 주워 들었을 리가 없다.
"맞아."
라고 응수하는 큰아이. 이어지는 말은 이랬다.
"그러니까 트랜스포머가 있지."
아하하. 그 얘기였구나. 형아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심각하게 바라보던 둘째가 물었다.
"그럼 카봇도 있어?"
우리 형아가 말했다.
"아니! 카봇이 어떻게 영어를 해!"
아이를 키우다가 웃게 되는 장면들에 대해 떠올려 본다.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에 아침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우렁우렁 듣던 때가 있었다. 내가 휴직 기간일 때였고, 요즘에는 친정엄마와 지내고 있어서 스피커를 연결하지 않고 남편 휴대폰에서 그의 동선에 따라 소리가 이동한다. 우리 둘째가 어느 날 '호준'이라는 남자아이의 이름을 들었을 때 한 말은 이렇다.
"호준이? 김호준의 뉴스공장?"
그리고 최근에 나와 함께 위인전 한 권을 천천히 읽고 있는데 그것은 '허준'이 제목이다. 둘째 아들 왈,
"허준? 김허준? 뉴스공장?"
이 아이의 귀는 남다르다. 작년에 일기를 쓸 때였다. 외가에서 삼촌과 외숙모를 만나서 선물을 받았던 일에 대해 썼다. 다 썼다며 내게 일기장을 내밀었을 때 나는 외숙모를 가리키는 단어를 보고 놀랐다. 우리 올케는 한국사람은 아니지만 일본인은 더더욱 아닌데, 이렇게 써 놓았다.
'왜승모'
이렇게 잘못 써 놓은 것에 대해 내가 큰소리로 웃었더니, 아이는 부끄러워했다.
그해 여름이었다. 남편이랑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나는 아직 아날로그인이라서 핸드폰의 메모장보다는 쪽지에 직접 장보기 목록을 적는다. 아이가 뽀로로 음료수를 부르길래 장바구니 등을 챙기면서,
"도빵이가 그 종이에 적어줘. 엄마가 사 올게."
했다. 마트에 도착하고 카트를 끌고 종이를 펼치면서 나는 의아했다.
"이게 뭐지?"
'뽀로로 움유수'
이어지는 남편의 말은 이랬다.
"어쩐지! 맨날 저렇게 말하더라!"
음료수의 발음을 할 때마다 '움유수'라 하던 아이라니. 발음할 때마다 힘들었겠다. 어쨌거나 나는 이럴 때마다 내가 국어를 가르친다는 게 조금은 부끄럽다.
체험학습 계획서를 제출하고, 보고서를 꼭 선생님께 내라고 당부하던 저녁. 아이는 내일 아침에도 꼭 그 얘기를 한 번 더해달라며 쪽지에다가 이렇게 적었다.
왜 이렇게 어렵게 썼을까.
이런 일도 있다. 한살림의 냉동식품을 좋아하는데, 곤드레나물밥을 꺼내서 프라이팬에 볶고 있을 때였다. 둘째가 포장 겉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곤드레나 물밥?"
물밥! 곤드레나 물밥! 김소영 선생님의 <어린이라는 세계> 속 어린이는 '드래곤 나물밥'이라고 했다던데. 우리 집 어린이는 물밥이라는 메뉴를 만들었다.
큰아이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다. 온 국민이 사랑하는 초코파이에는 한자가 적혀있다. 미취학 어린이였던 아이는 그 초코파이를 이렇게 불렀다.
'아홉 초코파이'
어떻게 아홉으로 읽었는지는 '情'이 굵은 붓으로 쓰여있는 포장지를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어린이들~!"
하고 목놓아 부를 때가 잦다. 프랑스 만화에서도 "Les enfants!"하고 부르듯이. 몇 개월 후면 큰아이가 중학생이 된다. 키도 나랑 몇 센티 차이도 안 나는데 더 이상 이렇게 부를 수는 없겠지. '어린이 하나, 청소년 하나!'하고 부를 수도 없고. '형제들~!'이라 부를까. 어린이일 때의 기록을 많이 해둘 걸 그랬다. 메모장에서 몇 년 전에 써 둔 '엄마는 미국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해?'를 보다가 이렇게 서술하고 보니 그때의 차 안 공기와 저 물음을 듣고 머릿속에서 맥락을 파악하려고 어리둥절해하던 내가 떠오른다.
아, 잊고 있던 단어가 하나 생각났다. 정말 무서운 단어 .
살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