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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Mar 28. 2021

땡땡이의 땡땡이

엄마는 걱정이 많다.

 "엄마, 나 오늘 학원 가기 싫어."

 아침밥을 먹으려고 마주한 식탁에서 큰아이가 한 말이다. 멈칫했다가 일단은 들어주었다.

 "그래? 오늘 학원 가기가 싫구나?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생각해보고 이따 학교 끝나고 다시 얘기하자."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학원 시간이 늦어져서 늘 여덟 시 혹은 아홉 시에 돌아오는 아이였다. 숙제가 많아서 낑낑댄 적도 있었지만 가기 싫다고 한 건 처음이다. 이제 중1인데 앞으로는 더 가기 싫은 마음이 불쑥불쑥 생기기도 하겠지? 나중에 정말 힘들어할 때도 있을 텐데, 조금씩 숨통을 틔워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 시간에 전화가 왔다. 아이에게 전화가 걸려 온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교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더니 바람 소리도 들리고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게 분명했다. 학원 가기 싫단 얘길 하러 뭘 이렇게 급하게 전활 하나 싶었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엄마, 나."

한다.

 "그래, 땡땡아. 아침이랑 지금이랑 마음이 같아?"

하고 물었더니

 "응? 안 들려."

 한다. 나는 교무실 밖으로 나가서 다시 묻는다. 그랬더니 짧게 말한다.

 "응-."

 나는 길게 말했다.

 "오늘 숙제는 했어?"

 "아니."

 "오늘 안 한 숙제는 다시 또 숙제가 되니까 하는 게 좋겠어. 또 오늘 안 간 수업에 대해서도 숙제를 내주실 수도 있어. 할 게 많아질 텐데 괜찮겠어? 일단 집에 가서 숙제하면서 좀 더 생각해보다가 엄마가 퇴근할 때 전화할게. 정말 안 가고 싶으면 학원에 엄마가 전화해줄게, 대신 엄마랑 데이트해야 된다~? 좋아?"

 "응."

 휴, 싫다고 그러면 어쩌나 싶었다.

 일을 후다닥 끝내고 부장님께도 오늘 아이를 달래러 그만 가보겠다고 말씀드리고(그래도 퇴근 시간은 지난 후였다는 거.) 나오다가 집 부근에 와서 전화로 아들을 불러냈다.

 

 멀리서 걸어오는 땡땡이는 어딘지 모르게 부 자연스러워 보였고 걸음걸이도 이상해 보였다. '쟤가 왜 저러나' 싶은 마음에 나는 더 쾌활하게 아이와 포옹을 하고 산만하게 주절거렸다.

 "땡땡아, 이 꽃들 좀 봐. 낮에 엄마랑 이런 데를 걸으니까 좋지? 이렇게 꽃도 보고."

 얼떨떨해하는 아이에게 혼자 자꾸 말을 걸었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친구 누구랑 얘기했어? 별일은 없었고?" 등등 아이의 낌새를 살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우리 어디 갈까? 엄마가 오면서 보니까 마카롱 집이 있던데. 어디 서점이라도 갈까? 여기 서봐, 사진 찍어줄게."

 부산스러운 우리의 걸음 앞에 문 닫힌 서점이 보였고, 아까 가려던 마카롱 집은 길을 잘못 들었나 안 보였다. 아무 골목을 지나는데 프랑스어로 된 가게가 하나 보였다. 마카롱, 초콜릿이 있다니 들어갔다. 색색깔의 마카롱, 초콜릿과 들려오는 샹송에 우리는 홀린 듯이 마카롱을 고르고 음료를 주문했다.

 나란히 앉아 들여다보는 땡땡이의 눈은 왜 그리도 슬퍼 보이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봐도 별 반응은 보이지 않고, 내 동공은 흔들렸다. 차려주신 마카롱과 초콜릿, 에스프레소와 쇼콜라 글라세가 맛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초콜릿 음료는 고급 초콜릿으로 만든 거라는데, 과연 맛있는지 아이에게 물었다.

 "땡땡아, 우리가 프랑스에서 먹던 앙젤리나 쇼콜라랑 비슷해?"

물었더니,

 "뭐? 몰라?"

한다. 나는 핸드폰에서 우리가 같이 먹은 앙젤리나를 찾아본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하고는 앙젤리나 가게에 가진 않았다. 앵발리드를 구경하다가 한켠에 있는 앙젤리나 부스에서 밤크림 몽블랑과 쇼콜라쇼 먹었던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기 기억나냐 묻고 우리는 함께 추억을 감상했다.

 "하핫, 도빵이."

 "너무 귀엽지? 이것 봐, 유치가 빠지기도 전이야."

 "내가 이런 표정을 지었어?"

 "얼마나 귀여웠다구!"

 두 남자 어린이의 무기박물관에서의 사진들-입장할 때 받은, 종이로 된 나폴레옹 모자를 쓰고 갑옷 앞에서, 대포 앞에서, 창 앞에서 찍은 사진들-은 땡땡이의 무표정한 얼굴을 풀어주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겨울 사진, 샤모니 몽블랑에 여행 가서 탔던 케이블카와 그 위 높은 곳에 올라 심장이 두근대고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던 기억, 두 아이들 입술이 보랏빛이던 일들은 지금도 우리를 웃게 하는 추억이 되었다.

 "이다음날에는 비가 왔잖아. 우리 작은 성당에도 들어갔었는데."

 "엄만 그걸 다 어떻게 기억해?"

 나는 아이에게 해줄 말이 떠올랐다.

 "땡땡아, 너는 프랑스에서 거기 학교도 다녔던 사람이잖아. 그때 얼마나 힘들었어~. 그 힘든 때를 견뎌냈는데 우리 땡땡이는 무엇이든 다 잘할 거야."

 고개를 끄덕이는 땡땡이가 그제야 빛나 보였다. 9월의 첫 월요일, 프랑스 초등학교로 향하던 아침이 생각난다. 나는 오늘처럼 괜히 부산하고 산만하게 아이들 기운을 북돋으려 애썼고 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문 앞에서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기다리는 내내 아이들의 표정이 어떨까를 생각하며 떨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는 또 아이들 손을 꼭 잡고 온갖 기운찬 얘기를 해가며 집으로 데려왔는데 그날 저녁 큰아이는 혼자 방 침대 위에 엎드려 조용히 울었다. 그때가 열 살이었나. 우리 아이가 그렇게 소리 없이 우는 걸 나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저 아이에게 주어진 일들이 얼마나 고달프면 저럴까 싶었다. 말은 안 통할 테고, 일곱 살 작은 아이는 형을 의지하며 울어댔을 거였다. 동생을 챙겨주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땡땡이는

 "엄마, 오늘은 도빵이 저쪽 학교에서 끝나니까 꼭 거기서 기다려줘."

이렇게 동생을 끔찍이도 생각해주었다. 둘의 끈끈한 관계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첫 등교하던 날의 무거운 발걸음

 카페에서 프랑스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면서도 땡땡이는 동생 사진을 보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는 동생 주자며 우리는 초콜릿을 정성껏 골랐다. 이건 도빵이 거, 이건 할머니 거, 이건 아빠 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여기 이 가게는 도빵이가 좋아할 만한 데라고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더니 가보자는 땡땡이. 수입품이라든가 남대문 시장에서 볼 만한 것들이 가득한 가게에 들어섰다. 작은 장식품과 철제로 된 갖가지 모양의 통을 보면서

 "도빵이 사다 주자!"

를 외치고 주방용품을 보면서는

 "여긴 할머니가 좋아하겠다."

를 신나게 얘기하는 큰아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몇 가지 물건을 고르고 값을 치르고 나와서는 둘이 셀카도 찍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큰아이는 쇼핑한 가방을 흔들며 기운차게 걸었고, 아까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진 하루를 보냈다. 내가 크게 해석해서 아이를 이상한 애 취급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들어주었나 싶기도 한데 어쨌거나 내가 잘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 안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낼 힘이 있다는 걸 믿어주고, 내 걱정이 더 앞서 나가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낸다.

 그렇지만 내 안에 생긴 또 다른 걱정은 학원 가기 싫다고 자주 말하면 어쩌나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근심이 생겼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둘째가

 "형 왜 학원 안 갔어?"

를 내게 따졌고, 그날 저녁에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며 억지로 학원 숙제, 학교 숙제를 했다는 것을 밝힌다. 조만간 꼬맹이랑도 데이트를 할 것 같다.



  *땡땡(TinTin)은 에르제의 만화 <땡땡의 모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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