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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May 02. 2021

중학생 아들과, 꿀 바른 그림책 모임

누구라도 그림책

 우리 동네 버찌책방에는 '누구라도 그림책'이라는 그림책 모임이 있다. 목요일 퇴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토요일 오전에 아직 자리가 있다는 말에 신청했다. 그림책에 관한 연수도 들어보았고, 중학생들에게도 종종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어서 관심은 있지만, 막상 신청하려니 우리 집에 소개할 만한 그림책이 있을까 싶기도 해서 고민하던 차였다. 책방지기님이 이번 모임에는 독서모임으로 배움을 이어나가고 싶어 하는 중2 여학생도 신청했다면서, 중학교에 있는 내가, 또  우리 중학생 아이가 함께 참여하면 너무 좋겠다고 했다. 우리 땡땡이가, 게임을 할 수 있는 꿀 같은 주말에, 과연 엄마랑 서점에, 그것도 독서모임에 갈 것인가, 나는 확신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한 번, 꼬드겨는 보았다. 용돈으로. 돈 얘기에 씨익 웃으면서 애매하게 대답하는 아들을 보면서도 '안 가겠지'하고는 나 혼자만 신청을 하고 말았다.


 테마가 '가족'이라고 해서 로버트 먼치의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라는 책을 골라두었다. 마침 작년에 이세 히데코 작가의 그림으로 새로 나온 책도 가지고 있던 터라 두 권을 꺼내 놓고는 토요일 아침, 다시 한번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게임을 하면서 건성으로

 "아니야, 아니, 갈까?"

했고,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자."

하고는 얼른 책방지기님께 한 명 더 가도 되겠냐고 DM으로 물었다.(마감이 되었다고는 스토리를 보았고, 코로나 시국이니까요.) 그래 놓고도 나만 옷을 갈아입고, 아이가 게임하는 걸 보면서 준비를 하다가 집을 나서기 직전 책방지기님의 전화를 받았다.

 "땡땡아, 자리 있대! 가도 된대!"

 얼른 땡땡이의 바지와 양말을 꺼내, 입게하고 이 아이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책방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환희로 가득 찼다. 그림책 모임에 간다는 것 자체로도 설레는데, 큰아이와 함께라니 이런 기회가 어디 있겠나 믿을 수 없었다.

 "엄마가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읽을 건데, 뒷부분은 땡땡이가 읽어주면 좋겠어."

 "난 안 해도 돼."라고 아이는 말했다. 그래, 너는 그냥 듣기만 해도 된다-하면서 도착한 책방에는 다정한 모녀와 인생선배님, 책방지기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책을 정말 좋아하나 봐요. 어떻게 중학생이 여길 다 왔어요."

 이런 찬사를 들으며 참석한 모임에서 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분을 느꼈는데, 전에는 아이를 대신해서 말하거나 아이의 입장에 대해 대변하는 엄마였다면 이제 중학생 땡땡이에게는 그럴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너무 오랜만에 마주한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게, 유치원 공개 수업 때의 학부모 때 이후로 거의 처음 같았다. 초등학교 공개수업은 -많이 가지도 못했지만- 참관 정도였고, 담임선생님과의 상담도 아이 없이 이루어졌으며, 아이와 함께 학원엘 가도 상담할 때조차도 부모와 분리되어 시간을 보내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중학생 아들 옆에서 동등하게 참석하는 책 모임은, 아이를 어엿한 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첫 번째 기회였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닉네임으로 소개를 하는 것에서부터 아이가 어떻게 자신에 대해 말할까 궁금했는데, 막상 들으면서 '아, 이제 여기, 이 아이의 말에 내 자리는 없구나.'를 느꼈다. 이렇게 많이 컸구나. 이것은 아이가 한 말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느낌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여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에 대해, 이 모임에 대한 기대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했고 그에 비해 우리 아이는, 내용은 비어 있는 말을 하였지만, 그래도 아이는 주체였던 거다!


  '가족'을 테마로 한 그림책 모임에서 마침 다정한 딸의 어머님과 내가 가져온 책이 같았다. 모녀는 나란히 한 권씩 책을 준비하셨고, 우리는 내가 준비한 책만 두 권이어서 내가 먼저 읽어도 되겠냐 양해를 구하고 책을 읽었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레이첼 딸의 첫 생일 파티 때, 아무런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던 조이가 즉석에서 골라 읽었던 책으로, 이제 막 엄마가 된 레이첼을 펑펑 울게 한 책이다. 아무래도 부모에게 더 와 닿는 책이긴 하지만, 나는 5월 어버이날을 즈음할 때마다 중학생들에게 읽어주며 뭔가를 좀 느껴보라고 하곤 했다. 오랜만에 소리 내어 읽는 책은, 내 옆에 앉아 있는 십 대 소년 때문에 색다르게 느껴졌다. 특히 십 대 소년에 대한, '그 다 커버린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거립니다' 부분에서 목이 메어 조금 당황했다. 분명히 어렸을 때에도 우리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책인데, 아이가 이렇게 크고 보니 남달랐던 모양이다.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간 부분에서는 땡땡이에게, "여기부터는 땡땡이가 읽어주면 안 돼?"하고 바통 터치를 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아이가 이어 읽어주어서 고맙고 기뻤다.

 책방지기님은 울컥했던 나를 배려하며, 그림책이라는 게 누가 읽어주는 경험도 어른으로서는 처음이고, 자신이 소리 내어 읽으면서도 뭔가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며 말씀해주셨고, 참여해주신 분들도 모자가 함께 읽어서 좋았다는 덕담을 해주셨다.


 이어지는 책 소개에 나는 정말 그림책에 푹 빠져서 책을 보고 들었고, 그것은 내 옆의 십 대 소년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처음 보는 그림책과, 발견하는 의미들로 어느덧 시간은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너무 정형화된 가족에 대한 책을 준비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가족을 확장하여 생각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하신 분도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에서 독립한 아들이 잠들었을 때 어머니가 찾아간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할 말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새로 나온 이세 히데코 그림, 김하루 작가의 새 번역 부분에는 그 부분이 바뀌어 있다. 우리는 함께 이세 히데코의 수채화를 감상하면서 분한 마음을 다독였다.


 모임을 마치면서 소감을 나누었다. 나는 오늘 알게 된 <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처럼, 오늘의 두 시간이 우리 아들에게 특별한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고, 이렇게 아들을 불러준 책방지기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렸다. 땡땡이는 또 뜻깊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지만, 오래 앉아있어서 다리가 아프다는 말과 함께 오늘 이 시간이 괜찮았다고 말해주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아이가 말했다.

 "엄마가 돈까지 주면서 같이 가자고 한 게, 뭔가가 있을 것 같았어. 엄마가 진짜 같이 가고 싶은가 보다 했지이."

 이 녀석, 내 마음을 알고 있었구나! 어쨌거나 이 아이가 꼼짝 않고 내 옆에서 보여준 집중력에 대해 놀랐다. 아이는 사람들이 그 작은 그림책 하나를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냐며 놀라워했다. 자기는 못 할 것 같은데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대단하다면서.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 건 맞는 것 같다.

 다음에 또 같이 가겠냐는 물음에는

 "그건 미래의 내가 알겠지."

라는 시크한 대답으로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림책 모임을 중학생 아들과 함께한 엄마는 많지 않겠지? 정말 좋아서 참여한 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 하나로, 물론 용돈도 있지만, 내 곁을 지켜준 아이에게 무척 고맙다. 용돈 준다는 건, 다른 식구들에게는 비밀이라고 내가 땡땡이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는데, (특히 둘째에게는) 그날 저녁 금세 내가 먼저 말해버렸다. 그림책 모임의 신통한 시간에 대해 신나게 말하다가 그랬다. 비록 이번에는 꿀 바른 당근이 있었지만, 언젠가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책에 관련한 모임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에게 책은 늘 꿀 바른 무엇이었으면 좋겠고, 실은 첫째보다 둘째가 그 문제에 있어서 시급하다는 게 내게 큰 고민이라는 것으로 글을 마쳐야겠다. 둘이 신나서 얘기하고 놀다가도 땡땡이가 책을 읽으면, 우리 둘째는 그 옆에서 너무 당연하게 뒹굴거리는 풍경이 일상인 거다. 대신에 형아에게 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가, 다음에는 자기도 그림책 모임에 데려가 달라고 해서 나는 또 헤벌쭉 웃는다. 다른 속셈은 있겠지.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이세 히데코 그림,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의 한 장면



@ 로버트 먼치 글, 안토니 루이스 그림, 김숙 옮김,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B.B아이들

@ 로버트 먼치 원작, 이세 히데코 그림, 김하루 글,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북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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