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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Apr 25. 2021

편견을 걷어내는 아이의 시선

아이로부터 배우는 어른,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교사

 일곱 살, 열 살의 아들들을 태우고 학교에서 오는 길이었다. (배경은 낭만의 도시 파리였는데, 배경일뿐이었다.) 신호 대기 중인 내 시야에 들어온 건, 공사를 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 밖으로 임시로 만들어 놓은 건물 높이의 외부 펜스는 위태로워 보였다. 엄마 모드로

 "얘들아, 저기 일하는 아저씨들 봐봐. 힘들겠지?"

라고 말했다. '저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된다'라고 말해줘야겠다면서.

 "응, 위험할 것 같아."

 큰 아이가 대답했다. 내가 뻔하디 뻔한 말을 꺼내려는 순간,

 "저런 일을 하려면, 진짜 잘해야겠다. 그래야 튼튼하게 짓지."

어떤 논리로 저렇게 말하는지를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응, 맞네.' 응수하고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웠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도 있는데, 나는 너무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논리를 아이에게 주입하려고 했지 않은가! 아이는 아이답게 건물을 짓는 일이라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안전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있는 그대로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삶이 반영된 문학 작품으로 최일남 작가의 소설 <노새 두 마리>를 중학생들과 함께 탐구했다. 가장으로서의 노력과는 별개로 급속도로 발전하는 사회에서 뒤처지고 만다는 소설은 비극을 향해 치달았다. 주인공을 힘들게 하는 사회에 대해 알아보고 소재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 공부했다. 생활 속에 적용하기 위해 현재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보았다. 내가 준비한 것은 이종철의 <까대기>와 조정진의 <임계장 이야기>였다.

  소설에서 아버지는 노새 마차를 끌며 연탄 배달을 한다. <까대기>의 주인공은 택배 일의 일부를 담당하는 '까대기', 즉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일을 한다. 이종철의 만화 <까대기>는 만화를 그리는 것만으로는 당장 돈을 벌 수 없어 시작한 하루 4-5시간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이바다의 이야기이다. 물론 작가의 경험이 투영된 작품이다. 커다란 트레일러와 자동으로 굴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전산화되고 자동화되는 시스템에도 사람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곳은 꼭 있다. 우리에게 직접 택배 상자를 가져다주는 택배 기사뿐만 아니라 까대기 일도 그렇다. 채널예스의 작가 인터뷰에 목장갑과 관련된 에피소드 만화 두 쪽이 소개되었는데, 사람을 목장갑과 같은 소모품처럼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해, 학생들에게 읽어 주었다.

 조정진의 <임계장 이야기>는 <노새 두 마리> 속 가장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생계유지와 가족 부양을 위해 일한다는 점은 어떤 노동자나 같을 것이나, <임계장 이야기>의 그는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공기업에서 38년간 일하고 은퇴한 그에게 찾아온 건 안락한 노후가 아니라 빚 독촉이었다. 작가님이 JTBC에서 한 인터뷰를 학생들과 함께 보았다. 방한복을 달라는 말에 "노인도 추위를 타요?", 미세먼지에 취약한 건물에서 일하면서 마스크를 달라고 하자 "노인네가 얼마나 오래 살려고?" 했다는 말을 들으며 학생들은 어이없어했다.


 두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작가 인터뷰 영상을 보고 각각의 인물과 그 인물을 힘들게 하는 사회에 대해 공책에 표를 그려 정리해보았다. 비교 감상을 한 후의 느낀 점도 적도록 했다. 단순한 감상 말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해보면 좋겠다고 말을 건넸다. 단 두 줄로 감상을 적은 학생도 있었고, 여섯 줄 정도나 되는 감상 및 의견을 피력한 학생도 있었다.

 사실 시험 직전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책을 소개해 비교 감상하겠다 말했을 때 어떤 아이는

 "시험에 나와요?"

를 물었다.

 "선생님은 소설을 분석하는 것보다 이 소설이 지금의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생활에 적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사는 사회는 어떤지, 또 과거를 담은 작품이 내가 살고 있는 2021년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찾는 게 더 중요하지요."

힘주어 말했다. 시험 문제를 푸는 것보다 내게 주어진 환경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더 중한 일인데. 나름대로 가치 있는 활동을 준비했다고 했는데, 시험 문제 운운하는 학생들 앞에서 약간 기운이 빠졌지만,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것도 어른이니 할 말이 없다.

 학생들이 느낀 점을 적는 내내 나는 몇 년 전, 두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내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또 부끄러웠다. 이렇게 이중적인 내가 다시 아이들 앞에 서서 떠들고 있다. '너희들도 힘들게 살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돼.'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내가 부끄럽고, 지금 내 주위에 앉아서 답을 찾고 있는 학생들의 부모들 대다수도 나와 비슷할 거라서 또 부끄러웠다. 나는 얼마나 위선적인가.

 

 조정진 작가님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씀을 해주신다.

 "노동 자체는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노인의 노동 가치를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 그게 편견이죠."

 노인의 노동이든, 청년의 노동이든 그 가치는 같다. 몸을 써서 일하든, 그렇지 않든, 혹은 예술 작업을 하든, 그 노동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


 <<노새 두 마리>>라는 소설은 경찰서로 향하는 아버지의 힘없는 뒷모습으로 끝이 나지만, 그 아버지를 뒤따르는 어린 아들이 있다는 것에 나는 작은 희망을 찾았다. 비록 아이는 작고 약하지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웃어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살기에 바쁘고, 당장 내 식구만 잘 지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어른인 나 또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아직은 생각이 굳어지지 않은 말랑말랑한 학생들이 있기에 조금씩 반성할 수 있다.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보면서 어른은 배운다. 조금씩 더 푸르러질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 이종철, <까대기>, 보리

@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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