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는 통통하고 키가 작다. JR은 홀쭉하고 키가 크다. 바르다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1928년생 할머니이자 현역 영화감독, JR은 바르다가 젊은 시절 만났던 영화감독과 같은 나이인 33세의 청년 사진작가이다. 카메라를 통해 만난 두 사람의 55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여정을 그린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영화의 인트로는 두 사람의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된다. 통통하고 작은 키의 귀여운 바르다가 종종거리고 걸어가면 큰 키에 롱다리의 JR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미소가 번지는 첫 화면.
두 사람은 영화 속 화면에서 서로 스쳐 지나간다. 만났음직 한데도 만나지 못하는 우연의 연속.
JR의 영화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은 카메라라는 매체를 통해 비로소 만나게 된다.
http://movie.daum.net/moviedb/video?id=111659&vclipId=57598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카메라라는 매체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프로젝트를 편집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하고, 권력과 부를 소유하거나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다. 오래된 탄광촌에서 가장 늦게 떠나는 것이 소원인 할머니, 사람들이 모두 떠나 쇠락한 마을을 다시 찾은 사람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노동자의 아내들.
http://movie.daum.net/moviedb/video?id=111659&vclipId=57670
두 사람은 이들의 사진을 촬영하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사진으로 출력해서 그들의 삶의 장소에 붙인다. 역사나 어떤 책들도 기록하지 않는 삶의 이야기를 세상에 끌어내어 그들이 자신의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
두 사람은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작은 의자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마지막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바르다다. JR은 바르다의 작은 발, 노안으로 침침해져서 더 이상 세상의 많은 것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는 바르다의 눈. 그리고 바르다의 손을 촬영한다. 그리고, 이 사진은 화물 열차에 붙여진다.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많은 여행을 하기 힘든 바르다를 대신해서 바르다의 사진은 세상을 행해 떠나간다.
엔딩. 다시 등장한 종종걸음의 바르다와 겅중겅중 JR.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애니메이션이 종종거리고 걸어 다니는 긴 엔딩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영화를 보았던 대부분의 관객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언젠가 '로큰롤 인생'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우연히 시사회에 당첨이 돼서 보게 되었는데, 제목만 보고 나이 드신 분들이 로큰롤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영화인가 생각하면서 갔다가 매우 감동을 받고 돌아온 영화였다.
영화는 나이 든 분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본 것이 십여 년 전이었으니 아마도 그 영화에 나왔던 분들은 대부분 유명을 달리했을 터.
합창단원들의 평균 나이 82세. 간단한 가사 두줄을 외우는데 두 달이 걸리는 사람들. 산소호흡기가 없으면 삶을 이어가기 힘들 사람들. 92세가 넘은 할머니. 단장은 54세. 심지어 공연을 준비하다 유명을 달리하는 합창단원.... 그럼에도 모두들 힘차게 노래한다. 그분들의 노래는 노래가 아닌 삶. 마치 로큰롤처럼 힘차고 흥겨운 삶.
그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 한 동안 삶의 무상함과 삶의 소중함을 동시에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 속에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젊은 시절이었는데, 왜 그런 감정을 가졌었는지....
이 영화를 찍을 당시 바르다의 나이는 88세. '로큰롤 인생'과 이 영화가 일정 부분 겹쳐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들이 많아짐을 느낀다. 나이가 주는 사회적인 역할과 나이에 대한 기대 같은 것도 있고, 아직도 궁금한 것이 참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이에....' 하는 생각으로 주춤거리게 되는 순간이 늘어감을 느낀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누구나 우리 안에 흥겨운 로큰롤을 연주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사진이 이 세계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사진을 정적이고 재미없는 예술 매체로 생각해왔던 사람들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