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킨 거리에서
모스크바 시청 근처
푸시킨 공원,
아름다운 분수 앞에 잠시 앉다.
스무날 걸어 고단해진 다리는
아침부터 저린 듯 아픈 듯 나를 괴롭힌다
푸시킨 공원,
푸시킨 미술관, 푸시킨 동상을 거처 푸시킨 거리,
공사장 가림막에 인쇄된 그의 사진까지
정말 많은 푸시킨을 만났는데
정작 나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두 줄 사이에서 생각이 멈춘다
그가 살았다는 아르바뜨 거리 푸시킨 부부의 동상과
갖은 포즈로 사진도 찍고
푸시킨 미술관에서 그림도 보고
푸시킨 거리 푸시킨 호텔에서
하룻밤 잠을 청하는 호사도 누리고
푸시킨이 자주 찾았다는 푸시킨 카페를 찾아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어느 러시아 요리도 먹어보고
푸시킨이 수학했다는 궁전 앞에서
푸시킨의 삶은 어떻게 그를 속였을까
궁금해해도 보고
다시 돌아와 푸시킨 공원,
그의 동상 앞에서
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또 한 장의 인증샷을
남
긴
다
러시아 국민시인이라며,
아름다운 젊은 아내의 명예를 지키려
결투하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며,
그 죽은 뒤 아름다운 아내는 바로 재혼했다며
동상이 된 시인의
헛된 사랑이 딱한 건지
위대한 시인도 몰라보고 그 머리에 앉은 비둘기와
비둘기 한 마리도 스스로 못 치우는 시인이 딱한 건지
단 두 줄 시구보다
동상으로, 거리 이름으로, 박물관으로,
미술관 이름으로 수많은 푸시킨을 기억하고 있는
내가 딱한 건지
그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더 이상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푸시킨을 바라보며
시인보다 비둘기보다
스무날 고생한 딱한 내 다리를 먼저 위로한다
이국의 아름다운 거리에서
좌측:모스크바의 푸시킨 공원의 동상/중앙: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의 푸시킨 초상화,푸시킨이 수학한 예카테리나 궁전,공사장 가람막의 푸시킨/우측:모스크바의 푸시킨 카페
모스크바 푸시킨 거리의 푸시킨 호텔과 프런트 모습
* 아르바뜨에 있는 푸시킨 부부의 동상.
13세라는 많은 나이 차이의 두 사람은 푸시킨의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했다. 당시 러시아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여인들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도 먼저 남편을 선택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나를 선택해 청혼해 주기를 기다릴 수 있을 뿐. 그러다보니 많은 경우 집안의 강요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었고, 이는 러시아의 풍속화로 남아있기도 하다.
푸시킨의 아내 곤차로바는 그가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투를 하다 죽은 후 바로 재혼했다. 그녀는 그만큼 그를 사랑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동상이 해줄 것 같다. 동상에서 두 부부의 손은 슬쩍 얹어져있을 뿐 맞잡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