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수업
'오래된 수업'이란, 최근에 한 수업이 아니라 이미 미술수업으로서의 시효가 지났을지도 모를 십 수년 전의 수업들에게 내가 붙인 이름이다. 미술교사로 근 30여 년이 되었으니, 그간 해 본 수업은 헤아리기 어렵다. 어떤 수업은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수업은 다른 사람의 수업을 벤치마킹해서 내 나름대로 재구성해서 진행한 것이니, 미술 수업에서의 독창성이란 것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요즘 외장하드를 정리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세상에 나와 보편화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니 외장하드의 수업 자료들도 가장 오래된 거래야 2004-5년 무렵의 것이다. 화질을 비교해보면, 지금 핸드폰 카메라보다도 못한 화질에, 색상도 그다지 잘 구현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자료의 내용은 2018년 오늘의 눈으로 볼 때 매우 흥미롭다.
미술수업도 유행이 있다.
미술 수업도 유행이 있다. 한 때 각광받았던 수업이 지금에 와서는 고리타분한 수업으로 외면당하기도 하고, 한 때 외면당했던 수업이 세월이 흘러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부여받아 '참 괜찮은' 수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교직에 들어선 80년대 후반은 격동의 시기였다. 격변하는 사회를 반영이라도 하듯 미술교육에서도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많은 담론들이 오갔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당시에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주제 중심의 수업이 많이 논의되었다. 정물화, 풍경화와 같은 장르 중심의 미술수업,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지 못하는 무표정한(또는 그렇게 여겨졌던) 미적 가치에 대한 수업보다는 일하는 사람들, 학생들의 생활 모습과 같이 삶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수업, 공동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수업들이 주목을 받고, 또 많이 시도되었다. 19세기 리얼리즘 미술이 탄생하듯, 나는 이 시기가 미술교육에서의 리얼리즘의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또 서양미술 중심의 감상수업에서 벗어나 답사를 통해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찾는 미술교사들이 생겨나고, 슬라이드 필름으로 직접 현장의 모습을 담아 수업에 반영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담지 못했던 미술 교과서는 대부분의 미술교사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했다.
지금 미술 수업의 흐름은 가치에 대한 수업보다는 미술이 갖는 본연의 미적 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시기인 것처럼 보인다. 색, 형 등을 비롯한 시각에 대한 탐구, 미술 본연의 가치에 대한 탐구를 담은 수업이 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서 첨단 매체를 미술 수업에 활용하는 등 수업 내용도 다양해지고, 매체의 발달로 수업 자료도 풍부해졌다. 불과 20여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없었던 모습이다. 또, 개개의 수업 주제를 고민하는 데서 나아가 미술교사의 수업 철학에 따라 체계적인 교육과정의 고민을 통해 수업과 수업 사이의 연결뿐 아니라 다른 교과와의 융합 수업을 시도하는 등 미술 수업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수업에 대한 고민이 변하면서 같은 수업이 새롭게 해석되어 과거와 다른 가치를 부여받고 새롭게 부활한 수업들도 있다. 예를 들어, 시아노타이프(청사진) 수업은 과거 판화수업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런데 최근, 과학과와의 융합수업으로 재해석되면서 그 가치를 새롭게 부여받고 있다. 또, 스트링 아트 수업 역시 수학과 미술의 융합 수업 사례로 시도되고 있다. 80-90년대 초에는 이 수업들이 이런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문학에서 고전을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듯 미술수업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어 재구성되고 재탄생되고 있는 것이다.
학생 미술작품으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싶다
또, 학생들의 작품을 통해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어른들도 깜짝 놀랄 만큼 이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작품을 보면서, 이 아이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오래된 수업'은 미술 수업으로서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 시효를 다한 수업일 수 있다. 하지만, 시대를 읽는 창으로서 '오래된 수업'의 가치는 유효할지도 모르겠다. 당분간은 '오래된 수업'으로 지난 시간을 한 번 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