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 만들기

알 속에 숨겨놓은 미래의 꿈

by 김경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요즈음 아이들도 데미안을 읽을까? 나는 그 책을 중학교 때 읽었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남달랐던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에는 한국문학전집, 세계 문학전집, 헤세 전집, 펄벅 전집을 비롯한 각종 전집들이 책창을 채우고 있었다. 그 시대에 이런 정도의 장서를 가지고 있었다면 잘 사는 집이었겠구나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다만, 배움에 대한 진한 갈증을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 덕분에 옷은 대충 입어도 책만큼은 원하는 대로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 패션 감각은 완전 제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데미안'을 딱히 잘 이해했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어쩌고 하는 구절만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라는 종교의 이름을 알게 되었던 것도.

당시 교내 미술전시회의 모습 / 우, 치과의사가 꿈인 학생의 알.
사춘기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시기?


이 수업은 2005년의 수업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의 수업이다. 그리고, 이 수업은 내가 만든 수업이 아니다. 내가 했던 다른 많은 수업들처럼 다른 교사들의 수업을 밴치 마킹하여 내 나름대로 진행한 수업 중 하나이다. 내가 고안한 수업이 아니니 최초 수업하신 선생님의 정확한 의도야 알 수 없으나, <알 만들기> 수업은 필시 알에 대한 위와 같은 상징으로부터 출발한 수업이었을 것이다.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한다. 자아가 생겨나고, 사회적인 안정을 이룬 어른들의 세계와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해보는 시기이다.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서툴고 어색하게, 그리고 때로 조심스럽게, 때로 거칠게 자신의 주장을 내밀어 보는 시기이다. 어린 자신으로부터, 부모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부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시기. 투쟁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적 관계를 배워나가는 시기, 그리고 온갖 편견으로 똘똘 뭉쳐진(?) 이 시기야 말로 알에서 나오고자 투쟁하는 새의 시간일 것이다.

사춘기의 꿈들은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기 때문에 패기만만하고 허무맹랑하며 자유롭다. 사춘기의 꿈대로 삶이 펼쳐진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살만 할 것인가? 하지만, 기고만장하고 패기만만했던 시기는 얼마나 덧없고 짧게 지나가던가. 알에서 나온 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알을 깨고 나온 환희이던가? 아니, 그보다는 숲 속에 숨어 어린 새를 노리는 매나 독수리이기 십상이다.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서기 위한 새의 투쟁의 시간은 그래서 더 달콤하고 아름답다.

만화가가 꿈인 학생의 알과 교사가 꿈인 학생의 알.
'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드릴 수 있는' 성형외과의가 꿈인 학생의 알과 약사가 꿈인 학생의 알.

자료를 정리하던 중 미술 선생님들의 밴드에 이 수업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몇몇 선생님들이 관심을 보였다. 알 속에 미래의 직업을 표현한다는 수업 소재가 최근 사회적 관심을 듬뿍 받고 있는 진로 수업의 관점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수업을 했던 2005년에는 진로교육을 지금처럼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시대가 변하여 새로운 교육 과제가 생기고, 그 과제의 눈으로 보아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수업이라니. 어느 분이 고안하신 수업인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풍선에서 알까지

알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풍선을 크게 분다. 풍선 외곽에 A4용지를 잘라 빈 틈 없이 서너 겹 붙인다. 너무 두껍게 붙이면 자르기 어렵고, 너무 얇게 붙이면 힘을 받지 못해 쪼그라진 알이 된다. 쪼그라진 알을 보면 화가 나서 수업을 계속하기 싫어지니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과정일 수도 있겠다.

알을 만들고 나면 2/3 정도의 지점에 칼집을 내어 반으로 가른다. 이 위치는 모두 같을 필요가 없고, 각자 구상한 대로 하면 된다. 위 1/3 지점이 뚜껑, 아래 2/3 지점이 바닥이 되는 것이다. 그다음, 지점토를 두 개 준비한다. 하나는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바닥 부분의 풍선에 붙이고 잘 말려둔다. 뚜껑과 바닥은 내용을 완성한 후에 각각 구멍을 뚫어 고무줄로 묶어준다. 이렇게 하면 뚜껑이 달아나지 않고 열고 닫기 쉽다.

약사가 꿈인 학생의 알.

남은 지점토 한 개로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입체 작품으로 만들어 잘 말린 후 채색해서 알 속에 넣고 본드로 고정한다. 이때 지점토 외에 주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이 있으면 자유롭게 활용한다. 예를 들어 영화감독이 꿈인 학생의 알을 보면 비디오 테이프를 분해해서 그 부품을 활용했다. 이 수업을 하던 시대는 모든 것을 손으로 해결하던 시대였으니 지점토를 사용했으나 요즘 같으면 사진을 활용하면 좀 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테입을 분해한 후 내용물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작가가 꿈인 학생의 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하지 마시라

이 수업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나의 조언은 중학교 1,2학년의 어린 학생들과는 '이 수업을 시도하지 마시라,' 이다. 이 수업, 절대 만만한 수업이 아니다. 나는 이 수업을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과 주당 2시간, 거의 두 달 동안 진행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이 실패를 경험했던 수업이었다. 오죽하면 이 좋은 소재의 수업을 한 번 하고 말았겠는가. 잘 만드는 일부 학생들의 작품을 전체 학생들의 성취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가치 있는 수업일지라도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따른 성취 수준을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한다면 그 수업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독이 되기 쉽다. 만일 손의 기능이 충분히 발달하고, 오랜 시간 같은 주제의 수업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고학년이라면 이 수업은 좋은 수업이 될 것이다.

스튜디어스가 꿈인 학생의 알'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드리는' 성형외가의가 꿈인 학생의 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연예인에 대한 동경. 가수가 꿈인 학생의 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 오래된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