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놀이를 하고 놀았었구나.
2005년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은 어떤 놀이를 하고 놀았을까? 당시 했던 놀이 조소 수업 결과물을 잘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놀이를 찾아볼 수 있다. 마피아 놀이, 시체놀이, 팔씨름, 게임계의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는 공기놀이, 술래잡기, 말뚝박기, 여자들의 전매특허 수다 떨기 까지, 다양한 놀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중 한 장의 사진이 내 눈길을 끌었다. 부릅뜬 눈이 공포스러운 그 사진은 시체놀이를 표현한 작품 사진이다.
이 한 장의 사진
당시 아이들이 했던 엽기적인 놀이가 있었으니, 바로 기절놀이와 시체놀이란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놀이는 학교 일진 문제와 얽혀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던 놀이었다.
시체놀이란 특정 공간에 모인 아이들이 마치 실제 죽은 사람처럼 연출을 한 다음 이를 찍어서 SNS에 올리는 놀이다. 일설에 의하면 외국의 플랜킹 (Planking)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똑같은 놀이라기보다는 플랜킹의 일종으로 보였다. 플랜킹은 사람이 마치 판자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전혀 있을 만한 곳이 아닌 곳, 예를 들어 선반 위나 계단 손잡이, 난간 등에 걸쳐져 있다든지 하는 식으로 연출하는 것으로, 시체놀이는 여기서부터 파생했지만 마치 죽은 사람처럼 연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시체놀이에 대한 뉴스를 검색해보면 가장 최초의 기사가 2003년으로, 그 이전 자료는 찾기 어렵다. 그런데, 2018년 현재까지도 시체놀이를 계속하고 있는 기사를 검색하게 되어 깜짝 놀랐다. 당시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가 되었으나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잊힌 놀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부 연예인들이 여전히 이 놀이를 하는 사진을 웹상에 올리고 있었고, 외국의 뉴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절놀이는 다른 사람의 목을 졸라 순간적으로 기절시키는 엽기적인 놀이다. 그 해 기절놀이에 대해 아침 조회시간에 훈화를 했던 기억이 남아 있을 정도로 문제가 되었던 놀이였다. 기절놀이를 하다 생명이 위독해진 학생들도 있었고, 일진이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과정에서 기절놀이를 시켰다가 그만 숨지기도 하는 사건들이 뉴스를 도배했다. 2005년은 일진과의 전쟁이 있었던, 학교의 입장에서는 참 힘든 해이기도 했다.
2005년 풍경 하나, 일진과의 전쟁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 같다. 몇 년 전 학교와 사회를 힘들게 했던 학교 폭력 문제가 2005년에도 있었다. 그건 바로 학교 일진 문제였다. 한 교사의 고발로 시작된 일진과의 전쟁은 신문을 뜨겁게 달군 핫이슈였다.
당시 기사 중 가장 나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학교 간 일진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다가 집단 패싸움이 나서 다쳤다든지 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시작한 일진 조직이 사회 폭력 조직이 되고, 학교의 일진을 통해 자신의 조직원을 영입해왔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일진회 조직은 중학교, 고등학교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키워왔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일진회는 중학생들에 의해 조직된다. 중학생 일진회는 자신들이 졸업한 초등학교를 찾아가 5〜6학년 중 싸움 잘하는 후배들을 찍어 유흥가로 데리고 다니며 술과 담배를 가르친다. 이런 아이들을 중심으로 초등학교 일진회가 구성되고, 이들이 졸업해 중학교로 진학하면 신고식을 거쳐 정식 일진회원이 되는 식이다. (국민일보 [포커스] '일진회 폭력 충격' 기사 중에서(2005.03.11.)
그 교사의 이야기에 의하면 전국의 일진은 40만을 헤아린다고도 하였다. '학교마다 학년마다 열 명정도의 일진이 있다고 보면 40만 명도 그다지 과장된 숫자가 아닐 것'이라는 전문가의 인터뷰도 함께 소개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일진회 활동이 이렇듯 왕성해진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교육정보화 사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 일진회와 지금 일진회는 다르다. 지금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가입해 있다. 이것은 우선, 2000년 정부가 추진한 교육정보화 사업과 관련이 있다. 그때 전후로 일진회원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학교 안에 인터넷이 깔리자 이를 통해 자기들끼리 정보 교환하는 게 늘었다. 그러니까 어른들을 속이기도 쉬워졌고, 오프라인에서 굳이 만나지 않아도 조직원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다음은 선행학습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다 배우고 오기 때문에 학교에 오면 놀고 싶어 진다. 노는 게 바로 일진회 활동하는 것이다..(교육청・경찰 '일진회 해체' 가속 기사 중에서. 2005.03.16.)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일진회는 인터넷 카페를 활용했다. 카페에서 정보를 나누고 작전을 짰으며, 괴롭히던 학생이 그들을 피해 전학을 가면 인터넷으로 전학 간 학교의 일진과 연락을 해서 괴롭힘을 지속시켰다. 이것은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내용들이었다.
곧이어 다양한 해법이 뒤따랐다. 일진회를 일망타진(?) 시키기 위해 경찰이 총 출동했다. 자수하는 일진 학생들은 처벌하지 않는다고 자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고교 일진회를 어떻게 탈출 시켰는지 발표회를 하기도 했다. 일진 학생들을 병영체험을 통해 선도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폭력을 통해 폭력을 선도한다 하여 인권침해라는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진과의 전쟁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회나 학교의 풍경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진 숫자를 파악해서 보고하라는 공문이 시행되었고, 학교는 몇 명의 일진을 계도했는지 보고해야 했다. 당시 학생부장 선생님은 조금이라도 문제를 가진 학생들까지 일진 통계에 포함시킨 공문을 보내면서 괴로워했다. 교사들 모두가그 아이에게 문제가 있기는 하나 일진은 아니라는데 동의했다.
‘교육적 해결’이 학교와 학부모, 학교와 관련된 사람만 나서서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가 문을 열어야 한다. 지역 법률가, 상담가들을 학교로 끌어들이고 지역사회와 통합적 공동 네트워크를 만들어 접근해야 한다.(교육청・경찰 '일진회 해체' 가속 기사 중에서. 2005.03.16.)
윗글은 2018년이 아니라 2005년 신문 기사 좌담회 내용이다. 놀랍지 않은가? 하긴, 어떤 문제든 근본적인 해결책은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스쿨폴리스제(학교 경찰 제도)에 반대하는 것만이 교육적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도는 신중히 시작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비슷한 제도(스쿨 서포터 제도)가 있는데, 퇴직 경찰이 학교의 특징, 학생들의 심리구조, 폭력 구조 등에 대해 엄청난 교육을 받고 지역사회와 학교의 동의를 받은 뒤에 들어간다.(같은 글)
아마도 스쿨 폴리스제도가 이때부터 이야기되기 시작했던가 보다. 지금은 모든 학교에 학교 지킴이 선생님이 계신다.
기절놀이, 일진들의 놀이
한 번은 수업을 들어갔다가 얼굴이 벌게진 학생 때문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기들끼리 기절놀이를 하느라 숨이 막혀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절놀이가 일진들만의 놀이가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 학생이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들을 하루종일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침, 저녁으로 훈화를 하더라도 학생들의 은밀한 놀이는 계속되고 있었다.
물론 기절놀이는 일진들이 일반 학생들을 괴롭힐때 자주 사용한 폭력 중 하나였다. 신문기사 제목에서 보듯 목숨을 잃은 학생들도 있었으니 놀이라는 미명하에 가해진 잔인한 폭력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일진이란 표현을 들은 것도 꽤 된 것 같다. 일진은 없어졌을까? 아니면, 아이들이 은밀한 놀이를 숨기듯 더 은밀한 곳에 숨어있는 것일까.
시체놀이와 플래시 몹
놀이라는 게 본래 무목적성이 가장 큰 속성이기는 하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놀이 중 하나가 시체놀이인 것 같다. 아이들은 그냥 재미있다고 했다. 죽음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하나의 놀이로 소비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래의 글은 이 시체놀이를 플래시 몹의 하나로 보는 글들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44487
2003년 9월 20일 저녁 7시, 서울 명동 한 복판에서 벌어진 이 플래시 몹에서 사람들은 시체놀이를 보여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 기사에서 시체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니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시체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최소한 2003년 이전일 것이다. 다만 이를 위험한 놀이라기보다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일탈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혼자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일도 여럿이 모이게 되면 행동에 옮길 용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음 글은 2004년 오마이뉴스 기사이다.
https://news.v.daum.net/v/20040510051814568?f=o
위 기사에서는 서태지의 신곡 방송금지에 항의하는 팬들의 플래시 몹, 3.1 운동에 대한 플래시 몹과 같은 목적성을 띤 플래시 몹도 소개하고 있다. 또, 2005년 1월 다른 기사에서는, 미국 대통령 조시 w 부시의 2기 취임식에서 ‘워싱턴 반전네트워크’(DAWN)가 이라크에서 희생된 미군과 민간인들을 위해 부시의 취임 선서 때 직장 등 어디서든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는 ‘시체놀이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기사도 찾을 수 있다.(실제로 시체놀이를 했는지에 대한 기사는 찾지 못했다.)
기사를 찾지는 못했지만, 당시 어느 학교에서인가 학생들이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칠판에 적어두고, 창문가에 학급 전체의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두는 시체놀이로 교사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이야기는 당시에 유명한 이야기였다. 이 사건을 장난으로 봐야 할 것인지, 간이 콩알만 한 교사에게 가한 폭력으로 봐야 할 것인지, 참 난감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시체놀이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면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 작품에서 보이듯,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여주려면 맨 아래부터 여러 사람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 맨 아래에 있는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 질식할 우려가 있다. 다만, 위 작품을 만든 학생들은 불과 네댓명의 학생들이었고, 잠깐 흉내만 내는 것으로 놀이를 그쳤기 때문에 안전에 관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시체놀이의 확산은 인터넷과 디지털카메라의 보급과 관련이 깊다. 이전까지는 찍은 사진을 몇몇 소수가 보는데 그쳤다면 디카와 인터넷의 보급은 이를 익명의 존재들과 공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또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이에 공감하고 반응하는 익명의 관중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 혹은 즐거움을 얻기 시작했다는 점도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놀이와 조소 수업과정
놀이 조소는 2005년에 중학교 2학년 여학생들과 함께 했던 수업이다. 놀이 조소란 이름은 내가 붙인 이름이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신나게 놀고 나서 자신들의 놀이 모습을 조소로 표현했기 때문에 놀이 조소가 되었다.
기말고사 후 방학식 전까지의 기간에는 수업을 하지 않으려는 학생들과 교사들 간에 지루한 싸움이 진행되는데, 놀고 싶은 학생들의 욕구도 충족시켜주면서 표현의 생생함을 만들어 보기 위해 기획했던 수업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게 했던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놀아라고 하니 더 재미있어 했다. 다행히 미술실이 신관에 있어서 소리 지르고 웃고 떠들어도 다른 학급이나 교무실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30여분을 놀고 나면 미술실에 모여서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모둠별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두 시간 연강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못 끝낸 모둠은 쉬는 시간에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두 번째 시간에는 흙을 나누어 주고, 만들기를 시작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느낌, 어떤 장면에서 가장 즐거웠는가 등의 분위기가 표현되게 하는 것이다. 서로 놀이할 때의 느낌을 공유하고, 작품의 크기를 비롯해서 전체 분위기를 조율하는 것은 필수다. 섬세한 것보다 마치 삼국시대의 토우를 만들듯이 즉흥적으로, 놀이했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각자 한 개씩 만들고 나면 모아서 군상으로 만든다. (2주 동안 수업을 한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찾아보니 한 주, 단 두 시간만에 끝낸 수업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