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일곱 자매
'모스크바에 가면 스탈린의 7 자매 건축이 있다.'
'모스크바에 가면 스탈린의 7 자매 건축이 있다.'
많은 여행서적들이 스탈린 시대 건축을 소개하는 글이다. 스탈린의 7 자매란 스탈린 시대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마치 탑과 같은 모양과 거대한 높이를 가진 견고한 성채처럼 보이는 건축물이다.
스탈린 양식의 건물을 처음 본 곳은 아르바뜨 거리 초입부였다. 러시아 여행 첫 날 우리의 관광 코스는 스탈린 양식의 러시아 외무성 건물을 보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푸시킨의 신혼집이 있는 아르바뜨 거리를 거쳐 붉은 광장까지 걸어가는 경로였다. 아르바뜨 초입부에 있는 러시아 외무성 건물 주변에는 이미 이른 시간에 도착한 중국인 관광객들로 한 가득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목을 길게 빼고 그 건물을 바라보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여행 서적에서 유명하다고 하니까 올려다보기는 하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호감이 가지 않는 건축양식이었다. 상자를 켜켜이 쌓아 올린 형태에 어떤 재료인지 살짝 황톳빛 나는 외형의 건물은 주변 경관과 다른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고, 마치 접근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 대화가 통하지 않는 거대한 거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외무성 건물은 우리가 묵은 아파트 창문을 내다보면 건물들 위로 삐죽이 솟아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모스크바에서 묵었던 아파트 창문에서 바라본 외무성 건물
다음날, 모스크바 강 야경 투어를 하기 위해 레디슨 로얄호텔 앞의 선착장으로 향하던 중 똑같이 생긴 건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바로 레디슨 로얄호텔이었다.
모스크바 레디슨 로얄 호텔의 야경과 낮의 풍경
그리고, 세번째,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가던 중 멀리 도시위로 솟아있는 또 하나의 건물을 보게 되었다. 도데체 똑같이 생긴 이 건물들의 정체는 뭐지?
그런데 이것과 똑 같이 생긴 건축물을 또 한 번 만나게 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발트 연안의 국가인 리투아니아에 도착했을 때였다. 리투아니아 중앙시장에 과일을 사러 들렀는데 중앙시장 뒤편 멀리에서 외무성 건물과 똑같이 생긴 건물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고 알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형태의 건물은 스탈린 시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져 스탈린 양식으로 부르며 러시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위성국가였던 리투아니아의 리가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도 지어졌던 것이다!
스탈린은 진정으로 저 건축 양식을 좋아했을까? 아마 그랬으니까 주변 국가들에게 까지 건물을 지어주며 이런 건축 양식을 확산시키고자 애썼겠지? 아르느보 건축양식,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양식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건축 양식들 처럼 이와같은 양식이 하나의 세계적인 건축 흐름으로 자리잡기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러시아와 수교한 지 꽤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내 궁금증을 풀만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러시아 미술이나 문화는 서양의 것에 비해 비주류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도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곳 저곳 웹사이트를 검색하다가 한 사이트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하였다. 저작권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사이트의 주소를 연결해둔다. (이 사이트로 이동하면 스탈린이 꿈꾸었던 소비에트 궁전과 조감도를 볼 수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스탈린 양식 건축물이 어떤 경로로 생겨났는지 알 수 있다. )
위 사이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정부 수립이 공표된 1922년 12월 소련 인민의회 대회에서 '은행가와 지주, 차르의 터'에 거대한 의회 궁전을 세울 것이 제안되는데, 이것이 바로 소비에트 궁전이다. 세부 건설계획은 1924년 레닌 사망 이후 레닌 묘 건축을 위한 계획을 세우면서 구체화되는데,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이 헐리는 것도 바로 소비에트 궁전 터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1931년부터 2년에 걸쳐 소비에트 궁전 설계안을 공모하였고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까지 참여한 치열한 경쟁은 '보리스 로판'의 설계안으로 결정된다.
스탈린은 보리스 로판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본 기둥을 타워와 같이 높이 세울 것
2. 에펠탑보다 높게 지을 것
3. 기둥을 밝게 빛나는 낫과 망치로 치장할 것
4. 건물 앞에는 레닌과 마르크스, 엥겔스를 위한 기념물들을 세울 것
이런 요구를 수용한 결과 건물 높이는 무려 420m로 높아졌고 21000석의 대회장을 비롯하여 100m 높이의 레닌상을 포함하는 안으로 결정되었다. 1941년, 지금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지하에 기초를 완성했다. 그러나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프로젝트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비에트 궁전을 위해 허물었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은 1995년부터 5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위 사이트에서 본 소비에트 궁전 조감도와 완성 후를 상상한 합성사진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그리스 아테네 신전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사회주의 건축을 원하고 있었을까. 아테네 신전에 아테나여신이 있었듯 그들은 소비에트 궁전에 거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상을 기념하는 기념물을 장식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규모는 서구의 어느 것보다 크고 거대해야 했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스탈린양식의 건축물들은 원래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초라한 규모인 것이다. 만일 세계사의 흐름이 다르게 흘러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하지 않았고 러시아가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 궁전은 원래 계획대로 완성되었을까.
건축, 시대의 욕망을 담고
나처럼 평범한 여행객들이 해외여행지에서 하는 일은 사실 별 거 없다. 자연경관을 보거나 액티비티를 즐기거나 문화 체험하기. 언어 실력은 후지다 못해 벙어리 수준이라 현지 외국인들과의 자유로운 대화는 꿈도 꿀 수 없으니 이 세 가지야말로 해외 여행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액티비티도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 문화재를 보는 것이 여행의 주목적일 수밖에.
유럽을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빠뜨리지 않는 일정 중 하나는 올드타운으로 부르는 과거의 도시를 들르거나 기념비적인 혹은 기념할만한 스토리가 있는 건물을 보러 가는 것인데, 나는 건축을 볼 때마다 건축만큼 그 시대의 욕망을 담고 있는 문화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삼국시대의 민가가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듯이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보고 오게 될 건축물의 대부분은 과거 지배계급의 것이었을 확률이 높다.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기술자를 고용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도시의 중심은 성당이었다. 성당 주변으로 사람들의 주거지, 시장, 학교 등이 생겨나고 자연스레 성당을 중심으로 도시가 확장된다. 신의 집인 성당은 그 어떤 건물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진다. 신의 집은 신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야 했으므로. 현대에 사는 우리가 봐도 입이 벌어질 정도의 큰 규모와 건축술이다. 외형만이 아니라 내부도 모자이크나 패널화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진다. 그리고 쿠폴라에서 쏟아져 들어온 빛이 내부를 신비하게 감싼다. 시각 이미지가 많이 부족했던 당시에 성당의 화려함은 아마도 상당한 시각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위압적 이리만치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통해 신의 존재와 위엄을 느꼈을 것이다.
심지어 조선시대에는 건축의 규모와 장식에 대한 것을 법으로 정해놓았다. 예를 들어 백간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왕뿐이었다. 단청으로 화려하게 채색할 수 있었던 건물은 종교적인 건물이거나 궁궐뿐이어서, 아무리 재산이 있고 권력이 있어도 건축에 있어서는 왕과 동급의 집을 지을 수 없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계급이나 계층은 건축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거나 권위를 부여하였으며, 피지배계급에게 정서적 일치감을 갖게 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는 의미에서 통치자들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만들고자 하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기층 민중에게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가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 고통스러운 삶의 원인이기도 해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의 원인이었던 건축물이 시대가 흐른 후 그 민족과 국가를 먹여 살리는 관광 자원이 되니 이 또한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스탈린의 일곱 자매 역시 한 시대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주의적 이상이라는 무형의 것을 건축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물화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압도적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통해 체제의 우월함을 주장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후에는 모스크바 대학 건물, 외무성 건물 등으로 여러 곳에서 비슷한 형태로 건축되었고, 심지어는 소비에트 위성국가에 동일한 양식의 건축물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소비에트 궁전과 가장 비슷한 형태로 지어진 것은 모스크바 대학이라고 한다. 리투아니아는 이 건물을 과학 아카데미로, 폴란드는 바르샤바에 세워진 건물을 문화궁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용도면에서 보면 바르샤바의 문화궁전이 스탈린이 원래 짓고자 했던 소비에트 궁전과 가장 유사해 보인다. 그리고, 현재 그곳은 바르샤바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고 한다.
스탈린 양식의 건축은 외부자인 나에게는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곳은 나에게는 매우 완고하고 폐쇄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스탈린은 이 건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서구의 허다한 건축물들보다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을 꿈꾸었던 스탈린. 그가 꿈꾸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서구 어떤 건물보다 높고 큰 건축물을 통해 러시아 사회주의가 서구 자본주의보다 우월함을 선전하는 것이었을까? 혹은 거대한 건물에 사회주의 기치 아래 만국이 모여 연대하는 사회주의 세계를 꿈꿨던 것은 아닐까?